lifestyle

바바라 붓

풍경화를 다시 시작하려고 4B화방엘 들렀다.

-풍경화를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는 마음의 정리가 되는대로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

학생때는 비싸서 엄두도 못내던 바바라 붓을 나는 성큼 집어들었다. 붓대가 푸른것이 마음에 든다. 모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뭐.

계산대의 어머님이 알아봐주신다.

“좋은 붓 샀네~ ”

“헤헤”

바보처럼 웃고 말았다.

아영이가 걸어온다

아영이가 걸어온다.

아영이의 가족이 멀리서 걸어온다.

두 팔을 벌리자 작고 밝은 아이가 스스럼없이 내게 뛰어왔다. 나는 번쩍 들어올려 빙그르르 날아주었다.

아이와는 반대로 내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영이의 신랑이 내게 물었다.

“이렇게 전시 하시면 많이 뿌듯하시겠어요~”

뿌듯함보다는 걱정이 앞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스스로도 많이 놀라웠다.

첫날은 정신이 없었고, 이튿날 조용히 앉아 있자니

부족함만 가득 채워지는 하루가 간다.

어쩜 이리도 나는 아직 부족한가.

먼데서 뱃속의 아이와 가족 모두 함께 와준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이어가야겠다.

전시기간동안의 가족이야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시장을 지키는 동안, 신랑이 재택근무를 하며 정우를 돌봐주기로 했다. 일을 하다가도 정우의 학교 학원 픽업이 쉽지 않을텐데(가능한건가)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글로는 부족한 마음.

신랑이 수,목요일에 출장을 가는 동안은 정우가 하교후 두시간 정도 혼자 있기로 했는데, 이틀차가 되니 제법 씩씩하게 있는 것 같다. 혼자는 처음이라 엄마아빠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저녁에 오리새끼마냥 나를 졸졸 쫓아다니긴 하지만ㅋㅋ

(다 큰줄 알았는데 아직 애기다.)

그보다 정우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퇴근길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온전히 1시간동안 듣게 되어서 많이 행복하다.

네 번째 개인전 <알롱 달롱 탐라 산수>

전시 소식 알립니다.

오랜 기간 제주의 풍광에 홀린 듯 작업해 오던 저의 눈에
제주는 이제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네 번째로 진행하는 개인전 “알롱 달롱 탐라 산수”에서는
제주의 기원인 화산활동, 이로 인한 물의 흐름과 동식물을 관찰하여 디자인적 조형요소로 표현하고,
이상화된 자연을 산수<산/물/바위/나무>로 표현하였습니다.

알롱 달롱 탐라 산수 (김초희 천연색화 展)

국립제주박물관 고으니모르홀

2023. 9. 5 (화)~ 9. 24 (일) / 매주 월 휴관

오! 사과.

주제별로 하고 싶은 전시가 아직 많다.

푸른것들과

아버지의 사과 등이 그것이다. 전시명은 오! 사과.

2022.12.6

붓꽃

두어달 전 앞마당에 붓꽃을 심었다.

작업을 위해 쪽을 심을 요량으로 현관문 앞의 잡초가 무성한 작은 땅을 밭갈듯 갈았는데 -제주의 땅은 정말이지 돌 반 흙 반이라 일주일 내내 너무 힘들었다. 간혹 바위도 나온다.- 쪽만 심기 아쉬워 꽃 구근을 심었더랬다.

그러나 올 봄은 이상하게도 세찬 비바람이 강했다. 약한 잎들은 결국 꺽이고 말았고, 벼를 세우듯 나는 잎들을 모아 한데 묶어 주었는데 한번 꺽인 잎이 다시 세워질 리 만무했다. 때마침 꽃봉오리를 올린 세 꽃이 다시금 비바람에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나는 조심히 꺽어와 화병에 꽂아 주었다.

애초에 붓꽃은 호주 여행 당시 추억의 꽃이었다. -시드니 플라워마켓에서 정우가 까아만 캉골 지갑을 꺼내들고 “어서 골라봐!” 하던 나의 생일 선물 꽃이다.-

화병에 툭 꽂아 식탁에 두었을 뿐인데 나는 다시 호주로 돌아간 듯 하다.

올 3월부터 받아보기 시작한 제민일보에 숨은그림찾기도 스도쿠도 있을 것만 같던 오늘 아침.

다음 여행지에서도 추억이 될 만한 꽃을 사봐야겠다.

디스커버리 퍼플과 실버리 뷰티(들여다보면 실버리 뷰티는 흰 부분이 반짝인다.)
호주 여행 당시 페트병 화병을 신랑이 만들어주었다.

미대군대

정우에게 물었다.

“정우야 미대 갈 생각 없니?”

정우가 대답했다.

“싫은데~ 군대할껀데”

굿바이 다음

서양학과를 반대하던,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인 어른들의 조언으로 가게 된 시각디자인과에서 나는 3학년을 끝마칠 무렵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 디자인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

하지만 디자인을 배움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큰 얻음이 있었으니, 바로 아름다운 사물을 분별하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다양한 서체의 아름다움부터, 그리드에 의한 정렬과 색채, 클래식의 미, 미보다 앞선 실용성, 청바지에 검은 목폴라의 잡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외에도 실로 방대한 것들이 삶의 습관을 바꿀 정도로 내안에 깊숙이 자리해 있다.

여직 존경하는 교수님께 얻은 이러한 가르침을 이대로 놓는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용기낸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사가 바로 ‘다음’이었다.

다음은 10년 전 홀로 제주에 내려온 까닭이었고,

많이 힘들었고,

그 안에서 신랑을 만나 참 많이도 행복했던 회사다.

그런 애증의 GMC가 이제 매각이 되어 추억이 사라진다니 꽤나 아쉽다.

새해 다짐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런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

마주하면 주저 앉고야 마는

깊은 숨이 턱 하고 차오르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작업을 하겠다.

천연색화

천연의 재료로 염색을 하는 대신

천연색의 우리 물감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천연염색화’라는 이름 대신, ‘천연색화’라 불러 보기로 했다.

붉은 봉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 쓰고 나면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장인을 찾아가 우리의 물감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하나 고민이다.

2023.1.9

삼성 홈페이지를 만들던 스무살 남짓하던 젊은 청년은 이제 제법 번듯한 자신의 방이 생겼다.

업계일을 한지 21년째 되던 해다.

생각해보면 그는 편의점 알바를 하나 하더라도 허투루 하지 않던 청년이었다.

전에는 신랑이 ‘운이 좋게도’ 처음 시작한 일이 본인과 잘 맞아서 무척이나 잘 해내었다고, 때마침 시대의 흐름도 신랑의 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을 하면 끝까지 해내야 하는 성격탓에 여기까지 온 것일테지.

카트라이더 하나를 하더라도 사내에서 1등을 해야하는 사람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게임에 문외한이라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른다.

기껏 설명을 해봐야 오구오구 정도의 반응밖에 돌아오지 않는, 칭찬을 받을줄도 할줄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조금 미안하다.

나의 일은 언제 내 편이 될지 알 수 없는데, 상한 몸을 채 돌볼 시간도 없이 출장을 떠나는 남편을 보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것, 신랑이 돌아왔을때 아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집을 잘 돌보는 것, 정우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 짜쯩내지 않는 것 정도. 쓰다보니 생각보다 많은걸? ㅋㅋ

무엇보다 여보! 방이 생긴것을 매우 축하해요!

엳듯던

1학년 2학기가 되면서 정우는 받아쓰기를 하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에 시험을 치르는데, 문제는 반듯하게 코팅이 된 A4지에 10개의 문장이 1급부터 16급까지 (그러니까 총 160문장) 앞뒤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책의 내용에서 뽑아낸 문장 같아 보였고, 정우는 그 책을 학교에서 읽은 듯 보였다.

나는 그간 태도가 중요하다며, 올바르게 공부한다면 빵점을 맞아도 괜찮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반대로 어중간한 태도로 백점을 맞는 것 또한 필요없는 일이라고 했다.

백점을 맞혀온 적도 있지만, 쉬운 부분에서 늘 두어개를 틀려오던 정우가 오늘은 어쩐일인지 모두 맞았다!

오늘 이 점수가 너무나 기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제 저녁 받아쓰기 연습을 할 때, 아래 두 부분을 틀렸는데 , 너무나 귀엽게 틀리는 것이 아닌가ㅠㅠ

오늘 시험에서 너무나 기쁘게도 모두 잘 써주었던 것이다!

나는 정우를 번쩍 안아 엉덩이를 팡팡 쳐주었다!

우리아들 너무 대견하네!

8살의 눈에 비친 참사

영천에서 자란 나는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잘 알지 못한다. 게다가 당시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으니 뉴스를 보았어도 기억이 날리 없고, 나의 부모님도 작은 눈물과 짧은 탄식만이 존재했으리라 예상한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어떤 거대한 우주론을 믿고 있다. 세월호에 이어 이번 이태원까지 참사까지 이 모든 일은 신의 뜻도 부처의 뜻도 아니요, 이 거대한 우주 안에 작은 행성의 자정작용이라 생각된다. 다양한 인간의 욕망과 이기, 또 무질서가 어우러져 일어난 여러 결과라고.

엊저녁 정우가 내민 그림 한 장이 마음을 쿡 쑤신다.

차례차례 줄을 서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할아버지가 되면 이야기해주려나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보면 신랑은 가끔 리즈시절 회상하듯 예전 실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때가 있다.

마치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해주시듯, 신랑은 그런 일들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스치듯 이야기 해준다. 나는 그럴때면 가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시공간을 이동해서 젊은 신랑의 모습을 한참이고 보고싶다.

인터스텔라나 다시 보자..

작업의 방향성

작업실 한쪽 벽에 빼곡히 붙인 작품들을 정리하고 나니 , 무엇이 작품이고, 무엇이 졸작인지 알게 되었다.

근래에 작업의 방향성이 크게 바뀌면서 다행인 것은 결국 이것이 내가 하고 싶던 작업이라는 것이다.

내 뿌리와도 같은 스케치와

20대 초반 배워왔던 빼기의(간결한) 디자인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 그리고

내재된 본능

이 모든것이 현재 내 작업물의 결과이다.

어젯밤

어두운 밤 아파서 낑낑대는 내게 정우가 조심스레 와서는 보드라운 두 볼을 요리조리 부비고 뽀뽀를 하고 간다.

나는 행여나 바이러스가 옮을새라 아이의 입술이 나의 입에 닿지 않도록 볼을 옮겨준다.

서로의 속눈썹이, 볼이, 보드라운 솜털이 서로 닿을때 행복하다.

장난감을 정리해야 하니 조금 소리가 나도 이해해달라며 속삭이듯 말하고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정리할때도 많이 행복했다.

책상과 화장대

나의 인생 첫 화장대는 신랑이 원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며칠 전 초등학생 1학년의 반을 보내고 있는 정우에게 책상을 마련해주기위해 서귀포에 위치한 가구점에 들렀다. 훨씬 어릴때에는 아이 책상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방을 잘 꾸며주고자하는 마음이 컸던 듯 하다.

아이가 7살 가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학교 근처의 마당이 아름다운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2층에는 방이 2개라 아늑하고 남향은 아니지만 볕이 잘 들어 따뜻한 집이었다. 어릴때부터 일찍이 독립한 탓에 이사와 전셋집에 지친 신랑은 이제는 정착하지 않겠나 싶었고 고심끝에 정우의 방과 어울리는 책상을 주문제작 하려 했었다. 방은 직사각형의 한변이 긴 형태라 기성 제품을 놓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주문제작이 흐지부지 되면서 결국 입학후에도 책상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우가 제법 앉아서 연필을 잡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책상을 마련해주는 일이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 싶었고 우리는 가구점으로 향한 것이다.

그곳은 따뜻한 느낌의 묵직한 원목으로 세련된 라인을 여럿 갖고 있는 프랜차이즈 가구점이다. 적당한 사이즈의 책상이 마침 하나 있었고 정우 또한 좋아했다. 그리고 계산을 하려는 찰나 신랑이 화장대를 사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안방의 한쪽 벽면에 쏘옥 들어갈 것 같은 앙증맞은 크기의 차분한 원목 화장대였다. 평소 화장을 잘 하지 않는 편이고, 화장대에 대한 로망같은건 없었는데 신랑은 “전부터 계속 사고싶었다.”고 말했다. 마음이 이상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책상과 화장대는 바로 배송이 왔다.

정우는 그날 책상 위에 오래 전 채집한 뿔이 멋진 (죽은)수컷 사슴벌레 를 가장 먼저 두었다.

나는 화장대의 작은 서랍에 신랑의 오랜 안경들과 젊은시절 착용했을 것 같은 은색의 묵직한 금속 시계 두 개를 곱게 놓아 두었다.

기분이 많이 좋았다.

나는 자연인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보 그리고 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숲이 가까운 어느 작은 컨테이너에 앉아 작업하다 누웠다 잠들었다 가만히 새소리를 들었다가 벌이도 없이 변변찮은 생을 보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 덕에 이나마 사나 싶다. 고마워!

미운놈 떡하나 더주기

어제부터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길래, 병원으로 가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

몸이 여전히 많이 아프고, 아이는 내게 미운말을 하지만, 휘말리지 않고 건강한 저녁을 차려주며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말해준다.

그러면 금새 미운 얼굴은 사라지고 예쁘게 말해주니까.

한편, 며칠전 정우를 혼내며 생선살을 발라주던 신랑이 많이 귀엽다. 결국 여느날처럼 정우로 시작해 여보와 나의 싸움으로 번지는 밤이었으나, 나는 나의 신랑 또한 정우처럼 언제까지고 사랑한다.

독서별

얼마 전 문선님과 가볍게 연락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가족 식사 자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즐겁고 다양한 이야기가 퐁퐁 솟던 밤, 그 중 하나의 이야기가 ‘독서모임’이었다.

그리하여 어제 드디어 첫 모임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지었다는 이 모임의 이름은 ‘독서별’

엊저녁 숙제는 못했고 ABCD도 전혀 모르지만,

친구들과 모여 규칙도 정하고, 인상깊었던 책 내용도 이야기해보고, 놀이터에서는 땀으로 온 몸이 적셔지듯 놀았던 이번 모임이 아이가 자라는데에 훨씬 비옥한 토양이 되리란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

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모처럼 밝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참 행운이고.

간결한 그림체
아기새와 어미새

축구 응원

지난주 금요일 저녁,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7년전 사두었던 형광빛이 강한 주황색 티셔츠를 챙겨입고, 정우가 만든 응원용 태극기도 챙겨 경기장으로 향했다. 당연히 치킨과 햄버거도 빠질 수 없지.

경기장 중앙의 좌석 보다는 골대 뒷편의 자리를 선호한다. 테이블이 있어 경기를 관람하며 먹기가 편하기 때문이고, 반대편도 생각보다 잘 보인다.

그날은 응원석 가까이에 앉게 되었는데, 우리 바로 왼쪽으로 중,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예닐곱 혹은 더 많이 모여 있었다.

학생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매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며 응원단과 교류하고 있었다. 스타일은 왜 또 다들 그리 좋은가. 그들의 기에 여름밤의 더위가 주춤할 정도였다.

신랑은 자신의 젊은 시절도 생각이 났는지, 내내 대견하고 신난 얼굴로 함께 응원했다.

정우에게, 그때 그 형아들처럼 열정넘치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래본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

토요일이면 우리 가족은 탐라도서관으로 간다.

처음엔 내 책을 빌리러 잠시 갔는데, 간김에 정우 책도 빌릴겸 어린이 도서관으로 갔다. 그런데 만화책 코너에서 정우의 학교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매주 토요일 점심즈음 우리는 도서관을 가게 되었다.

3주 전, 나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정민이 덕에 알게 된 인아책방 대표님이 추천한 책이다. 나는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라 대출기한 내에 모두 읽지 못한채 반납을 하고 말았다.

오늘 그 책을 다시 대출했다.

도서관 옆에 위치한 넓은 공원은 7월인데도 제법 시원했다. 봄이면 커다란 벚꽃이 만개하고, 소나무 숲이 가득한 아름다운 곳이다. 책을 살펴보는 사이, 정우는 이미 친구와 소나무 숲 아래로 간지 오래다. 운좋게 새똥을 피한 의자에 누워 책을 펼쳐본다. 눈이 부셔 책으로 해를 가리고 나니 불어오는 바람에 솔향이 좋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

관계와 감정

초등학생 1학년이 된 아들은 얼마전 ‘배신’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유치원을 같이 다니던 몇 친구들과 같은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현재는 더이상 함께 놀지 않는다는 것.

반면 계속해서 함께 지내는 친구도 있어 보이고, 본인을 좋아해주는 여자 친구도 있어보인다. -본인피셜이라 확실치 않음-

긴 학창시절의 첫 해에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길.

생각과 태도가 작품이 된다.

작품이 마음에 들어 팔로우하던 한 작가를 더이상 팔로우하지 않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은 차분한 듯 차가우며 어두운 듯 부드러웠으나, 아래 달린 글에 이내 마음이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작품 설명은 고사하고 마음을 쉬이 드러내 보이니 그녀의 예술적 깊이와 안목은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생각과 태도 또한 작품이 아니던가.

지난 밤의 대화

푸른 밤, 하얀 형광등은 꺼지고 지구본에 옅은 노오란 불이 켜지고 나면, 요즘 이야기하자 말하는 정우다.

오늘 자신은 축구를 했는데, 그동안 엄마는 무얼 했는지 또 어떤 마음이었는지.

엄마의 이야기를 하다, 최근 혼자 침대에서 잠들기를 시도하느라 분리 불안을 겪는 정우에게 엄마아빠는 언제고 너를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정우가 조금 덜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 하고 나는 물었다.

“그럼 저- 안에 있던 사랑하는 마음을 꺼내면 되.” 하고 귓속말로 말해주는 아이.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해가 갈수록 좋아지는 것 들.

이른 밤 소주잔과 맥주캔을 함께 기울이는 것,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자꾸만 얘기해주는 것,

나에게만 보여주는 춤사위와

차 안에서 들려주는 선곡들.

지쳐 소파에 누워 있을때 얼굴 근처에서 나는 냄새들.

나는 아직 용기가 없어

오늘 아침, 다리에 밴드를 붙이는 사이 아이는 약통에서 꺼낸 손톱가위로 본인의 손톱을 깍아본다.

이미 지각이지만 손톱이 제법 길어 깍고 가기로 했다.

아들은 두 번째 손가락의 손톱을 아주 조금 깍아 보고는

“엄마, 아직 나는 용기가 없어.” 라고 말했다.

아들아, 어른들은 용기가 없으면 시도치 않거나 얼버무리기 일쑤인데

너는 용기가 없다는 말도 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구나!

2022 달력

2022년도 달력이 나왔습니다!

여러 날에 걸쳐 색감 및 질감을 조절하였고, 그 결과 실제 작품과 흡사하게 나와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달력은 11월에 진행되는 전시와 연계하여 제작했으며, 주문시 ‘전시 리플릿과 명함’을 함께 동봉하여 드립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년간 작업해오던 천연염색과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작업물로 제주의 풍광을 담백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따라서 11월에 전시하게 된 작품이 이번 달력에 실리게 되면서, 지난 해 달력과 중복되는 그림이 있음을 알리오니 참고해주세요!

달력 구매 링크

https://forms.gle/XGGnMq2PKBLKEoRa6

섬의 풍광
김초희 천연염색화 展

북촌한옥청
서울 종로구 북촌로 12길 29-1

2021. 11. 16 (화) ~ 21 (일)

전시 포스터

개인전시회 포스터는 매회 위치 기반의 디자인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예정입니다.

세 번째 개인전

세 번째 개인전은 서울의 북촌한옥청에서 열게 되었습니다. 매우 설레입니다.

섬의 풍광
김초희 천연염색화 展

북촌한옥청
서울 종로구 북촌로 12길 29-1

2021. 11. 16 (화) ~ 21 (일)

어머님의 전화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술 한잔 하셨는데 우리 며느님 생각이 난다며 전화를 하셨단다. 나의 시어머님은 문득문득 또 자주 내게 존댓말을 쓰시는데 그것이 7년 내내 어색하기도 또 감사하기도 하다. 늘상 고맙다 고맙다 하시는데 그 마음 짐작만 할 뿐 다 헤아릴 길이 없다.

오늘 저녁은 우리가족이 좋아하는 ‘장전반점’-정우의 유치원 같은 반이었던 승우네가 운영한다- 에서 짜장면 한 그릇 하며 맥주를 한캔 마셨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어머님과 통화를 하는데 함께 맥주한잔 한 듯 취기가 올라왔다.

감사한 여름의 노을을 여보와 정우와 다 함께 하니 이렇게 행복할수가.

스승

이틀정도 쉬게 되면서 드라마 ‘로스쿨’을 봤다.

극중 양크라테스(김명민)을 보니 임쌤 생각이 많이 나면서, 내 인생에 이런 교수님이 계셨던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욕심을 내자면 오랜만에 명강의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연말에는 좋은 소식으로 교수님 한번 찾아뵈면 여한이 없겠네.

천연염색화

작가라는 호칭을 일부러라도 부여해서, 엄마 김초희와 작가 김초희를 살아보던 날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로서의 삶의 흐름이 강해 작업의식이 흐려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나는 SNS에 올리던 나의 작업물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수업 또는 일상과 분리해보았다.

비로소 나는 작가의 호칭을 떼어내고 온전히 나의 이름 김 초자 희자 석자로 작업물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5월 26일

나의 작업물들을 ‘천연염색화’라 이름붙인다.

보슬보슬 잡초의 쓰임

마당에 보슬보슬 안개처럼 피어나는 잡초가 있어, 뽑지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잎이 예쁘거나 꽃이 필 것 같이 생긴 것들은 뽑지 않았더니, 7살 된 아들도 똑-같이 따라한다.

5월이 지나기 전에 나는 선생님께 무어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 정우와 함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서툰 글씨로 이름 석 자와 선생님 이라는 글씨, 두 분이니 딱 12자를 또박또박 쓰는데 한참이 걸렸지만, 매우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아끼는 번쩍번쩍 색종이에 쓰다니!

나는 좋은 기회로 받게된 예쁜 두어송이 꽃에 마당에 피어난 보슬보슬한 풀을 꺽어다 서툰 솜씨로 둘둘 포장했다.

감사한 마음 에이포 용지에 가득 써 내려 가니 이제사 마음 한켠이 뿌듯해진다.

마지막 글귀는 이러하다.

-언제나 선생님들을 믿고 의지하는 정우엄마가-

줍줍

언니 나는 집근처 골목길에서 혼자 줍줍활동을 했어요. 늦봄이 되면 그 골목길에 산딸기가 열리거든요. 깨끗한 산딸기를 정우에게 주고 싶었어요. 또 제가 종종 운동하는 길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많이 나와서 이틀동안 50리터 종량제봉투를 세개나 쓰게 되었어요. 너무 무거웠어요. 그런데 줍다보니 언니 생각이 많이 났지뭐예요. 언니 참 그리고 방에 있던 물건들을 몇개 정리해서 가져왔는데 신랑은 늙어도 제가 자수는 안할 것 같대요. 저도 그래요 ㅋㅋ 그래도 잘 갖고 있을께요. 아 그리고 최근에 현정언니랑 성원님이랑 같이 밥 먹었는데 다들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어요. 걱정말아요.

길가의 쓰레기가 쓰레기 봉투에 담겨져있음

엉뚱한 곳에서의 해답.

숲을 그리는데에 어려움을 겪은 후로 붓을 들기가 싫은 며칠이 자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방향에서 해답을 찾았으니, 그것은 바로 윈드스톤에서의 일이었다.

평소 보리차처럼 커피를 연하게 즐기는 나는 며칠 전 원샷을 부탁드렸고, 새벽에 잠이 들었던 것.

잠이 안오면 그림을 그리면 되겠다며 흘려 말한 사장님의 말이 마음에 닿은 것인지, 정우가 잠든 이시각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때마침 최근 작품이 좋다며 연락이 온 지난 작품의 구매자분과 그 지인분까지 감사한 마음.

작품을 깨부술 용기가 안난다.

천연염색과 아크릴 물감의 조화가 어느정도 감이 잡히는 듯 하여, 작은 사이즈의 작업을 마치고 곱게 염색해둔 커다란 천을 조심조심 꺼냈다.

천천히 작업을 해나가는데, 배경에서 원하는 만큼의 톤이 나오지 않았다.

근데 나는 도자기처럼 깨부술 용기가 안난다.

아쉬움만 남은 시간들

사흘이 지나 언니의 사진을 정리하고 나서야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그리 만났는데, 어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했을까 우리는.

2020.12.30

며칠간 내린 폭설에 신게된 무거운 등산화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계단을 내려가는 길이 힘이 들었다. 영정 사진을 보고 난 후에도 나는 슬픈 감정이 들거나 눈물이 나지 않아 이상할 따름이었다. 사진 속 언니는 너무 밝기만 했다. 어찌할 줄 모르는 내게 꽃을 얹고 인사하는 법을 혜광님이 도와주셨다. 옆에 앉은 유림 언니에게 고심고심하여 내뱉은 말은 “언니 이게 진짜인지 잘 모르겠어요~”였다. 언니는 원래 그래~ 나도 그래~ 비슷한 말을 내뱉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에는 순간순간 어지럽고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언니의 하얗고 말랑말랑한 손은 난로만큼이나 따듯했다. 입구에는 소리없이 나오는 눈물을 고운 손수건으로 연신 닦고있는 현정언니가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괜찮다는듯 마른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또 손을 맞잡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뿐이었다. 앙상히 마른 어깨와 맞잡은 손에는 힘이 없어 핏줄이 다 튀어나와있었다. 주변에는 제주의 몇몇 동료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고 폭설에도 단숨에 내려와준 원주님과 서울분들이 신랑과 함께 일해주고 있었다 .

12월 30일 폭설이 내렸다. 8시 즈음 정우와 잘 준비를 하려는데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듣기에도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신랑은 술을 마신터라 내가 운전대를 잡고 정우와 함께 제주대학교 응급실로 향했다. 지난 차사고때처럼 언니들이 응급실에서 곧 나올 줄 알았다. 그때부터 이틀이 지나도록 나는 실감을 못했던 것이다. 신랑은 다음날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는 순간 눈물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화를 할 때 간간이 목소리가 떨렸고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 듯 했다.

오늘 1월 1일, 신랑에게 민지언니 잘 보내주고 오라고 한 말은 나에게도 작별인사와 같았다. 준비없이 맞이한 이별에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뇌이고 글을 써봐도 나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이다.

주식 앱 삭제

2020 수능일을 기준으로 주식을 샀다.

앱을 깔고 주식을 샀다.

주식이나 펀드는 잘 모르고 공부할 생각도 없어, 무엇이든 잘 하는 여보의 도움을 받아 튼튼한 통에 작은 계란을 두개 넣어두었다.

그리고 앱을 삭제했다.

이것은 정우가 수능을 칠 때 꺼내보기로.

대나무를 닮은 당신에게

높이높이 자라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는 깊고 대는 단단하게 성장한 것이
시시때때로 느껴지는 당신에게,
매일같이 방에서 마주하던
무수한 대나무숲의 뿌리를 선물합니다.

정우의 꿈

정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되서도 그림 그리는게 꿈이야~”라고 했더니 정우왈 “난 거대 코뿌리와 가이오가가 나오는게 꿈이야. 그런데 꿈이 잘 안나와~ (시무룩)”

다행

문득 다행인것은 그가 그의 힘듦을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일지라도 언제고 내가 알 수 있도록 덤덤히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좀 더 예쁘게 얘기하지 못하고 종종 듣지 못하는 나의 귀와 습관들이 속상할 뿐.

출장 간사이

신랑은 매주 수목금 출장을 간다. 최근에는 CTO로 승진되면서 -2020. 9. 30- 주말에도 틈만나면 거실에 놓아 둔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한다. 매우 축하해야 마땅할 일인데, 고된 일이 늘어나 마음의 짐이 무겁다. 그런 여보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출장 간사이 ‘정우의 칭찬할 일’을 모아본다. 혹여나 잊어버릴까 매일 한개씩 적어두고는 -1번부터 수요일- 신랑이 돌아오는 날 비행기를 탈 때 즈음 문자를 보내주었다. 제주로 돌아오는 피로한 몸이 한결 가볍기를 바라며.

1.설거지를 도와주었어요 (옆에서 헹구기를 해줌)
2.차에서 휴대폰을 보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켰어요
(등원길에 보조석에서 유튜브로 동요를 듣던 중, 광고를 ‘건너뛰기’ 해준 후 영상을 보지 않고 뒤집어서 제자리에 놓음)
3.반찬을 골고루 먹었어요 (멸치볶음, 연근)
4.저녁으로 떡볶이를 먹는데 한입 먹자마자 “아빠껏도 남겨놘?”이라고 말했어요 (출장가면 아빠이야기를 많이 하는 정우)

집으로 돌아오는길, 한껏 칭찬해주는데 으쓱하며 이마트로 가자는 정우. 그는 결국 메가리자몽Y를 손에 넣었다.

정우의 신기한 용돈

신랑의 30년지기 친구부부가 놀러와 횟집에서 회를 먹던 중이었다. 갑자기 옆 테이블 부부가 정우와 신랑친구부부의 아들에게-초등생 형아였음- 오천원씩 용돈을 건넸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화들짝 놀람과 동시에 쑥쓰럽기도 하고 또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ㅋㅋ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이들이 둘이나 있어 바로 옆 테이블에 앉기 싫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예상과는 달리 떠들썩하지 않게 잘 있어주고, 잘 먹어주고, 기다리는동안 책도보는 등 너무 예뻐서 용돈을 주신 것!

이렇게 가치있는 용돈은 처음인 듯 싶다. 주신 마음 또한 감사하게 받아 아이들은 건너편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아들아, 이름처럼 바르게 자라 남을 도울만큼 마음이 큰 사람이 되거라.

엄마의 마음은 지금은 작지만 부지런히 키우고 다듬어 나중에 함께 좋은일을 하면 좋겠구나.

동사같은 삶

지난해 첫 아크릴화 수업의 첫 수강생분이 올린 글,

그분은 고3 수험생들의 담임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질건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봤다고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들이 얘기한 동사같은 삶.

그 중 나의 눈에 띈 글 하나를 옮겨 적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미술 분야의 직업’

끄덕끄덕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최근 열어보는 수업으로 좋아하는 일과 먹고사는 일의 경계에 있는 나는 꽤 행복한데, 친구의 꿈을 매우 응원한다.

반면, 충분히 먹고살고 있지만 좋아하는 일인가 의문이고 -확실히 잘하기는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신랑에게 평생 미안한 마음이다.

비녀

하얗게 샌 가늘고 긴 생머리의 증조할머니. 치렁치렁한 내 머리에 비녀 대신 붓을 꽂고 있으니, 매끈하게 묶어 작은 은비녀로 고정한 증조할머니의 뒷모습이 스쳤다. 영천가면 챙겨와야지.

수목원과 도넛

라디오에선 평일 아침 9시면 ‘김미숙의 가정음악’이 흐른다. 오늘은 부지런히 준비해준 정우덕에 오프닝을 듣게 되었다.

수목원과 도넛.

출판을 하던분은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에 결국 수목원을 만들었고, 목수는 꿈을 접고 도넛가게를 하려다 마음을 다잡고 나무로 도넛을 깍았다는 이야기.

틀니

제주에 온 이후로는 가족들과 통화나 톡으로 안부를 전한다. 얼마전 아빠는 틀니를 하려고 치과를 다닌다고 했다. 어금니를 모두 뺐다고. 수화기 너머로 상추가 먹고싶어 조금 뜯어 먹어봤는데 맛을 하나도 모르겠다 말씀하셨다. 젊은시절 맛동산을 제일 좋아할만큼 이 하나는 튼튼하셨는데 어쩌다 잇몸까지 약해지셨는지. 속상한 마음 감출길 없다.

촬영

수오언니에게 공모전에 출품할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는 언니에게 촬영을 부탁하다니 염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언니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고 덕분에 언니의 작업실에 가보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실제의 향과 실제의 촉감이었다. 탐나던 책갈피도 얻었고! 헤헤

거실에서 재택근무를 하고계시던 형부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조잘조잘 옆방에서 촬영을 하는 우리때문에 일이 손에잡히지 않으셨으리라. 그래도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조언해주시고 도움을 너무나 많이 받았다. -어쩐지~ 공모전 출품 경력도 많으시다고!!!!-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없게 고마운,
한시간 한시간 꿈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작품판매

2년 가량 안고있던 작품이 다른 분에게로 가게 되었다.

‘지난 겨울의 삼나무길’ 이라는 작품으로, 제주의 비자림로가 훼손 될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이익이 연결된 사안이라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렵지만, 작품이 그려진 후부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던 작품이었다.

연락을 주신 분은 남원에 살고 계시고, -처음엔 서귀포 남원인줄 알았다-그림을 본지는 오래 되셨는데 이제사 용기내 구입을 원하신다고 하셨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일상의 이야기들 또한 공감되셨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페북이나 여기 홈페이지에 주로 올리는데 어디서 보신건지, 괜스레 부끄럽기도 하고 또 감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일들에 공감해주시고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해주시니 작가에게 이만한 행복이 어디있으랴.

그 누구에게도 작품값은 -크건 적건- 쉬운 금액은 아닐터, 나는 간만의 작품판매에 뛸듯 기쁜 마음도 잠시, 이해하지 못할 이런저런 감정들이 지나갔다.

판매된 작품값으로 그간 사고싶었던 천연염색 염재를 드디어 살 수 있겠다. 허허

bgm

신랑의 업무소리를 배경삼아 가만히 꽃잎을 찍는다.

멀리 고심끝에 뱉어진 그의 단어들이 음악이 되는 순간.

코로나

아침에 유퀴즈를 봤다.

코로나19로 최전선에서 일하는 이들을 보니

나는 이리 안녕해도 되나 싶어 눈물이 계속 났다.

양가감정

일을 하고싶다가도 하기싫다.

3월만 기다리던 찰나였다. 벌써 6살이 된 정우가 이제 형님반이 되어 5시에 마치면 하고싶던 천연염색도 또 운동도 하려던 참이었다. 망할 바이러스에도 누군가는 잘만 살아내는데 나의 일과는 무너졌다. 시간을 역행하듯 정우와 종일 지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잘 지내면 다행인데 하루라도 싸우지 않고 넘어가는 날은 없다. 그럴때면 나는 나쁜 엄마가 된 것 같다.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를 잘 키우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그런데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때면 나는 아이마저 잘 키워내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신랑은 돈이라도 많이 버는데..’ 소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이러한 속상한 감정은 티비를 보여줄때나 아이옆에서 휴대폰을 할때도 해당된다.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할 수 있는 정기적인 일이 ‘미술학원’정도 일텐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반면 일을 하고싶은 이유는, 신랑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계속해서 존재하는데, 특히 신랑이 밤에 짙은 소주를 찾을때 두번째 감정은 커진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면 그간 일을 하던 엄마들도 그만둔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2년 남았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꿈은 화가이다.

토토로

토토로를 처음 접하게 된건 여고시절이다.

수능이 끝난 직후 일어 선생님께서 ‘이웃집 토토로’를 보여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난 불어전공인데 어째서…-

이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돼지’ 등을 연속해서 본 것 같다.

당시에는 시간때우기용 애니였으나 ‘스튜디오지브리’사의 어마어마한 작품이었단 사실은 대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며칠전, 넷플릭스에 ‘이웃집 토토로’가 올라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 포켓몬만 보지말고-포켓몬의 스토리도 매우 좋아하고 인정하는 바입니다.- 정우에게 보여줬더니, 보는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나 역시 스토리를 까먹은터라 한시간 반이 15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고양이 버스는 다시봐도 충격적이다. ㅋ-

함께 볼 수 있는 좋아하는 영화가 생겨서 기분이 묘하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볕이 좋은날,

이불을 털어 먼지가 이만큼 나와서 별가루 처럼 보일 때.

빨지 않은 운동화 속까지 햇볕이 닿아 세균이 죽은 것 같을 때.

2019.12.31

때마침 눈발이 날리던 일

아침일찍 도립미술관으로 가본 일

좋아하는 프랑스 작품들을 여러번 볼 수 있었던 일

오랜만에 두꺼운 서양미술사 책을 꺼내본 일

내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만난 일

주변 사람들이 좋은 날들을 보낸 일

마지막으로 우리가족 또한 아름다운 날들의 연속이

모두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연말파티

거하게 연말파티를 했다.

매번 신랑만 가는것이 아쉽고 속상하고 밉고 그랬는데,

흥흥 너는 또가냐.

육수

오늘 저녁에 육수를 내고 만둣국을 해먹었는데 엄마 떡국맛이 났다.

제주 전통 참숯만들기

좋은 기회가 생겨 참숯만들기 체험을 했다.

체험이라기 보다는 고생에 가까웠고 그걸 왜 돈주고 하냐는 신랑 지인의 이야기도 있었건만, 싫은 소리 없이 열심히 임해준 신랑에게 고맙고 또 모두 끝나고 보니 꽤나 좋은 경험이었다.

때마침 나는 그 후 아트제주에서 만났던 ‘이배’작가님의 작품이 숯으로 작업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자, 이제 이 귀한 숯으로 무얼할지 고민이다.

http://chohui.com/wp-content/uploads/2019/12/img_4229.movplaceholder://

아들이 찍고싶은건 무엇일까

오늘도 3시 하원 후 한참을 유치원 앞 놀이터에서 놀았다. 항상 우주반 친구들이 많은데 정우와 소유가 늦게까지 노는 편. 그와중에 볕이 좋아그런지 유치원에 개나리가 피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정우는 갑자기 저기 저 구름을 찍고싶다고 했다. 요즘 즐겨보는 포켓몬의 누구를 닮았다며. 불사조 같이 생긴 바람결이 많은 구름이었다. -나는 작업을 위해 좋은 풍경을 보면 사진찍는게 습관인데 정우가 그것을 닮아가는 것 같다.-

조금 더 집에 가까워졌을때에는 저 멀리 무지개같은것도 보았다. ‘같은것’이란 색은 무지개의 그것인데 모양이 반원형이 아니라 조그맣게 뜬 프리즘을 비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착했을때에는 집 둘레로 심어 둔 아직은 가지가 많지않은 동백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오전에 아크릴화 수업이 있었던덕분에 집이 매우 깨끗했고 창이 커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정우도 계속해서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결혼기념일

2019. 11. 29 결혼기념일 5주년

좋고 감사한 일들로 가득해 남겨둔다.

1. 오전 학부모 워크샵에 참가해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예쁜 파우치를 뜨고 -색실을 잘 선택한 것 같다-

2. 너무나 맛있는 점심데이트에 -사장님의 손놀림이 매우 조화롭습니다-

3. 사랑하는 인디고 언니의 케익으로 초를 불어 축하한 일. -날이 갈수록 케익이 맛있어져ㅠ-

4. 날이 좋아 아들이 유치원에서 하원한 후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 수 있었던 것. -최근 추워서 바깥놀이를 못했답니다-

5. 그리고 때마침 가장 좋아하는 노을색깔과 -감동-

6. 아들이 처음으로 수영할 때 물안경을 쓰고 잠수한 일. -수영은 엄마가 가르쳐준거다-

7. 신랑이 예약한 호텔 로비에 때마침 걸려있던 박서보 선생님의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 -한국 추상미술의 길을 잘 닦아주셔서 감사하고 또 매우 감동적입니다.-

8. 하루의 끝에는 애정하는 드라마 한편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가 좋아하는 술과 마른안주로 하루를 마감하며 사랑한다 이야기 한

오늘의 하루나 너무나 감사하고 벅차올랐습니다.

사랑해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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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달력

2020년 달력이 나왔습니다🙂

올해는 미뤄왔던 천연염색 작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자연의 색에 다가선 것 같고 또 아크릴과의 접목도 서서히 자리잡히는 것 같습니다.
내년도 달력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의 초기작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고, 한달 한달 꾸밈없이 작업하였습니다.
육지든 제주든, 또다른 나라의 하늘아래에서도 ‘그래, 그날은 풍경이 이랬지. 이런 색깔이었지!’ 하고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달력은 작년에 만든 방식 그대로 나무받침에 끼워두는 형태입니다. 다만 작년에 구매한 분들은 나무받침을 또 안사셔도 되게끔 제거한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가격

받침있는 달력 22,000원/ 받침없는 달력 15,000원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구매페이지에서 입력하시거나 개인적으로 연락주세요🙂

https://forms.gle/yuPDxEN38prD24Bn6

늙은호박

텃밭이 집보다 더 커보이는 민진이가 따준 늙은호박을 내내 두고보다 이제사 잡았다.

신랑과 함께 손목이 아프도록 자르고 나니 한가득이다.

채를 내어놓으니 어릴적 엄마가 해주던 그 냄새가 난다. 번거롭지만 씨앗도 잘 말려 까먹고, 전도 죽도 해먹어야겠다.❤️

이사일기 두번째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오늘은 아가가 채 걷지도 못할 무렵부터 만난 친구가 이사를 간다. 만나면 늘 밝은 기운에 말하는 모습이 얼굴만큼이나 예쁘던 친구다.

아가아가하던 조이는 어느새 등원길에 “추워~ 빨리 들어가~”라고 엄마를 챙길만큼 많이 컸다.

이사를 가서도 늘 예쁜모습 그대로 좋은 인연들 만나길 바래본다.

인연할때의 ‘인’은 서로 인하고 잇닿아 의지한다는 뜻이다. 낯설고 새로운것 투성이일때 만나 우리들 서로 많이 의지가 되었다.

고맙고 또 고마운 만남들이다.

업무전화

나는 업무 전화를 받는 신랑이 너무 멋있다.

처음 볼때부터 업무 전화를 받는 “여보세요~” 소리를 좋아했었다. 2013년 당시 우린 같은 사무실 공간을 사용했는데, 신랑은 저 너머 창가자리 옆팀의 팀장님이었다. 창이 커서 햇살이 많이 너머와 종종 눈이 부시기도 했고, 컴퓨터만 쳐다보는 일이다 보니 눈의 피로를 핑계삼아 창가를 보며 저 너머 신랑이 있던 자리를 슬며시 봐보기도 했다. 그와중에 꼬불꼬불한 윗 머리카락만 보이게 “여보세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귀에 꽂힌 것 같다. 나는 경상도 여자인데 서울말로 “여보세요~”라고 하는것이 어쩜 그렇게 멋있던지.

지금까지도 종종 운전을 할때나 밖에서 업무전화를 받으면 그렇게 멋있다. 특히나 후광이 비치는 날에는 더더욱!

책선물

오늘은 책을 많이 받은 날이다.

한라도서관 책잔치에서 SPACE 매거진 6권과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색종이 팽이를 접고 받은 정우책, 그리고 태풍에 집까지 데려다준 인디고 친구에게서 받은 포장이 더 예뻤던 책. 평소 눈여겨 보던 책이었거늘!

알바를 리스펙👍

+덧붙이는 말

나는 100인생 중 딸기쨈을 만들 수 있는 정도까지 온 것 같다.

반딧불이

얼마 전 신랑에게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이 산책길이 되어 행복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어제는 그 길에 반딧불이를 세 마리나 보았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물김치를 먹지않아 아들에게 화가 난 마음이 일순간 무너진 감사한 하루였다.

이사일기

올해 봄인가 여름이었다.

나는 소주가 땡길(?) 정도로 -평소 맥주파다- 부동산 시장을 살펴보았고, 신랑 말을 빌리자면 나 빼고 다 부자였다.

유배오던 척박한 곳에서 하루아침에 땅부자가 된 제주것들이 주변에 많았고, 그렇지 않으면 여유있는 육지것들이 이주해오는 제주도였으니.

이사를 결심한 이유는 자꾸 어딘가 고장나는 20년 넘은 아파트도 아니었고, 주차난이 심해서도, 가시같은 말을 저도 모르게 뱉어대는 이웃도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떠나서.. 가 아닐까 싶다.

다만 이사가 가능할 정도로 핑곗거리가 많았을 뿐.

덕분에 나는 창이 예쁜 방에서 (작업실을 얻었다면 고민해야했을) 연세에 대한 부담없이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우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딱 2년동안.

실제로 한 달을 살아본 결과, 주차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고, -이 부분은 신랑이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웃에게 방해받지 않는 삶이 2순위 정도 된다.

또 쓰레기 버리러 가는 길이 우리가족의 저녁 산책길이 되어 행복하다.

작업을 하기에 아무튼 안성맞춤인 곳이다.

빈부격차 따위는 생각도 안날만큼 부지런히 작업에 임해 볼 생각이다.

청년

청년다방에서 떡볶이를 먹다 창가를 보았다.

청년이란 맑은 하늘이나 바다와 같은 빛을띄는 사람이었나보다.

다섯개열개

정우는 요즘 큰 의미를 나타낼 때 ‘다섯개 열개보다 더’라는 말을 한다.

물이 “다섯개 열개보다 더 차가워”

귀여운 내새꾸❤️

딱풀의 사용법

정우와 색종이 붙이기를 했다. 딱풀을 테이프처럼 색종이와 색종이 사이에 칠해서 너무 귀여웠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사이에 반짝이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해 안해도 되

주말이고 미세먼지가 많다고 했지만 바다에 다녀왔다.

신나게 놀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도 들러 정우가 좋아하는 마트 안 빵집도넛도 사들고 왔다.

한편 신랑은 최근 식단조절을 하고 있는데, 3일 후에 있을 건강검진과 겹쳐 먹을 수 있는 것이 두부와 달걀 뿐이었다. 다행히도 두부요리 전문 체인점이 있어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정우는 당장 먹고싶어 찡찡댔다.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훔~ 도넛 먹고싶은데 훔~ ” 이럴땐 엄마도 지금 도넛 먹고싶다며 옆에서 정우처럼 똑같이 찡찡대면 해결이 된다.ㅋㅋ

저녁을 잘 먹고 정우는 약속대로 도넛을 먹었다.

아빠는 돌아가는 길에 세상 맛있게 도넛을 먹는 정우에게

“이럴꺼면 밥을 다 먹지 그랬어”

나는

“괜찮아 정우, 엄마는 그 마음 이해해. ㅋㅋㅋ”

이 말을 듣자마자 창밖을 보며 시크하게 정우가 하는 말.

“이해 안해도 되.”

OMG

결국 도넛 두개나 클리어.

수퍼우먼

오늘은 아크릴화 수업이 있는 날이다. 그것도 15명과의 수업이다. 그간 소수인원으로 수업을 해왔던지라 어떨지 궁금했다. 준비물만 세박스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입가에 그리고 볼에 뾰루지가 두 개나 났다. 꼭 이런날 뾰루지가 나지. 내세울건 피부밖에 없었는데 서른이 넘으니 이제 그것도 사라지려고 한다. 백자처럼 고운 피부였는데 속상하다.

엊저녁 일찍 잤더니 아침엔 7시도 되지 않아 눈이 떠졌다.

몸이 찌뿌드 해서 요가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신랑이 귀엽게 말한다.

“아침 만들어주나?”

평소 아침잠이 많아 매번 만들어주지도 못하는데 이럴때라도 만들어주자 싶다. 또 이쁘게 말하니 뭐라도 먹이고 싶다.

다행히 워크샵이라 점심 도시락은 안싸도 된다.

아침을 준비해서 반 정도 먹으니 정우가 일어난다. 웬일로 일찍 일어났다. 밖이 소란스러웠나보다. 덕분에 아빠가 출근할 때 문앞에서 인사할 수 있었다.

정우가 일어났으니 유치원 준비를 해준다. 준비물은 없는지 오늘 새참은 뭔지 살펴가며 아침으로 달걀 치즈를 먹인다. 요가는 이미 물건너갔다. 아침에 반쯤 뜬눈으로 매일아침 요가를 하던 날들이 종종 그립다. 그래도 요샌 정우를 보내고 아파트 앞 공원에서 줄넘기를 한다. 귀찮은 연락이 잦은 앞집과 내가 노는줄로만 아는 윗층 할머니의 심심찮은 눈치를 받지만 무시해본다.

유치원 버스 시간이 조금 남아 돌려둔 빨래도 건조기에 넣어둔다. 옆에서 정우가 도와주니 언제 이렇게 컷나싶고 무엇보다 너무 귀엽다.

때맞춰 나와 정우의 준비가 끝나면 집앞 자매국수로 오는 노오란 유치원 버스에 정우를 태워 보낸다.

아침에 미리 짐을 차에 넣어준 여보 덕분에 곧장 회사로 출발한다. 한때 나의 회사였던 건물로. 나쁘지 않은 회사였건만 신기하게도 너무나 미련이 없어서 종종 가지만 별 느낌이 없다.

다만 오늘은 두시간 반 정도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회사 다닐때는 그렇게 안가던 시간이다.

어쩐지 오늘은 수퍼우먼이 된 것같다.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데 좋은기분!

작가 김중혁

작가 김중혁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며칠 전 대화의 희열 ‘김영하작가’편에서 그가 했던 말이 끊임없이 나의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Who am i and if so how many?

나는 누구이며 또 몇명인가

내 안에는 다양한 중혁이가 있는데 그 중 글쓰는 중혁이는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는 말.

다른 중혁이가 예술가 중혁이를 먹여살린다는 이야기.

나의 지난 3년은 육아 핑계를 댄 것도, 신랑에게 생계를 내맡긴것도 아니다. 훗날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없이 살고 싶었을 뿐.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해 정우와 함께했다.

나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림 그리는 김초희를 지켜줄 새로운 김초희를 기대해달라.

아들의 코피

아들의 첫 코피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고 웃기기도 하고,

조이네랑 혼인지에 우도까지 온종일 너무 잘 놀았나봐.

꼬깃꼬깃

아침에 보니 아들의 유치원가방 앞 주머니에 꼬깃꼬깃 작은 종이접기가 들어있었다.

아무렇게나 접은듯 보이지만 나름의 방법이 있다. 우선 반을 접은 후, 또 반을 접고 또 반을 그렇게 네다섯번 정도씩 접는다. 3등분을 하여 접은 것도 보인다. 어느 저녁에는 접으며 나에게 설명도 해주었다.

“그 다음 이렇게 이렇게 하몀되~”

귀여움 폭발중.

클래식

나는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한다.

지난 해 정우를 집근처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면서 클래식 채널 라디오를 5분정도씩 들었던게 시작이었다.

클래식은 꽤나 흥미로웠다. -나영석PD가 진행했던 예능에서도 그런 게임이 있었다. 아는 멜로디에 모르는 노래제목-

다행히 제주에는 제주아트센터와 서귀포 예술의전당이 있다. 나는 영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문화예술 공연을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리하여 공연을 알아보던 중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오전시간에 클래식 공연을 한다는 공지를 보았다. 그것도 무료로! 서귀포로 내려간 김에 사진 작업을 하는 수오언니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이것이 내 생에 첫 클래식 공연이다.

공연 전 제주 방송에서 작은 인터뷰도 하게되었다. 인터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기 엄마라 클래식 공연이 잦은 저녁시간에는 관람이 어려웠다. 오전시간에 좋은 공연을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

두번째 공연은 정우와 함께하게 되었다.

피아니스트와 함께하는 ‘백조의 호수’ 공연이 바로 어제 저녁 열렸다. 나는 3시에 정우을 유치원에서 데려와 서귀포로 넘어갔다. 7시 반 공연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바로 옆 ‘기당미술관’으로 가서 전시관람을 하고 실내 라운지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다.

공연시간이 다가와 긴 줄을 서서 입장권을 받고 기다렸다. 정우는 오랜 시간에도 줄을 잘 서주었다. 기특했다.

공연은 피아니스트 2명의 합주와 샌드아트, 동화구연을 접목시킨 것으로 너무나 훌륭했다.

한 해 딱 한번하는 공연이라 어쩐지 더 좋았다.

다음 클래식 공연은 꼭 여보와 와야겠다.

기당미술관 전시

미술관 입구에서 매실을 하나 땄다. 운좋게 나무아래 떨어진 ‘잘 익은’ 노오란 매실을 주웠다. 쫍쫍 잘도 먹었다. 우리아들

공연 마지막장면

공연을 끝마치고 나오니 하늘은 짙푸르고 어두워져있었다. “정우덕에 멋진 공연도 보고 행복하다~ 고마워 정우야~ ” 하고 말해주었다.

아까 공연중에 쉬야하고 올때 뭐라한것도 미안하다고, 미리 말해주어 화장실 다녀오게 되어서 고맙다고 또 말해주었다 ㅋㅋ

+덧붙이는 말

백조의 호수 발레공연이 너무 보고싶어졌다.

아들그림

아이패드를 만지고 있는데 옆에 와서는 애플펜슬을 잡았다.

맨 처음 똥을 그려서 좀 놀랐다.

차례로 지렁이, 체리, 새, 똥

다시 천연염색

2016년 말, 나는 우연히 천연염색 작업을 하게되었다. 작품은 거듭할수록 서서히 정리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일년 후 몇몇 작품에서 색이 옅어지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후 천연염색은 포기하고 일년간 아크릴화로만 작업을 진행하였다. 한해동안의 작업물을 정리하고 전시준비를 하던 중 나는 이전에 작업했던 천연염색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그 색이 물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아름다웠다. 물감으로는 자연 그대로의 컬러를 나타낼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리하여 2019년 5월, 나는 다시 천연염색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공간사랑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액자 칠 작업을 하시던 ‘공간사랑’ 사장님!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이날1

정우는 다섯살이다.

유치원에서 배워온 노래를 종종 부르는데

일주일 전부터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전에는 역사를 빛낸 위인들 노래를 부르기도 ㅋㅋ-

가사를 잘 몰라서 흥얼흥얼대다 마지막 문구만은 확실하게 불러줬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세상

장화

새벽부터 비가 많이 오는 날이다.

트렌치코트 모양의 베이지색 우비와 공룡들이 그려진 장화를 신고 유치원에 보낸다.

정우는 쪼리를 신은 내 발을 만지작 거리더니

“넌 장화 없지?”

“너 작아지몀~ 이거(본인의 공룡 장화) 줄께~” 라고 한다.

~하면 이 아닌 하몀 으로 발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언제까지고 그렇게 얘기해 주었으몀 좋겠다. ㅋㅋ

또 정우는 옷이며 장난감들을 형아에게 많이 물려받아 입히는데 그때문에 나에게도 장화를 주고싶은 모양이다.

엄마발은 정우보다 크지만 고마워❤️

송홧가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신랑에게 오늘은 오렌지와 아빠가 보내 준 사과-올해 마지막 사과라며 보내주셨는데 냉장고 채소칸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레몬, 당근, 얼려둔 딸기등을 넣어 오렌지색 디톡스 쥬스를 만들어 주었다.

신랑이 출근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우를 깨운다. 정우는 일어나자 마자 이불속에서 기침을 했다. 어제 날이좋아 바다에서 물놀이를 한 탓일까. 미세먼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차갑지 않게 미리 꺼내둔 요거트를 다시 냉장고에 넣고 잣죽을 해주었다. 정우가 싫어하는 미지근한 물도 내어준다.

심한 감기같지는 않다.

정우도 가면 집정리를 한다.

빨래를 돌리고 이불을 반듯하게 펼치거나 장난감, 벗어둔 옷들을 정리한다. -밥을먹고 반듯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책을 읽는것이 좋다.-

바닥 청소를 할때는 청소기가 무거워 부직포 밀대를 사용한다. 가벼워서 손목이 아프지 않고 조용하고 머리카락이 잘 붙어 좋다. 주방쪽을 닦았더니 노오란 가루가 닦인다.

송홧가루의 계절이 돌아왔다.

바질과 생선

얼마전 신랑에게 바질화분을 선물받았다.

아침 일찍 해가 드는쪽 베란다에 두었는데, 큰 츄파츕스 사탕처럼 생겼던 것이 이제 제법 자라나 울퉁불퉁하다.

나는 제일 길게 자란 부분을 조금 뜯어와 정우에게 향기를 맡게 해주었다.

“생선 구울꺼야?” 하고 물어본다.

“맞아.ㅋㅋㅋ”

처세술

아들이 샤워헤드로 장난을 치다 천장이며 거울까지 물이 닿았다. 잔소리를 하자 아들은 작게 속삭였다.

“엄마 예뻐.”

엄마는 1초도 안되어 녹다운.

노오란 튤립

최근 윈드스톤 밖거리에서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눈앞에 꽃집이 있게되어 참새마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게된다.

최근 많이 고생한 신랑에게 출장후에 꽃을 선물하고 싶어 -마침 발렌타인데이 이기도 했고- 노오란 튤립 세송이를 샀다.

꽃이 마를새라 화병에 꽃아 베란다에 두고, 다음날 새벽 신랑이 올 시간에 맞추어 다시 곱게 포장하고 마음에 드는 엽서에 편지도 썼다.

신랑에게 처음으로 주는 꽃인것같은데 반응은 그닥.

아들은 37개월

설거지를 하는데 옆에서 정우가 말했다.

“엄마가 부끄러워”

정우야~ 엄마가 왜 부끄러워?

“엄마는 너무 예뻐서~”

정우 눈에는 엄마가 최고로 예쁘면 좋겠구나 ㅋㅋㅋ

나는 바람을 그릴래

최근 티비 보는것을 줄이기로 했더니 짧은 아침시간에도 새로운 놀이가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정우는 매일 아침 달걀 후라이 두개를 먹는다. 그리고 오늘아침에는 달걀 껍질에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흰 펜을 고른 후 정우는 말했다. “나는 바람을 그릴래!”

하늘과 바다

나는 바다가, 신랑은 하늘이 좋다고 한 적이 있다.

오늘 아침, 나는 이제 흰구름, 파란구름, 핑크구름이 모두 있는 하늘이 좋아졌다.

“귤 주세요.”

일년 전 아들의 작은 입에서 뱉어진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냐는 식으로 눈을 반짝이며, 몇번이고 “귤 주세요”를 외치던 아들은 이제 못하는 말이 없다. 습자지처럼 나의 말과 행동을 흡수하는 아들을 보며 내내 반성한다.

-‘슬기로운 깜빵생활’에 나왔던 ‘정경호’처럼 예쁘게 말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속상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귤철은 돌아왔고 주렁주렁 너무 많이 달려 나뭇가지가 휘어질 지경이다.

아들의 나무에 속 상한 열매는 떨어지고 예쁜것만 익어가길 바래본다.

아빠네 가족여행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는 나의 결혼 후 만 4년만에 제주에 오셨다. 고모네와 함께.

큰고모부는 일흔이 훌쩍 넘으셨고 기억속에 날카로웠던 둘째 고모부는 너무 웃긴 분이셨다. 머리숱을 뽐내며 굵은 파마를 한 곱디고운 큰고모와 작은고모가 계셨고, 막내고모는 말하길 할머니 소리는 정우에게 처음 들어보셨다고 ㅋㅋ 그도 그런것이 큰고모와 10살넘게 차이가 나니 아빠가 업어키웠다 하셨다. 아, 아빠 가족은 6남매이다.

나도 매번 까먹어 여기 적어둔다.

2018년 기준

큰고모(69세)-아빠(66)-둘째고모(64)-삼촌(63)-막내삼촌(59)-막내고모(58)?

막내삼촌과 막내 고모가 헷갈린다; (추후수정예정)

아빠는 내년 이맘때쯤 삼촌네들과 같이 오시면 좋겠다 하셨다. -미세먼지만 아니면 봄에 오셔도 이쁜데 – 아무래도 함께 못온것이 내내 마음쓰인 것이리라.

부모님들 덕분에 서먹했던 사촌들과도 조금은 친해진 듯 하고먼길 함께 여행와주셔서 고맙다.

또 고생해준 여보에게 무한한 감사를 ❤️

김초희 두번째 개인전

작업을 위해 사진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몇년 전 사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지만 앙상한 나무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알고보니 신랑이 제주에 내려 온 그해 겨울에 찍은 사진이었다. 뒤로는 한라산이 보이고 회사 앞에서 찍었다는 것으로 보아 나무는 벚나무로 추측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한라산 앞으로 큰 건물을 짓고있어 더이상 그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림을 완성하고 꽤 지난 후에 언젠가 신랑이 내게 말했다.

사실 그 사진은 되게 차갑고 외로운 느낌을 나타낸건데 니 그림은 왜이렇게 따뜻하냐고

다시 사진을 보니 그랬다. 차가웠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릴 당시에 나는 한라산이 내뿜던 노란 기운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그 본질이 품던 의도와는 별개로 그간 내 마음을 건드린 제주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을 소개하려한다.

김초희 두번째 개인전

2018년 11월 17(토)~26(월)

윈드스톤 갤러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성로 272

높고 귀중한 마음

누군가를 만나고 또 결혼을 해서 함께 살아갈 때,

이상적인 형을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길인가 싶다. 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음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尊 (높을 존), 重 (귀중할 중)

바로 이런 마음이다.

힙합

내가 추구하는 그림의 감성과는 다르게 나는 최근 힙합을 듣고있다. 무서운 미디어의 힘을 느끼며 사이먼 도미닉의 힙플쇼 영상을 본다.

그가 무대에서 마구마구 토해내는 것은 행복인듯 보였다. 예술을 하는 한 사람으로써 함께 꺼이꺼이 웃고 울 동료가 있어 부럽기도.

또 하나, 하고싶은 말은

그는 최근 AOMG 사장직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랩만 하고싶었다나.

나는 왜 이 이야기를 듣고 신랑이 생각난걸까. 그의 행복은 내내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걸까. 나는 결국 알 수 없는, 말로만 들어왔던 추억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을까.

어느 여름날

주방 수도꼭지 위로 그대의 손이 나의 것을 감싸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처음 만날때처럼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아들은 네살이나 먹었고, 결혼한지 4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선풍기 바람과 쿠폰

아침에 정우에게 복숭아를 깍아 주었다.
정우는 식사를 할때 휴대폰을 보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심해지는듯 하여 최근들어 제지하려고 하는 중이다. 
“정우야 밥 다 먹고 보는거야~” 라고 하니 “이제 마지막이야~” 라고 대답한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또 휴대폰을 주고야 말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보던 앱의 코인이 만료가 되어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침 얼마전 신랑이 가져온 코인 충전 쿠폰이 있었다.
나는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쿠폰을 다리쪽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선풍기 바람때문에 쿠폰이 날아갔다. 선풍기는 회전 중이었다. 떨어진 쿠폰을 두 번 주워주던 정우는 세번째로 떨어지기 전에 선풍기를 끄고 왔다. 덥다고 얘기하며.
쿠폰등록이 완료된 후엔 내가 선풍기를 켜 주었다.

정우는 오늘도 흐트러짐 없이 공룡뼈를 맞추었다.

소확행

이 더운 여름날 화장실 공사를 하게 되었다.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림

나는 유년시절 그림으로는 먹고살지 못한다는 말을 종종 듣고 살았다. 엄마는 그랬다. 배운적 없는 그림솜씨가 어마어마 했지만 그걸로는 먹고 살 수 없었다. 엄마에게 그림은 아쉬움을 달래듯 그저 취미로 남았다. 그러니 우리 가족에게 그림은 사치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내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것은 부모님께 적지않은 부담이었다. 물감 살 돈이라도 아끼고자 3년 내내 연필 소묘만 했다. 결국 그림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며 디자인과를 선택하여 20대를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디자인은 나와 맞지 않다고, 이 길을 가지 않겠다 생각하며 졸업했다. 그리곤 결국 그림이라며 되돌아오던 지난날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자 그림은 더욱 그리기 힘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듯 태교삼아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했다. 아기가 잠들면 새벽에 겨우 그린 그림을 갖고 프리마켓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림은 다시 저 멀리 달아났다. 안개속에 있는 바다와 같았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꿈같은 것이었다. 신랑과 나 그리고 아기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다행히 최근 아이가 어린이집을 오후까지 다니기 시작하면서 모든것이 변했다.
아이과 떨어져 있는 여유시간동안 나는 온전한 나의 삶과 마주했다.

그것은 그림이었다.

꽃할배

신랑과 나도 황금같은 전성기를 보내고 70, 80대가 되어서도 저렇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아니 할배들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와의 작별

얼마전에 할머니 상으로 영천에 다녀왔다. 그러니까 정우한테는 증조 할머니인 셈이다. 외 증조할머니. 내 기억속 할머니는 담배를 태우시며 아궁이를 살피는 건강한 분이셨다. 그런데 결혼전인가 언젠가부터 누워계시더니 병원을 왔다갔다 하며 어빠가 간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이었다. 여느날과 다를 것 없이 우리는 인디고에 있는데 신랑이 나의 언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다음주면 영천에 한번 들를 참이었다. 어버이날에 뵙지 못해 적당한 때에 비행기표를 끊어두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일주일을 못기다리시고 눈을 감았다. 신랑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라고 얘기를 했을때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났다. 난 엄마를 고생시킨 할머니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나오는것이 왠지 이상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산랑은 잦은 출장으로 비행기표 예매 방법은 누구보다 잘했다. 마침 성수기고 연휴가 낀 주말이라 아무리해도 표가 나지 않았는데 신랑은 표를 구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영천으로 향할 수 있었다.

정우는 왠일인지 영천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잘놀고 잘먹었다.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많이 커서 그런지, 본인이 좋아하는 이불 -엄마가 결혼선물로 사준 알레르망 이불이다. 사각사각하고 시원하다- 을 가져가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잘 먹고 잘 지내주었다. 장례식장에서도 산소에서도. 다행히 개월수에 비해 말을 잘하는 정우는 처음보는 온 친척들 사이에서 귀염둥이가 되었다. 정우덕에 검고 하얀 곳이 웃을일이 생겼다. 다행이었다.

정우는 금새 말도 생각도 늘었다. 일주일새 몸무게도 12키로에서 13키로가 되었다. 제주에선 그렇게 늘지 않던 몸무게였다.

돌아와서는 영천 사투리를 써서 여간 당황스러울수가 없다. 게다가 다시 미운 네살로 돌아오려고 한다. 엄마는 많이 힘들다.

어느 날 저녁

어느 날 저녁,

밥을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가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니가 꼬셨지만 내가 널 더 좋아하지.”

나는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가 대답했다.

“넌 모르지만 난 알지 “

나는 내내 그 말이 좋았다.

공룡메카드

아들은 공룡메카드에 미쳐있다.

사도사도 또 사고싶은 모양이다.

집에 장난감이 넘친다.

나의 어린시절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어릴때 무슨 장난감을 갖고 놀았는지 기억을 떠올려본다.

유치원 원장님이 크리스마스에 산타복장을 하고 줬던 미미인형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우리 어릴때 뭐 갖고 놀았냐고 물었더니 그 인형을 갖고 놀았단다.대신 손재주 많은 엄마는 우리에게 인형옷을 수십벌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인형옷을 만들어 주었다니..

나는 그 기억이 나지않아 눈물이 계속 났다.

엄마는 늘 말했다.

우리 삼남매는 아무렇게나 키웠는데도 잘 자라주었다고.

아무렇게나 키운게 아니었다.

나는 과연 홍정우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엄마가 되고 2년이 훌쩍 지나고 보니

새벽같이 일어나 요리하던 나의 엄마가,

아침마다 볕이 잘드는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던 엄마가,

이제사 이해가 된다.

금능

어제같은 날엔 무조건 금능이었다.
전날부터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수영복, 여벌옷, 씻을물, 간식 등을 준비해두었다.
한편, 정우는 새학기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한다. 어제는 입구에서부터 들어가기 싫다고 울며불며 떼쓰다 결국 야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삼십분 정도 놀게되었다.
그리곤 바로 나와함께 금능으로 향했던 것이다.
바다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어제는 날이 좋아 놀이터에서도 놀고 바다에서도 엄마랑 신나게 놀았지만 오늘은 꼼짝없이 12시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잘 할 수 있을지 ..

세수

어제 저녁에 세수를 하려고 얼굴에 거품을 보글보글 묻혔더니 정우가 와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왜 할아버지 됐어?”

나의 신랑

눈이 오는 김영갑 갤러리에서 꽃이 만발한 엽서를 사들고왔다.

그리고 나의 신랑은 점점 멋있어진다.

로즈마리

나무만큼 큰 로즈마리를 조금 꺽어왔는데 방이 정리되었다. 나는 찬장에서 신랑이 쓰지않는 술병을 꺼내왔다. 우키요에 풍의 일본 여자가 그려진 작은 술병이었다. 꺽어온 로즈마리를 나는 그 작은 술병에 담가두었다. 봄에 뿌리가 내리면 아파트 화단에 심을 생각이다.

집앞 마트에서

나는 종종 결혼한 후 아기없이 이쁘게 잘 살고 있는 커플들이 많이 부러웠다. 그런데 오늘 집앞 마트에서 정우가 우렁찬 목소리로 “아빠~” 하고 달려가는데 그 순간이 자꾸 생각이 난다.

방심

따뜻한 겨울날,

형제섬이 보이는 바닷가 앞이었다.

큰 돌 위에서 우리가 잠시 방심한 틈을 타

정우의 오른쪽 볼에 큰 상처가 생겼다.

무엇때문인지 당시엔 놀라지 않았는데

그날밤부터 잠이 도무지 오지 않는다.

2017.12.31

신랑은 얼마 전 새벽 세시에 출근을 했다.

새해부턴 업무가 바뀔 예정이라 신경 쓸 일이 많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많이 피곤한지 정우와 놀아주는 질과 양이 달라졌다. – 출장길에 다친 무릎때문이기도 하니 이부분은 패스하자. 빨리 낫길! –

29일 저녁이었다.

보통 아홉시 반쯤 우리는 침실로 가 한시간정도 뒹굴다 잠드는 편이다. 열시쯤 되었을까. 눈이 반이상 감긴 신랑이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야, 아빠 재워줘~”

정우는 아빠 어깨를 토닥이며 “자장~ 자장~” 해주었다.

이어 나에게 와서도 자장가를 불러주었고 나는 정우의 빵같은 왼쪽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행복하다. 여보~” 나도 모르게 뱉어진 말이었다.

그리곤 신랑은 금새 잠이 들었다.

한편,

30일 토요일엔 인디고를 다녀왔다.

나의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 인디고에서 바라언니와 우리는 토요일 11시부터 한시간동안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이 있다.

부지런한 신랑덕에 어제는 오픈전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오픈부터 손님이 많아 커피를 내어오고 여유가 생길무렵 언니는 빨간 끈으로 포장된 새하얀 선물상자를 내보였다. 직접 만든 마들렌이었다.

바라언니와 나는 감동의 물결로 하나되었다.

돌아오는 길엔 내가 어떻게 이런 좋은 사람들을 만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

우리 가족은 제주에 살면서 연말에 육지 친구들이 그립다. 친구들과 거나하게 한잔 한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행복하고 그리운 연말이 지나간다.

재주소년과 귤

chohuikim:

12월 9일이었다.

한달 전부터 예약해둔 재주소년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정우를 재우고 함께 동행하기로 한 바라언니의 작업실에 들렀다. 한참 수다를 떨다보니 벌써 공연시간이 코앞이었다. 공연은 네시인데 가려면 삼십분은 걸릴터였다. 언니는 공방문을 닫을 수 없어 나를 데려다 주기로만 했다. -언니도 정신이 없었던터라 공연이 오늘인지도 몰랐단다- 쌩 달려 도착한 공연장에선 이미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프닝을 놓친건 아쉽지만 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우선이었다.

공연은 결혼 전 보았던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후 처음이다. 재주소년의 목소리는 mp3로 듣던 그 소리와 너무 똑같아 놀랐고, 공연장이 너무 추워 -반짝반짝 지구상회는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다- 소매를 내리는데 가끔씩 보이는 그의 손목은 너무 섹시해서 반했으며, 마지막 곡의 첫 기타소리가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신랑을 불렀다. 다행히 정우는 그동안 잘 잤다고 한다.

한편,

정우가 처음으로 말한 문장은 “귤 주세요.” 다. 보사노바를 듣고 자란 ‘루시드폴’이 농사지은 귤을 한입 먹고는 “뀰 두떼요.” 라고 말했다.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뒤로하고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오던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뒤로하게 되었다.

이는 그간 진행했던 작업물 중 일부 작품에서 천연염색 부분의 색이 옅어지는 사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인스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으며 연락이 닿는 분들에 한해서는 작품이 모두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 어느 분께서는 조금 물이 빠지기는 했으나 이삼년 지났으니 천연염색의 특성상 시간에 따른 것이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한다”는 말씀과 함께 외려 격려해주셨다.

좋은 분들께 작품이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기에 나는 천연염색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광목에 아크릴만으로 자연의 색을 담아보기로 했다.

첫 시도작은 대 성공이다!

별에게로 가는 길

오래전부터/ 내가 소를 잊고 살듯/ 별쯤 잊고 살아도/

밤마다 별은/ 머나먼 마음의 어둠 지고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상국의 ‘별에게로 가는 길’ 중

긴 추석 연휴

이번 추석 연휴는 길다.

이 길고 긴 연휴동안 나는 무얼할지 고민한다.

아무래도 지금 살고있는 이 집에 오래 살게될것같은 느낌이니

좀 더 애정있게 집을 정리하기로 한다.

싱크대부터 유리창까지 그간 못본척 신경쓰이던 곳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베란다 창문을 닦으니 창문너머로 보이는 집앞 놀이터와 나무들이 환히 보였다.

우리집은 2층인데 창가쪽에 나무 꼭대기 부분이 딱 맞닿는다.

정우는 종종 맨발로 베란다를 돌아다니는데 -베란다에 둔 크록스 슬리퍼를 신기가 아직 귀찮고 어려운 모양이다- 이제 정우가 나무들을 더 환히 볼 수 있어서 가장 좋다.

오후에 석양이 질때면 노란빛과 나뭇잎 그림자가 거실까지 비추는데 그 모습도 좋다.

한편,

우리 세 가족은 놀러다니고 밥을 먹게 되는 시간이 늘었다.

정우와 내가 듣는 수업에 여보가 참여하기도 했다.

또 오랜만에 여유있게 세 가족이 여행을 다니니 데이트를 하듯 새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늘어난 만큼 싸움도 늘었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이 다르거나 오해해서 부딪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도 언젠가 둥근 자갈이 되어 예쁜 소리도 나겠지.

간질간질 간지러운 냄새

나의 팔이 그의 작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눈을 감고 얼굴을 맞대면 나의 광대가 그의 눈두덩이에 폭 잠긴다.

나는 그 느낌이 좋다.

보들보들한 살결에 작은 속눈썹이 간질간질 나를 간지럽힌다.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속눈썹이 처음 길어 나올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속눈썹으로 그의 찹쌀모찌같은 볼을 간지럽혀본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면 그의 냄새가 솔솔 난다.

로션 냄새인지 섬유 유연제 냄새인지 기저귀냄새인지 모를 이런저런 냄새들이 뒤섞여 난다.

“초희 냄새가 솔솔 나네~”

어릴적부터 엄마가 내게 자주 해주시던 말이다.

나는 이제

“정우 냄새가 솔솔 나네~” 라고 말한다.

가족계획

우리는 얼마전 가족계획을 마무리하였다.

이로써 정우는 5대 독자가 되었음을 알린다.

만나게 되는 아기 엄마들과의 대화에서도 둘째 얘기를 한번은 하게되고 집앞 놀이터에서도 간혹 할머님들을 만나면 둘째 셋째 말씀들을 하신다.

“아이구 키워주실꺼 아니면 그런말씀 마세요~”

웃으며 뼈있게 대답해본다.

바를 정. 도울 우.

부모님께서 받아오신 이름중 가장 우리의 뜻에 맞는 이름이었다.

혼자지만 바르게 자라 남을 돕고 나눌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감물염색

얼마전 감물로 염색한 천이 이제야 색이 나왔다.
감물은 살균효과가 뛰어나 천에 염색하면 벌레들이 비켜간다고 한다.
나는 고이 보관하던 정우의 배냇저고리와 돌한복을 꺼내
기다란 감물염색천으로 감쌌다.
정우가 클때까지 벌레들이 비켜가길 바라면서.

변기통에 변기통에 쉬야해요

자기전 기저귀와의 전쟁은 늘 있는 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저귀를 하기 싫어하는 정우에게

“기저귀 하기 싫으면 변기통에 쉬야해야해.”

라고 말했더니

정우가 벌떡 일어나 거실로 가더니 변기통에 앉아 쉬야를 하는것이 아닌가.

대박!

잠들기 전

뒤척뒤척

정우는 잠이 들 무렵 데굴데굴 구른다. 그러다 내옆에 오더니 오른볼에 뽀뽀를 하고는 한바퀴 옆으로 굴러가 잠이 들었다.

잘자. 정우야~

놀아줘

내가 정우를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정우가 나랑 놀아주는 것이라 생각해보자.
“정우야 엄마 심심해~”

몸살

나의 신랑은 잘 안아프다.
하지만 한번 아플때 열이 많이 나고 심하게 아픈편이다.

얼마전 신랑은 교통사고가 났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목에서 허리까지 근육이 조금 아프다고 했다. 약의 도움을 받아 좀 나아진 듯 보인다.
잘 모르겠는것이 신랑은 아프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사고가 난 그날도 덤덤하게 “사고났어.” 라고 말했다.
어제는 사고 후 병원을 다시 찾는 날이었는데 몸살이 났다.
휴가에 몸살이라니..

오전엔 정우의 수업이 있어 나갔다 오는길에 마트를 들러 신랑의 몸살패키지 장을 봤다.
1. 잘 먹지 않을 도라지 청
-만들어야하나 고민했는데 고맙게도 완제품이 있다.-
2. 비타민 충전 오렌지쥬스
3. 집앞에 없어서 슬펐던 크림빵
외 몇가지 것들을 사고 오는데 무게를 생각못했다.
가방만 혼자 들기에도 무거운데 정우도 있다. 망했다.
손목과 어깨에 무리가 왔다.
점점 무거운 것을 드는것이 익숙해 지고 손가락 힘이 좋아지는것이 그리 달갑진 않다.

지친 하루가 지나갈 무렵,
신랑의 온 몸엔 식은땀이 흘렀고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우는 잘 생각이 없었다. 누워있는 나를 서너번은 일으켜 세워 놀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같이 누워있으니 나의 온몸도 콕콕 쑤시고 으슬으슬 추웠다.
나까지 아프면 안되는데.. 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렇게 생각하면 감기도 달아난다고 했다. 대학생 시절 교수님이 해줬던 그 말을 난 믿는다.

나는 잠드려는 몸을 일으켰다.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 거실에서 잠드려는 신랑의 몸을 닦아주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신랑을 간호할 수 있었다.
그제야 잠이 들었다.

Oui

Oui.
정우가 내 기분을 풀어줄 때 하는 말이다.
긍정의 대답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 oui [우이]와 억양또한 흡사하다.
내가 짜증이 났거나 화가 난 듯 보이면 내곁에 다가와 우이 우이 하는데 너무 귀엽다!

블루베리

14,850원짜리 블루베리를 샀다.
오일장에서 만원이면 살 블루베리를 어제부터 꽤나 울어대는 정우를 위해 고민않고 사버렸다.
포도든 블루베리든 뭐라도 사야했다.
어젯밤 책에서 본 보라색 열매를 보고 블루베리 내놓으라고 울고불고 난리친 정우에게 내일 꼭 사주겠다 약속했던 터였다.

어제 오전이었다.
정우는 수업을 듣다 너무 신난 나머지 뛰어다니다 바닥으로 슬라이딩했다. 왠일인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과자로 달래는 것도 소용없었다. “그럼 집에갈까?” 라고 물었더니 울면서도 “됐다” 라고 대답했다.
아빠와 점심을 먹기위해 회사로 가기로 하고 정우는 뒷좌석에서 늘 보는 뽀로로를 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백미러에 정우는 금새 잠이들어 있었다.
꽤나 아팠던 모양이다.
이후 점심, 저녁을 먹을때 이가 아픈지 숟가락이 닿으면 짜증을 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오늘 오전엔 아기 전용 치과를 다녀왔다.
첫 치과다.
다행히 금이가거나 흔들리는 등 뼈에 이상은 없지만 신경을 다쳤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치과안에 미끄럼틀, 타요시청 등 아이들이 무섭지 않도록 다양한 놀이시설들이 있어서 꽤나 좋았다.-
돌아오는길에 블루베리를 샀다.
당장 내놓으라는것을 집에가서 씻고 먹자며 달래본다.
아파트 통로 입구에 있는 뽀로로 자전거를 그냥 지나칠리 없다.
몇번 타지 않고 블루베리로 유혹해 집으로 겨우 데려왔다.
손발을 씻기는데 예쁘게 가만히 있어줄리 없다.
결국 나는 정우에게 화를 냈다.
손발 씻고 먹자고!!!! 블루베리 준다니까!!!! 적당히 좀 해!!!!!
블루베리가 문제는 아니었다.
아침부터 유모차를 끌고 치과를 다녀오는데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짜증이 많이 났을것이다.
게다가 어제부터 쫌만 신경이 거슬리면 울어대는 정우에게 나는 아침부터 많이 지쳐있었다.
다행히 여보가 아침 출근길에 말해주었다. 오늘 금요일이니 힘내라고.
길고 긴 금요일이다.

축 생일

여보 생일 축하해요!
좋고 나쁜 유혹들을 맞이하며 평생 함께 살아요 우리!(표선 해비치해수욕장에서)

번쩍

곽지과물 해변이었다.
모래로 뒤덮인 발을 씻고 차를 타야했다.
트렁크엔 삼다수병에 담아온 수돗물이 있었다.
-여름이라 늘 휴대하고 있는 아이템이다.-
나는 트렁크에 앉았고 신랑은 그 물로 내 발을 씻겨주었다.
나는 드라마에서처럼 옆으로 번쩍 안겨 뒷좌석까지 안착했다.
생각해보니 요새 드라마엔 이런 오글거리는 모습이 나오진 않는것 같다.

젖떼기

지난 화요일 아침이었다.
난 갑자기 정우에게 젖을 그만 먹이고 싶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두돌까지 먹이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정우가 18개월하고도 이틀이 지난 날이다.
올 여름은 많이 덥다.
이제 7월 초인데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다.
더운데 나는 젖을 떼느라 가을에나 입는 검은색 목티를 입었다.
정우는 습관적으로 “찌찌"를 찾았다.
"찌찌"라고 정확히 얘기하며 늘 수유하던 의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엄청 원할때는 먼저 가서 앉아있곤 한다.
몇달전부터 정우는 아침에 일어날때만 먹던 젖을 낮에도 밤에도 수시로 찾기 시작했다.
젖을 먹는 아니 빠는 즐거움을 안 것 같았다.
젖은 더이상 식사가 아닌 장난감이 되었다.
나 또한 젖을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워지고 피곤할때는 주기싫어 짜증을 내는 일도 많아졌다. 신랑은 그 모습이 보기 싫어 그냥 끊으라고 늘 얘기했다. 하지만 난 계속 주고싶었고 그날은 왜였을까. 더이상 주고싶지 않았다. 갑자기 마음이 먹어졌다.
정우에게 때가 온것도 같았다.
정우나 나나 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튿날 앞집 언니에게서 전수받은 홍삼발라 떼기를 시도해본다.
부위에 홍삼을 발라 "엄마 아파서 약발라~ 이제 빠이빠이야~”
라고 했더니 정우가 절레절레 넣어두라고 한다.
이후로 종종 찾기는 했지만 젤리, 과자 등으로 환심을 샀고 점점 찾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10일 후 완전히 찾지않게 되었다.

결론은 이러하다.
정우는 18개월간 젖을 원없이 먹었다.
젖을 끊었다.
어렵지 않게 빠이빠이 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이야기

신랑은 출장을 갔고, 얼마 전 엄마와 언니가 다녀간 여파일까.
어쩐지 허전하고 외로운 하루다.
다행히 오늘 하루 잘 지내준 정우는 어렵지 않게 잠이들었고 반대로 나는 여전히 잠못들고 있다.
맥주로 달래보지만 역부족이다.
살을 빼야하니 안주는 없이 맥주만 마시자고 약속했지만 택도없는 소리다. 아직 나는 다이어트 의지가 없는 것이다.
정우를 재운 후 홀로 남은 나의 시간에는 보통 이러한 일을 한다. 맥주로 알딸딸함을 느끼고, 과자로 짠단을 맛보고, 낮에 어린이 채널로 못본 티비채널을 본다. 오늘은 알쓸신잡이다.
제대로 보지 못하고 띄엄띄엄 보았던 것을 다시 보고있자니 함께 보고 있었던 그 순간 옆에 있었던 여보가 그립고 그 좋은 목소리가 그립고 말도 안되는 설명을 늘어놓던 그 모습이 그립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는 아무래도 혼자 살수는 없는 것이다.
정우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 정우는 혼자 회전 미끄럼틀을 탔다.
신랑이 출장만 가면 쑥쑥 크는 정우이다.
최근에는 엄마와 언니가 제주에 놀러온 사이에 말이 엄청나게 많이 늘었다.
갑자기 말을 하는 방법을 터득한듯하다.
날이 갈수록 말이 느는만큼 밖에서 노는 시간도 늘고있다.
오전에 나갔다 와서 낮잠자고는 오후에 또 나가자고 신발을 들고온다.
부지런히 체력을 길러야겠다.

비양도

해마다 제주 금능해변에서는 바다의 날을 기념하여 ‘재주도 좋아’가 주최하는 행사가 열린다.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공예품을 만들고 -이를 두고 비치코밍라 한다-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행사에서는 프리마켓 ‘엿바꿔먹장’도 열리는데 나는 지난해 비양도 그림을 통해 인연이 되어 올해도 참여하게 되었다.
하늘은 파랬고 비양도는 그날따라 손에 닿을듯 가까웠다.

비양도는 내게 있어 애정어린 작품이다.
맨 처음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그린 풍경이기도 하고, 제주의 바다 중 금능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옆 해변인 협재에서도 비양도를 볼 수 있는데 처음엔 그 앞에 있는 카페에서 바라보는 해변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차도 사람도 많아지게 되었고 두서없이 즐비해진 카페도 협재로 발길을 끊는데 한몫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적한 금능으로 발길을 돌렸다. 최근엔 금능에도 사람이 많지만.

이렇게 금능에서 열린 엿바꿔먹장을 마지막으로 나의 프리마켓 참여가 끝났다.
-프리마켓 불참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썰을 풀도록 하겠다.-
그간 작품전반에 대한 통찰과 판매, 운반 등 다방면에 활약을 펼친 신랑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또 먼길 차로 이동하면서 아침을 먹고, 춥고 더운데 제대로 놀지 못하고 고생해준 우리아들도 고맙다.

비양도를 많이 그리다 보니 멀리 흐리게 보이는 것들이 궁금했는데 하나하나 눈에 담아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마지막은 늘 시원섭섭한 감정이 제격이다.

인디고와 바라언니

하늘이 맑은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다.
신랑의 지인이 -이제 나의 지인이기도 하다- 제주로 여행을 왔다.
우리는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왼쪽에는 처음보는 카페가 있었다.
그것이 인디고와의 첫 만남이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나의 첫번째 전시인 태교전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생각해보면 무턱대고 연락해 내 그림을 전시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너무 좋다고 말씀해주신 사장님도 참 신기하다.
지금도 위안이 필요할 땐 어김없이 인디고를 찾는데 어느순간 나의 집에 온것같은 느낌이 들던때가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인지 여사장님의 예쁜 미소때문인지 그윽한 커피향과 맛있는 케익 때문인지 모를일이다.
어쩌면 운이 좋아 갓 구운 스콘을 바로 먹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일지도..
바라언니와의 인연 또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카페 중앙에 자리한 테이블에는 각종 서적과 꽃 등이 자리해있는데 그 곳에 고운 그릇이 있었다.
그렇다.
바라언니는 그릇을 만드는 언니다.
언제고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니 토요일 오전 한가로운 주말 아침에 다같이 볼 기회가 있었다.
여리여리하지만 강단있는 손 끝이 그녀의 그릇과 닮았다 생각했다.

어제는 그간 작업해오던 천연염색 아크릴화의 문제점을 눈으로 확인한 날이었다.
제주 동쪽 샵에 납품한 그림이 너무 멀어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관리가 잘 안되어 철수를 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는데 두 점의 그림에 색이 많이 날아갔다.
안타까움은 오래 남았다.
천연염색은 빛에 약해 색 보존이 어렵고 변색이나 이염이 잘된다. 그것이 천연염색의 매력이자 취약점이었다.

그렇기에 어제는 왜인지 바라언니가 무척이나 보고싶었다.
이런저런 작업의 고충을 얘기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여러가지 조언도 함께 얻었다.
바라언니에게는 마음의 평안과 함께 시원시원한 그녀의 성격과 닮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인디고에서 셋이 함께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들날을 기약한다.

빨래

빨래를 개어 넣고있는데
정우가 따라와서는 아빠 양말을 두는 곳에 행주를 넣어주었다.
고마워 정우야 꺅-

투표날 아침

여섯시였다.
밤새 비가 내린듯하다.
신랑이 부랴부랴 일어나 책상앞에 앉았다.
장애가 떴다고 했다.
도와줄 것이 없는 나는 다시 누웠다.
잠시 뒤 나를 부르더니 회사를 다녀와야겠다고 했다.
아.
창밖을 보니 밤새 비가 내린듯 하다.
지금도 내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보 조심히 다녀오세요.
다녀와서 아침먹고 투표하러 갑시다 우리.

벨롱장

오늘 벨롱,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열립니다.
잔디밭이 넓어 정우가 놀기 너무 좋아요!!!!

벨롱장

그림같은 하늘입니다!
오늘 벨롱에서는 그런 그림을 알아봐주시는 분이 계셨지요~
천연염색은 빛을 보면 바래는 것이 아니라
더 예뻐진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고맙습니다*

엄마랑 떨어진 첫 날

정우는 이제 17개월에 접어들었다.
그간 아빠의 출근과 출장에는 익숙해진 터,
-익숙하긴 해도 출근하는 아빠와 떨어지기 싫은 정우다-
꼬박 24시간이 넘는 나와의 이별은 첫 시도다.

나와 정우의 이별 이유는 바로 나의 육지여행 때문이다.
여행 계획은 아래와 같다.
1. 아영이의 신혼 집들이, 세종이다.
2. 언니의 이직으로 인한 이사, 청주 공항에서 15분 거리다.
때마침 두 사람의 집은 꽤 가까운 거리였고 이동역시 민지가 차를 몰고 온다니 안갈 이유가 없다.
다만 정우가 걱정일뿐.

하지만 쿨한 여보덕에 그리 고민하지 않고 비행기 표를 끊게 되었다.

집에서 나오는 길에 정우는 아빠가 또 가는 줄 안 모양이다.
아빠곁을 떠날 생각이 없는 정우는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정우야 오늘은 엄마가 간단다 ..

정우가 옆에 없으니 편했다.
비행기 탈때도 편했고,
커피를 마실수도 있었고,
밥을 먹을때도 온전히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 잠깐이었지만 알찬 시간을 보냈고
아영이와 민지도 만나 신나게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런데 나는 종일 뭔가 허전했다.
페이스타임을 했다.
정우는 나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어댔다.
흐어어어엉
나도 눈물이 났다.
내가 욕심부려 정우의 마음에 큰 상처를 냈나 싶었다.

오늘저녁 잘 보내고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수건

샤워가 거의 끝나갈 무렵
거실에 있던 정우가 수건을 건네준다.

정확히는 의자에 걸려있던 수건을 아래로 당겨 -키가 모자라기 때문- 가져다 주려다 의자가 넘어졌다.
정우는 깜짝놀라 울었다.

옆에있던 아빠가
“우리정우 엄마한테 수건주려고 했어?”
라고 해주어서 상황 파악이 되었다.

오구오구 이쁜 내새끼

이제껏 성악설을 믿던 나였다.

드디어 정우의 울음에 익숙해진 듯 싶다

외출로 오전에 한시간가량 낮잠을 잔 후
다섯시반이 되어서야 다시 잠든 정우였다.
-낮잠은 보통 12시쯤부터 두시간 쭉 잔다-
여섯시 반,
정우는 정확히 한시간을 더 잤다.
그때 난 정우의 산모수첩을 정리하며 출장간 신랑과 통화중이었다. 찡찡 소리가 나길래 봤더니 벌떡 일어나 걸어오려고 했다.
얼른 안아 토닥였지만 정우의 컨디션이 좋지않아 얼른 같이 저녁밥을 먹기로 한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기 식탁의자에 앉혀놨다.
정우는 주방에 둔 귤 두개를 보고 당장 달라며 세상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줄 순 없었다.
맛있는 저녁을 위해서.

엉엉 눈물콧물 흘렸지만 오구오구 엄마가 빨리 저녁 줄께~ 대답만 해줄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귤을 까주었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을 냈거나 안아줬거나 했을텐데 아니었다.
그저 이해해주고 가끔 못본척도 하며 저녁먹고 귤 먹자~ 대답해줄 뿐이었다.

저녁은 유부초밥이었다. 난 카레 ㅋㅋ
-보통 출장전엔 가벼운 식사꺼리나 반찬을 쟁여둔다. 혼자 밥해먹이기 힘들까봐. 매번 눈물난다. 그런데 이번엔 출장이 길다. 무려 4일이다. 크흡ㅠㅠ-
암튼 그 유부초밥을 정우는 맛있게 엄청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었는데 내려올 생각이 없다.
뒤에있는 귤을 돌아보며 까주길 기다렸다.
ㅋㅋㅋㅋㅋ
짱귀엽다.
먹는동안 설거지를 얼른 끝내니 정우가 또 돌아봤다.
아 귤 두개였지…
똑똑한데…
정우는 귤을 두개나 먹고 나서야 만족한 응가를 뽀직 싸보였다.

나는 부족하고 염색은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부족하고 염색은 어려운 것이었다.
-오방색으로 하는 천연염색, 정옥기-

나는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작업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예전 작품이 물이 빠진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집에서 몇달째 보관한 염색한 천은 색이 바래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내 손을 벗어난 작품은 공기 산화와 햇빛 노출 등으로 인해 결국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도 그런것이 염색을 확실히 배우지 못한 나의 부족함도 있었겠고, 30여년 염색을 해오신 정옥기님도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졌다 하신다.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어렵지 않게 작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나의 큰 실수이자 오만이었다.
하지만 곧 나는 가슴에 무언가 두근거림이 생겼다. 무궁무진한 답이없는 이 천연염색의 세계가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간 후루룩 그리던 펜화를 좋아하던 내가 이 고생스러운 작업에 빠지다니.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이리날아 오너라~
정우가 좋아하는 노래다.

노랑나비가 나오는 책이 있다.
음메~ 젖소옆에 노랑나비가 함께 있는 책이다.
늘 그책을 읽을때면 나비를 가리키며
나비야 나비야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오늘 나에게 안겨 찡찡대는 정우에게 나비야를 불러주었더니 곧 내품을 벗어났다.
그런데 또 꺅- 소리를 지르기에 정우를 보았더니그 책을, 나비가 있는 페이지를 어느샌가 펼치고서는 나에게 보여주는것이 아닌가.
맙소사.

아가들은 지성이 하루가 다르게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더니 정말 내새끼 천재인가봐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눈엔 잘 보이지 않는 감성도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이쁜짓

정우는 최근 “이쁜짓” 이라고 하면 손가락을 볼이 아닌 귀에 갖다대며 머쓱하게 웃는데 귀여워서 미칠것 같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는 아니었으면 한다.

행복을 강요당했다.
아가를 키우는 지금이 가장 좋을때라며 나는 엄마에게 행복을 강요당했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짧은 삼십인생 겪은 바로는,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다는 논리는 내겐 틀렸다.
도대체 지나고 보니 고교시절이 좋았다는 말은 누가 뱉은 것인가.
각각의 시에 불행이, 행복이, 슬픔이, 기쁨이 뒤엉켜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좋고 나빠 흑백논리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느니 같은 소리는 내겐 드라마에나 나오는 시간여행같은 소리일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이 가장 좋을때는 아니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남은 일생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충분히 오늘을 살아 앞으로의 날들이 계속해서 보다 더 좋은 날이길 바란다.
오늘도 내가 끊임없이 정우를 사랑하고 또 싫어하였듯이.

수선화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663

물에 사는 신선, 수선화를 만나고 왔다.

사실 수선화를 알게 된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새 수선화에 빠져들게 된 나는 당장이라도 만나러 가야했다.
여러분도 위의 저 브런치 글을 읽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신랑의 반차 찬스를 이용한 우리 가족은 수선화가 만발했다는 대정향교로 향했다.
서귀포는 햇살이 좋았고, 하늘이 맑았고, 유채꽃이 벌써 만발했고, 바람은 찼다.

넓은 마늘밭을 지나 우뚝솟은 오름 아래 향교가 고즈넉히 자리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수선화가 내게 왔다.
정우에게도 향을 맡게 해주니 사르륵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밖에서도 곧잘 걸어다니는 정우는 귀여움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감기로 몸이 좋지 않은 신랑은 코가 막혀 아쉽게도 향기를 맡지 못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주 예전에는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있었을 것인데 이젠 가로수 아래 심겨진 수선화만 볼 수 있어 많이 안타까웠다. 시골 구석구석으로 가게되면 만나려나. 나같은 노형커에겐 힘든 일이기에 더욱 아쉽다.

이대로 돌아가긴 아쉬워 길가에 수선화 한떨기를 집까지 모셔왔다.
-신랑은 작은 꽃 하나도 꺽기 싫어하지만 나의 욕망을 꺽을 순 없었다-

식탁위 그 향기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릇

순간 그대의 뒤로 큰 그릇이 보였다.
벌써 두잔이나 비운 와인때문이었을까.
그대의 도톰한 입술에서 내뱉는 단어들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이렇게 순간 순간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릇은 베이지색 사기그릇이었는데
입구가 상당히 넓고 큰 그릇이었다

오키나와 여행

벌써 두번째 맞는 결혼기념일 겸 스트레스 해소겸 우리 가족은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비행시간이 가장 짧기도 했고 -돌도 안된 아가와 함께하는 여행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난 여행지보다는 휴양지를 선호하는 편이고 게다가 일본은 어쩐일인지 한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 다녀온 여행지는 프랑스와 상해 정도로 여행의 폭과 깊이가 짧고 얕은 나로써는 참으로 적당한 여행지가 아닐 수 없었다. ㅋㅋ
오키나와 힐튼 차탄 리조트로 오는길은 참으로 힘들었으나 굳이 글로 담고싶지 않으니 그냥 ‘쉽지는 않았다’ 정도로 요약한다.
호텔로 가는 리무진 창밖 풍경으로 영화에서나 보던 교복입은 아이들이 나타났다. 꽤 신선했다.
힘들게 도착해 마음껏 기어다닐 수 있는 크고 하얀 침대를 보자 방방 뛰며 웃던 정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모든 일정은 정우의 컨디션에 맞춰주었고 위 사진은 실내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수영을 하고는 그대로 꿀잠을 자는 정우의 모습이다.
올해는 제주 앞바다에서 수영한번 못하고 이렇게 지나가나 했더니 오키나와에서 한을 풀고 간다.
여행내내 정우를 안아주고 신경써주며
여러모로 무리해준 여보에게 무한한 감사를…

한발짝 내디뎠다

어제였다.
7시쯤 이었다.
그간 종종 5초 10초정도 서있다 팍 쓰러지던 정우가 언젠가부터 천천히 앉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어제 한걸음 내디뎠다.
맙소사.
이럴수가.

근래들어 맘마를 끊으려고 많이 주지 않았는데 그날 오후 충분히 주어서 컨디션이 좋았던 것일까, 그냥 때가 되어서일까.
-최근 일주일간 정우가 컨디션이 내내 안좋았는데 빠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인듯 보인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걸었다.
정우가 걸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맘마는 이제 빠잉빠잉이야

정우는 이제 하루 세번 이유식을 잘 먹고 있다.
맘마를 슬며시 끊을 때가 된 듯하다.
맘마는 간식처럼 먹고 이유식으로 필요 열량을 채우는 데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한다.

크려고 하는 것인지 부쩍 많이 먹는 정우다.
세상엔 맘마보다 맛있는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아가용 과자도 먹이고 고구마 삶은것도 먹여본다.
최근엔 포도와 귤로 젤리도 만들었다. 젤라틴 대신 감자전분으로 만들어 먹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변에 아가들은 이미 시중 과자며 젤리에 많이 노출되었는데 -심지어 짜장면까지- 그에 비하면 정우는 아직 순수(?) 하다고 볼 수 있다.
이유식도 모두 만들어 먹이고 있으니.
사실 판매되고 있는 이유식은 두어번 시도해보았지만 특유의 이상한 맛 때문인지 정우도 나도
싫어해서 -내가 사실 그런것을 먹이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서 그냥 사 먹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만들어 먹인다.
첫애라 그런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그리 까다로운 입맛도 성격도 아닌데 정우에게 만큼은 좀 까다로워졌나 싶다.

아무튼 이리도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정우가 알아주길 바라며,

다시 돌아와서 정우의 맘마 끊기에 초점을 맞춰보자.
맘마가 아침마다 처음에는 빵빵하게 아플정도로 붓던것이 이제 적게 먹는 양에 맞춰진 것인지 오늘 아침엔 괜찮았다.
생각하는대로 몸이 움직여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오후에 두어번 먹으면 정우도 더이상 찾지 않는다.

신랑이 말하길,
한번 먹는것과 한번도 먹지 않는 것이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 내가 맘마를 먹일때에 쾌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말로는 그만 먹으라고 하지만 실제로 먹이는 순간 기쁨의 표정을 본 것일까. 그건 나도 잘 못 느끼던 것인데 생각해보면 맘마를 먹일때 많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건 엄마의 본능이겠지.

아무튼 쑥쑥 잘 자라고 있는 정우에게 고맙다.
그리고 이래저래 신경질적인 아내에게 바다같이 넓은 가슴으로 맞아주는 신랑에게 늘 고맙다.

어서 그림을 그려서 우리신랑 게임기 사줘야지ㅋㅋㅋ
주제와 맞지 않는 결론이 났다.

정우는 드디어 낮에도 밤에도 맘마를 하지않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신랑이 저녁에 말하길 “오늘부터 내가 정우를 데리고 잘테니 넌 따로 자라 제발! ”
-‘제발’은 몇번 그리 말했으나 내가 여보의 말을 듣지 않고 같이 자다 계속 새벽수유를 하게 된 사건에서 비롯함-
결국 나는 신랑방으로, 신랑과 정우는 안방에서 같이 잠을 청했다.

늘 맘마를 하며 잠이들던 정우에게 아빠와 함께 잠드는것은 너무 가혹했을까.
정우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어댔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어느순간 문 너머로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날 나는 오랜 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아침 7시였다.
정우의 눈엔 눈물이 아빠의 눈엔 핏대가 지난 밤 사투를 그리게 하였다.
나는 부랴부랴 정우에게 젖을 먹였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우도 좋은지 금새 베시시 웃어보였다.

이제 정우는 낮에도 안방 문을 닫고 커튼을 치면 왼쪽 품에 안겨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오늘 밤에는 울지않고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장하다 내아들!

그리고 무엇이든 못하는게 없는 우리 여보야는
육아마저 나보다 잘한다.
이러한 정우의 수면 패턴을 만들어 주고는
불금을 보내러 가셨다.
오늘은 새벽에 들어와도 용서가 되는 밤이다.
사랑해요 우리여보.

패턴은 이러하다.

8시 샤워
샤워 후 조용한 놀이
8시 50분 안방으로 들어감
9시 반짝반짝 자장가 부르기
9시 5분 불끄고 자장가 부르기
9시 10분 잠들면 20분동안 안은채로 토닥토닥
이후엔 내려놓아도 됨

모찌

살이 올라 통통한 정우의 두 볼은 찹쌀모찌 같다. 쫄깃쫄깃

감기

정확히 아홉달이 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영천집에 가는 날이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야하기에 나는 일찍 일어났다.
정우는 늘 아침 7시면 일어나는데 -그래서 늘 정우가 날 깨워준다- 어김없이 일찍 일어난 정우의 코에서 콧물이 났다.
맙소사.
정우가 감기에 걸렸다.
모유수유로 정우의 건강에 자신하던 나였다.
그간 한번도 아프지 않았는데 이번엔 진짜 감기다.
작은 코에서 맑은 콧물이 쪼르륵 흐른다.
며칠만에 금새 낫는가 싶더니 정우는 다시 아프다.
비도 오고 선풍기며 에어컨이며 밤엔 추웠고 할머니댁에 가는 바람에 환경도 바뀌었었고
이래저래 잘 못해주었나 싶다.
제주에 돌아와서도 밤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체온계는 37.3도
적정한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내 손은 안다.
정우는 지금 열이나고 있다.
약기운에 맘마하며 잘것같다.

-우리정우야 엄마가 감기 똑 떨어지게 해줄께요.
아프지 마세요.-

이상할 노릇이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언제인지 울며불며 신랑에게 일주일에 두시간만 내 시간을 달라 이야기 하던때가 있었다.
아가와 떨어져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아가에게도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신랑이 말했다.
가서 영화를 보든 그림을 그리든 미술관을 가든 아님 카페를 가던지 하라고,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다시 울음이 났다.
꺼이꺼이 울며 말했다.
“으허오어엉 가고싶은데가 없우오어엉.
혼자 하고시푼게 업스으어엉.”
나 혼자서는 가고싶은 곳도 하고싶은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여보와 정우와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었다.

점점 이뻐지고 있다.

신랑은 정우가 점점 더 이뻐진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정우는 점점 이뻐지고 있다.

정우는 이제 엄마, 맘마, 아빠를 종종 하고있다.
최근 꽤 정확한 발음으로 아빱빠빠 하면 내가 아빠? 하고 놀라 웃으며 보는데, 그럼 뭐 이런걸로 놀라냐는 식으로 정우는 시크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또 두어달 전인가 배에 부우- 하고 바람을 불어 방귀소리를 냈는데 어느새 따라 우리의 배에 다리에 팔에 똑같이 따라 부우- 한다. 꽤 오래되었는데도 이게 제일 재밌는지 심심할때면 계속한다. 장난꾸러기다.

엊저녁엔 개그맨처럼 웃겨주었더니 목을 뒤로 젖히면서 깔깔깔 숨넘어가듯 웃어보였다.
민지는 이제 웃음소리도 안정화되어간다고 했다.

이제 물건을 짚고 일어설 수도 있는데 서서 몸통을 잡아주면 한발짝 내딛는다. 불안한 발걸음이 달에 간것보다 기쁘다.

이유식도 어제 오후에 첨으로 반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단호박 옥수수 이유식이었다.
-감동-

방금은 자면서 배에 힘을 살짝 주더니 방귀를 뽀옹 뀌었다. -아 귀여워 ㅋㅋㅋ 아 지금은 내가 자다 깨버려서 새벽 한시다- 정우가 데굴데굴 굴러 내 옆까지 와서 나는 구석에 쪼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지만 행복하다.

하고싶은 이쁜 이야기가 끝없이 술술 이어진다.
다 담을수가 없어 아쉽다.

사실이다.
정우는 점점 이뻐지고 있다.

이가 쏘옥 올라왔다

우리정우 이가 쏘옥 올라왔다.
귀엽다.
어째서 매번 아빠가 출장가있을때에 크는것인가.
새벽에 종종 깨서 돌아다니더니 이가 나려고 그랬니.
고생했정우.
사랑해.

수면교육

우리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어느때인가 잘 자던 정우는 습관적으로 새벽에 맘마를 찾기 시작했고, 그 횟수가 최근 급격히 늘었다. 그것은 피곤에 이기지 못한 내가 뉘어 맘마를 먹여 재우려는 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나의 탓이다. -아마 먹이지 않고 달랠 수 있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지나갔으리라-
안되겠다 싶어 단호하게 마음먹고 수면교육에 들어갔다.
이제 새벽에 맘마는 없다! 자기전에 많이 먹고 자거라!
정우도 울고 나도 우는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다.
여보는 어젯밤에 안아 재우느라 밤을 꼴딱 새고 출근을 했다. 핫식스로 시작하는 한주라니.. 세식구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다.
맘마를 하며 자는것은 일단 둘째치고,
새벽에 맘마부터 끊어보자.
정우야 힘내자!
여보 우리도 힘내요!

배가 아프다.

주위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배가 아프다. 나는 지금 뒤쳐지고만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삶이 너무도 부럽기만 하다. 소셜엔 사람들의 힘듦은 숨긴채 부러워 할 모습들만 돌아다니니 그런가보다 해도 여전히 배는 아프다.
아가는 옆에서 이쁘게도 자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먹구름처럼 낮게 내려앉아 떠나가질 않는다.

야호

어디 산에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서 야호- 몇번이고 시원하게 소리좀 질렀으면 좋겠다.

어떻게 셋이나 낳았는지, 아가를 키울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가의 이쁨이 힘듦을 이기지 못한 걸까 나는.

앉았다 눕는 방법

정우는 이제 잠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뒤집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뒤로 떨어졌더니 지난번에 엄청 아팠어.
옆으로 떨어지는 건가
음 앞으로 내려가자
아 다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라고 생각하는것 같다.
귀엽다.

손등에 뽀뽀를 해주었다

손등에 뽀뽀를 해주었다.
정우가 맘마를 하지않고 놀고싶어하기에 안은채로 손등에 뽀뽀를 해주었다.
정우의 작은 손이 움직이면 움직이는대로 따라가 부비부비 얼굴을 부비기도 하고 앙앙 깨물기도 했다. 또 손바닥이며 손등이며 입술이 닿는 모든곳에 뽀뽀를 해 주었다.
꺄아~ 꺄륵 꺄르륵 
정우는 아기천사가 낼 것만같은 소리로 내게 웃어보인다.
너무 이뻐서 시간이 잠시 멈추었으면 했다.

전진

정우가 앞으로 간다. 긴다. 꺅- 아 근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연애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누군가의 글귀.
갑자기 모성애가 생겼다기보단 하루종일 보고 있으니 이쁜 구석이 보인다라던 그 말, 그 말을 난 좋아한다.
어느땐 좋았다 또 어느땐 섭섭했다, 작은 보챔에도 짜증이 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우는 모습마저 이쁜 날이 있듯 우린 연애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헤어짐은 없는 그런 연애.
결혼생활도 마찬가지겠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

아가를 키우는 동안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다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에는 신랑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이야기 할 정도였으니까.

정우 낮잠을 재워놓고 집안일을 끝마치니 시간이 조금 남았다.
이책 저책 살펴보다 정우가 언제 깨어나도 덮기 좋은 산문집 한 권을 집어들었다.

몇장 읽다 문득 든 생각.

나는 아가를 키우는 동안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다 생각했는데 정우가 성장통으로 새벽내 울때면 나도 같이 울며 성장통을 겪고 있었고, 정우 배냇머리가 빠질때면 나도 같이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었다.

같은 하루가 어디 있겠는가.
어제와 오늘의 햇볕이, 기분이 또 바람이 다르듯 정우도 다르고 나도 또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인데.

자장가

정우가 맘마를 하지않고 잠이들었다.
나는 정우에게 며칠전부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반짝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추네~”
낮에도 잠이 들만하면 몇번이고 불러주었는데 -정우는 맘마를 자면서 30분간 천천히 먹는 스타일이다.- 이 노래가 오늘 효과를 본 듯 하다.
잠에 거의 빠져들때쯤엔 허밍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오늘은 9시에 맘마를 끝내고 잠이 들어야 할 정우가 눈을 말똥 떠버렸다.
정우가 최근 저녁만 되면 울어버리는 까닭에 최대한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 안아서 간질간질 간지럼을 태우고 점프도 해주었다.
정우도 졸리긴 한데 잠을 못자는 듯 했다.
이럴땐 그간 경험으로 비추어 볼때 망한 케이스다. 배는 부르고 졸리긴 한데 잘 방법이 없는것이다.

그래도 재워보기위해 나는 정우를 방으로 데려가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등도 쓰담쓰담 해주었다.
처음엔 바닥에 얼굴을 부비부비 하더니 점차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정우가 잠이 들었다.
대박이다.
맘마 없이 처음으로 잠을 잔것이다.
작은별 만세!

재주도 좋아와의 첫 인연

벨롱장에 나갔다.

아가를 데리고 물건을 판매하는 일은 여간 힘든것이 아니었다. 신랑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꿈도 못꿀 일이건만 나는 자꾸 욕심을 내어본다.

할인에 소질이 없는 내가 정우 맘마를 하러간 사이 신랑은 철지난 달력이며 엽서를 팔았다. -꺅, 이런 멋쟁이-

내 오른쪽에 위치해 와글와글 반지를 판매하던 분은 알고보니 제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이었다. 장이 파할때쯤 명함을 건네며 2주 후에 금능에서도 장이 열리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 비양도를 담은 내 작품이 잘 어울릴 것이라며.

마켓에 어울릴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을 준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언제까지 마켓용을 작업할지, 전시준비는 어떻게 할지, 우리여보와 논의를 해야겠다.

응애응애

정우가 자다 뒤집기와 되집기를 반복하며 데굴데굴 구르는데 벽에 부딪혀 그만 더이상 갈 수 없게 되자 응애응애 울었다.
그런 정우가 난 너무 웃겨 안아 달래며 웃었다.
조금 미안했다. ㅋㅋㅋㅋ

되집기

그간 정우는 휙휙 뒤집기를 하며 허리근육을 키우고 있었다.

그제였나, 그간 엎드려서 잘자던 정우가 밤에도 뒤집기를 하더니 잠결에 울면서 앞으로 기기 시작했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한건 며칠 되지 않았다. 이불위에선 폭신폭신해서 저항을 받을 수 있는건지 낑낑 용을쓰며 앞으로 나아가곤 했다.
그런데 밤에도 잠결에 기더니 되집기를 하는것이 아닌가. 그렇다. 정우는 데굴 굴렀다.
데굴데굴은 아닌것이 데굴이라 표현하고 싶다. 휙 뒤집은 후 다시 낑 하고 누워버리는 것이니까. ㅋㅋ

암튼 옆으로 떨어지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일을 하게된다.
처음엔 뒤집는것을 방지. 이건 보통 실패한다. 다음은 너무 많이 위로 올라가는것 방지. 이것도 실패한다. 위로 올라간 것을 끌어내리면 엉엉 울어버리니까. 다음 단계는 그냥 안아 달래고 재우는것이 최선이다.
처음에 울면 잠결에 그냥 맘마를 물렸다. 그런데 신랑이 정우랑 한번 같이 자보더니 안아 달래는것이 괜찮다하여..
-그날은 내가 여보방에 가서 잠을 잤는데 잠깐 자고 일어나보니 아침 여섯시였다. 그런 꿀잠은 오랜만이었다. 여보 고맙소-

정우는 그렇게 폭풍성장중이다.

첫 감기

정우가 감기에 걸렸다.
생에 첫 감기라고 표현하는게 좋겠다. 애매한 것이 태어나고 2주차에 코가 막힌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코가 막혀 맘마먹는데 그 작은 아가가 힘들어하던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펑펑 울었더랬다.-
이번에도 정우는 콧물만 조금 날 뿐 큰 탈없이 감기를 해줘서(?) 다행이다.
아가는 아직 코로만 숨을 쉴 수 있다. 그래서 맘마는 먹어야겠고 숨도 쉬어야겠어서 먹다 뺏다를 종종 반복한다. 다행히 어제는 비가 많이 와서 습도가 높았다. 덕분에 코가 막히지 않았고 또 아직은 감기 초반이라 -벌써 5일짼데..- 맑은 콧물이 흐르고 있는 상태다.

오늘은 날이 맑다. 아침부터 맑은 햇살과 적당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창문을 열었다. 공기가 깨끗하다. 오랜만에 기분좋게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일찍이 유모차를 끌고 집앞 공원에 다녀왔다. 찬바람에 잠시였지만 이렇게라도 외출을 해야내가 좀 살 것 같다. 정우도 이제 집이 심심하기도 하고.

암튼 요즘따라 까르르 까르르 웃는 정우가 이쁘다.
정우가 찡찡대서 더 못쓰겠다. 여기까지.

새벽

요즘엔 새벽을 맞이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슴푸레한 빛이 창가에 들면 보통 일어나게 되는데 이도 컨디션이 좋을때 이야기다. 어젠 누워서 반쯤 깬상태로 신랑을 출근시켰으니;

다행히도 요 며칠새 새벽에 깨지않고 자는 정우덕에 밤중수유를 큰 무리없이 끊을 수 있을것 같다. 아직 완전히 끊진 못했지만.

덕분에 좋은 컨디션으로 오늘도 새벽을 맞이했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어제 오후부터 하늘이 심상찮더니 결국 내린다. 아 이불빨래 했는데.. -정우 토와 응아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비가 올것도 알고 있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져 남푠님이 사준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펜슬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안정적인 자세로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려고 폼을 잡고 있으니 오랜동안 잊고 있던, 아니다 피곤하다며 귀찮다며 미뤄왔던 나를 드디어 만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빗소리와 함께 청소차 소리가 들렸다.
5시 반쯤이었나 여섯시 쯤이었나. 시간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매일같은 아저씨들의 부지런함은 배워 마땅했다.
덕분에 더 마음을 다잡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순간 뛰쳐나가 음료라도 권해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ㅋㅋ

그림은 어서 마무리해서 곧 엽서로 만날 예정이다.

뒤집기

정우가 뒤집기를 했다.

최근 다리를 바등바등하는 녀석때문에 기저귀 갈기가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첨엔 한쪽다리를 바등바등 하더니 어느순간 허리까지 비틀었다. 불과 며칠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어제 저녁이었다.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저녁 수영을 끝내고 정우를 뉘어 닦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알몸으로 수건만 덮고 또 바등바등 ㅋㅋ 그런데 왠일인가, 베개는 이미 빠져있고 정우는 허리를 비틀더니 팔을 굽힌채로 뒤집기를 한것이다! 아직 팔힘이 부족한지 완벽한 뒤집기는 아니었지만!
가족 모두 환호를 질렀다.
-아참, 이번주 여보가 서울 출장이 3일이나 있었다. 마침 정우 100일도 됐으니 영천에 가있고 출장을 일주일로 잡기로 했다. 그래서 난 지금 제주가 아닌 영천이다.-
여보가 함께였으면 더 좋았을걸 아쉽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잠에 취한 나를 오빠야가 불렀다.
“초희야, 정우 뒤집기 했다.”
눈을 떠보니 정우가 엎드려 목을 들고 있었다.
완벽한 뒤집기였다.
출근준비를 하던 오빠야가 엎드려 얼굴이 파묻힌것을 돌려주었단다. 그리고 다시봤더니 저렇게 뒤집기를 했다고 한다.
아침 6시 쯤이었다.
엇, 그러고보니 정우가 밤새 맘마를 안먹고 잤다.
아 100일의 기적이 이런것인가!

시간이 빠른데 느리다

정우는 이제 제법 오래 웃을 수 있다.
오래도록 눈을 마주치고, 이쁘다 이쁘다하면 소리내어 웃는데 눈이 날 닮아 눈웃음도 친다.
지난 밤엔 여보가 정우 눈이 오른쪽이 더 크다고 했다. 엇 그러고 보니, 여보눈도 오른쪽이 더 큰데! 유전자란 신기하다. 눈 모양은 날 닮고 크기는 아빨 닮다니.
정우는 또 이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소리만 내어 울었다면 이젠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오늘은 낮잠을 한숨도 안자더니 오후 늦게 두시간 반을 자는 것이다. 안되겠다싶어 깨웠더니 눈물방울이 눈매 끝에 맺히며 그렇게 서럽게 울수가 없었다. -아 미안하지만 정우야 그래도 일어나야 한단다. ㅋㅋ-
암튼 이제 벌써 13주째라 좀 더 확실한 수유텀과 수면교육이 필요한 시점인 듯 하다. 늘 마음이 약해서 오래 우는걸 못보고 젖을 물려버리는지라.
암튼 벌써 3월도 다 가는데, 그 고생을 했는데 이제 정우는 3개월이냐.
시간이 빠른데 느리다.

숙면의 나비효과

봄맞이 수영을 다녀왔다.
아가는 신랑에게 잠시 맡기고.
수영을 다녀와야겠다 결심한것은, 출산 전후로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목마름과 우리정우가 어젯밤에 너무 잘자줘서 내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이다.

정우는 지금 생후 11주째다.
감사하게도 정우는 이제 밤 9~10시 사이 불을 꺼주면 잘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았고, 어제는 수면 4시간-수유 10분-수면 4시간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우리집의 두 남자 덕분에 이렇게 수영도 다녀오고 이게 웬 호사인지 모르겠다!
여보도 피곤할텐데 주말 이틀간 집에서 편안하게 쉰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난다.
너무 고맙다.

우리는 밤에 잠을 잘 때,
여보는 거실에서, 나는 정우와 안방에서 잠을 잔다. 밤중 수유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우의 수면시간이 길어지면서 밤에는 여보를 안깨우려 노력한다. 이대로만 정우가 자라준다면, 그리고 또 여보가 마음을 좀 더 편안히 가져준다면 -그보다 잠귀가 밝아서 문제지만ㅋ-
우리 세 가족 숙면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제일 이쁠 때

우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을 올려본다.
어젯밤 잠들기 전 우리는 지금 이때가 제일 이쁜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막 옹알이를 시작할 무렵, 눈이 똘망똘망 해져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싶어 하는지, 우릴 보며 살짝 웃어줄때, 그 때.
-정우가 좀 더 커서 논리적으로 얘기하면 안이쁘다며 ㅋㅋ-
이건 액자 꼭 해야지!

4년후 드는 생각, 6살에 논리적으로 얘기 하려고 노력하니 더 귀엽다.

완벽한 날

정확히 태어난지 10주째.
정우는 새벽에 여느때와 다름없이 찡찡댔다. 시계를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새벽 네시였다. – 보통은 깨면 열두시.. 아직 갈길이 멀다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정우가 무려 다섯시간 반을 쭉 잔것이다!
몸은 피곤한데 날아갈 듯 가벼운 기분이었다.
신랑의 말을 빌리자면 잠에 한맺힌 애처럼 잤다. 기적이다!
하나하나 모두 잘 맞아 떨어진듯 싶다.
전날 낮에 많이 안아준 것, 좋은 날씨에 외기욕, 자기전 충분한 수유, 소화와 쾌변, 목욕, 백색소음, 온습도, 속싸개 뭐하나 빠진것이 없었다.
정우에게 잠시 수유를 한 후, 손유축으로 좋은 가슴을 만든 후 다시 잠이 들었다. 그 후로도 정우는 조금씩 찡찡대긴 했지만 잘 잤다.
오늘 하루가 잘 풀린다.
게다가 여보 출근 시간에 맞춰 아침도 차려주고 -간소했지만- 받으려던 자동차 검사도 일찍 잘 끝이 났다고 한다.
며칠간 젖을 물며 울던 것도 잠시 사라졌다.
오늘 하루도 잘 먹어주어야 할텐데 벌써 기대된다.
이대로만 자라다오 정우야!

정우의 성장

정우는 이제 밤낮을 알게 된 것 같다.
생후 두달만이다.
낮엔 맘마를 먹고도 눈을 뜨고 놀 수 있게 되었고, 밤엔 맘마를 먹으면서도 잘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수유텀이 짧다는 것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이제 세시간정도는 안먹고 놀고 잘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직 두시간도 버겁다.
아기띠를 최대한 활용해야겠다.
또한 정우는 갈수록 울음소리가 다양해지고 있다. 언제쯤 아빠 엄마라고 옹알이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눈이나 마주치고 많이 웃어줬으면 좋겠다.
이 시크한 녀석..

8주차

벌써 8주차.
키57cm 몸무게 5.7kg 머리둘레 37cm
정우는 배넷머리가 점차 빠져 뒤통수쪽에 꼬불꼬불한 -아빠를 닮은-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있다.
며칠전 정우는 본인 손톱으로 눈두덩이를 긁었다. 손톱이 자라 깨진 부분에 긁힌건지 피가 났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피부 재생력을 가진 정우는 일주일만에 딱지가 떨어졌다. 펑펑 눈물이 나던 그때를 미안해하며 -왜 좀 더 일찍 손톱을 신경써주지 못했을까- 나는 이후에 손톱을 자르는 꿈까지 꾸었다.ㅋㅋ 불빛에 비쳐보면 아주 살짝 흉터가 보일락 말락 하지만 자라나면서 언제 있었냐는듯 없어질꺼라 믿는다.
수면교육과 생활리듬의 체크는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우리 정우는 아직까지 밤에 잘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젠 샤워를 시키고 이불속에서 노곤히 잠들었기에 기대를 했건만..
오늘은 볕이 좋아 많이 쐬어주었다. 응아도 시원하게 하고 ㅋㅋ 이 컨디션 그대로 저녁까지 가기를 바래본다.
맘마도 일주일즈음 전부터 모유만 먹이고 있다.
배앓이가 있었는데 -방귀를 끼거나 응아를 할때 얼굴이 다 새빨개지며 울며 용썼다- 분유때문인지 밀가루 음식탓인지 모르겠지만 모유수유 이후부터 사라졌다. 50일 되면 완모한다던 마사지 쌤의 말이 맞았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았던 초반, 가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그때, 유축기를 끊고 손유축을 해가며 가슴을 만들던 그때가 이제 어렴풋하다.
지금 이순간도 맘마 잘 먹고 내 품에 잠들어 만족한 웃음을 짓는 정우가 고맙다.
그리고 이쁜 우리신랑도 어여 보고싶구만.

신랑의 반찬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신랑은 출장이 잡혔다. 피할수는 없었다.
신랑은 할 수 있는 모든것을 하고 다녀오겠다 다짐한듯 보였다.
혼자 있을때 가장 큰 난관은 밥을 먹는 일이었는데, 밑반찬을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도록 그릇에 담아두었다. 한겹 한겹 쌓인 치즈와 김이 들어간 달걀말이도 준비해 주었다. -정말정말 맛있었다-
그 어떤 허세 가득한 음식 사진보다 나는 이 사진 한 장이 그리 아름답다.

흰 머리가 늘어난 여보에게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정우는 벌써 태어난지 5주가 되었고, 그새 키도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
최근엔 밤새 눈이 말똥말똥한 녀석 덕분에 새벽내 라디오와 함께하고있다.
내 온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고 몸은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사진처럼 저렇게 젖을 먹고 품안에서 잠든 얼굴을 보면 정말 천사가 내려온 것이 아닐까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몸은 여전히 힘들지만-
오늘은 날 보며 따라 웃기까지 했다.
여보가 그걸 봤어야했는데
일하랴, 집안일하랴, 아가보랴, 내 짜증 받아주랴, 이 모든것을 버텨내고 있는 여보에게 말할 수 없이 고맙다.
흰머리가 너무 많이 늘어버려 마음이 아프다. 어서 염색해줘야하는데..

12월 24일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엄마가 되었고, 여보는 아빠가 되었다. 경이로운 일이었다.
죽을것 같던 10시간이 지났다.
결국 나는 수술을 택했고, 10시간이 허망하게도 10분만에 아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저 작은것과 마취에 취해 있던 나를 보며 신랑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미약한 정신을 붙들고있은 내게 아가를 보여주던 것이 생각이 난다.
장시간의 수면부족과 산통후로 온몸의 기력과 수분이 빠진 나는 억억 소리만 낼 뿐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 상태로 아가에게 젖은 물려야한다며 아픈 몸을 겨우 옆으로 뉘었다.
아가가 품에 왔다.
다음날부터는 걸어다녔다. 다행히 회복이 빨랐다.
신랑을 안으니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보니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
우리에게 다시 없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첫 개인전 후기

전시는,
자기만족 측면에서 상당히 성공적이라 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려서 익히 배워온 줄 알겠지만, 수채화는 독학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와 -좋은 액자집을 제주에서 찾은 것이 일단 크게 작용ㅋㅋ- 태교의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만족스럽다.
작품의 대외 홍보면에서는 아쉬운 면이 많았는데,
우선 텀블벅이라는 싸이트 자체가 유명하지 않다는 점과 완전한 컨셉의 완성도 높은 작품에 누구나 공감하거나 좋아할 수 있는, 혹은 특이하거나 덕의 성향이 강한 작품이 펀딩에 성공하는 구조였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로 끝나는 경우 또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내 작업은 실패했다.
전시는 이번 토요일까지 이틀이 남았다.
그간 전시 자체에 대한 의문과, 작품이 잘 나오지 않아 받던 스트레스, 행여나 하는 조바심, 장소에 대한 고민과, 액자며 판넬이며 몰딩, 재봉, 포장, 홍보 등 하나 하나 손수 알아본 결과가 응축되어 있는 듯 하여 기분을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이상하게도,
오픈할때는 별 생각없이 마냥 좋았는데 -아마 고생해서 준비하던것이 드디어 끝이 나 쉴 수 있겠다하는 느낌이 더 강했으리라- 전시를 마감하려하니 그대가 없었으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옆에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보며 의지하던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 점점 커진다.
이제,
2015년의 남은 한 달은 20대의 마지막을 열렬히 보내는 것과 출산준비에 집중하는 것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계절이 바뀌어 억새풀이 자라나듯

막연했던, 계획만 무성했던 일들이 하나 하나 완성되어감을 느낀다.
몇달새 계획했던 일들이 차근차근 완료가 되고 잡히지는 않아도 눈에 보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계절이 바뀌어 억새풀이 자라나듯 그렇게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드라마 ‘연애시대’

문득 문득 생각나는 드라마 ‘연애시대’를 본다.
신랑은 출장간 사이 날 보라며 티비로 손쉽게 볼 수 있도록 -원래는 방에서 빔으로 본다- 해두었으나 이것도 잘 못해서 물어본다 ㅋㅋ 덕분에 페이스 타임으로 얼굴한번 더 봤다.
주말엔 장조림이며 김치찌개며 덕분에 매번 잘먹는다. 물론 혼자라 별로지만,
연애시대,
드라마를 처음 볼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은채 넘어갔던 것들이 나이를 먹고 보면 볼수록 점점 이해가 되고 있다. 종종 신랑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를 외우곤 하는데 그 모습이 멋지다. 음악 감독은 노영심이 봤는데 난 스물 즈음인가 이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피아노곡이 좋다.
아 그나저나 당 조절 해야하는데 던킨이 먹고싶다. 손예진은 아침마다 그렇게 먹는데 살도 안쪄. 역시 수영인가.

목소리만 귓가에 남았다.

며칠 전부터 태교삼아 아영이 알려준 ebs 낭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듣고있다. 상당히 좋으니 추천한다. http://goo.gl/YNcskn 아침마다 눈뜨기 힘들때 반수면 상태로 듣고 있으니
오늘 아침엔 신랑이 책을 한 권 가져오더니 자기가 읽어주겠단다.
출장땜에 잠잘 시간도 부족할텐데 그 새벽에 짬을내어 읽어주었다.
신랑은 목소리가 좋았다.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품에 쏘옥 안겨 눈을 감고 들었더니 책 내용은 점점 희미해지고 목소리만 귓가에 남았다.
훈육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음;;
신랑은 다음에 읽을 책을 소파위에 꺼내두곤 서둘러 샤워하러 갔다. 밤이 길다..

임신 20주차에 드는 생각들

20주차. 배가 제법 나오면서 몸이 무거워졌다.
운동이라고는 십분 요가밖에 안하는탓에 허리근육에 무리가 가는지 왼쪽이 종종 삐끗한다.
아침 수영을 좀 열심히 해보자했는데 단 한번 간 이후로 감기가 걸려 또 못갔다.
신랑은 최근 분사와 이러저러한 이유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듯 하다.
무언가 우리 부부에게 -일과 현실에서 분리될 수 있는, 신혼여행과 같은-
휴양이 필요한듯 싶지만… 현실에서 찾아보자.
임신 내내 이렇다할 태교도 하지 않고 있는데 뭔가 해야하나 고민이다.
주말마다 그림을 그리자 한것도 각종 핑계를 대며 꽤 많이 쉬었더라.
출산전에 전시를 정말 할 수 있을지, 혹은 전시를 지금 하는것이 맞는 것인지, 나의 욕심은 아닌지,
단 한점 팔리지 않더라도 후회없는 전시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구체적으로 목표를 설정해두고 나면 그림을 좀 더 열심히 그리게 될 줄 알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전시가 목표가 된 느낌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자. 아이를 보며 그림을 그리는것은 무리다.
더하여
복지면에서는 꽤나 좋은 이놈의 회사를 2년이나 다닌탓에
최근 오후시간에 종종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잠이 오지 않을때는 ‘식객’을 읽고 있다. -만화책이 이렇게 유익한지 몰랐다-
하지만 하루 두시간은 넘기지 말자 다짐했다.
‘원래 회사라는게 자리를 지키는 것도 업무다’라고 신랑이 경고했기에 ㅋㅋ

출장

남편이 출장을 갔다.
오늘 아침 여덟시 반 비행기였다.
마침 장마라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어제 피곤한데 늦게 잔 탓인지 일찍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데,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 요리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남편도 피곤할텐데 일찍 깨서 내 아침을 준비해주고 있었다. 씻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오늘따라 보송보송하니 이뻤다. 잠에서 덜깬 탓일까?
오늘 아침은 칼칼한 콩나물 국이다. -먹는입덧 탓인지 아침에 국을 먹어야 속이 쓰리지 않아서- 별거 안넣은것 같은데 남편이 하는 요리는 다 맛있다. 엄청 맛있다.
일곱시가 넘어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어머님께 드릴 엽서와 브로치 -지난 벨롱장, 윤영님한테서 샀다- 그리고 노트북을 챙겨
남편과 함께 문을 나섰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기분으로 택시를 태워 보냈는데, 돌아와 집에 혼자 앉아 아침을 먹으며 jtbc 뉴스를 보고 있자니 쓸쓸함이 밀려왔다.
-메르스가 잠잠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서울은 여전히 불안하다-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테이블에서 화장을 하고 잠깐 사이에 동선이 모두 뒤틀렸다.
아 뽀뽀나 한번 더 하고 보낼껄..

141008

그는 입술이 예뻤다.
조금은 매서운 눈매와 안경이 그리고 살이 붙어 동글한 얼굴에 도톰한 입술이 예뻤다. 그는 왼손으로 폰을 자주 본다.
그래서 왼편으로 기운 몸 때문에 오른쪽 얼굴을 많이 보게 되는데 머리카락부터 귓볼 턱 입술 코 눈까지 찬찬히 한참을 바라 보았다. 그의 섹시함과 귀여움은 입술에서 나오는가 싶다.
어제밤엔 일때문에 새벽 네시가 다되어 잠을 잔듯하다. 일찍자는 나를 재워주려 그가 옆에 누웠다. 심장이 뛰었다.

입덧

입덧을 전혀 안한다. 임신 8주차인데.
유전이라길래 엄마한테 물어보니 본인도 잘 안하셨다고 한다.
3개월 부터 한다나 3개월까지 한다나 잘 모르겠다며 이젠 기억이 잘 안나신다고.
하지만 나도 두어번 정도 입덧을 한것도 같다.
어느 날 아침 공복에 한 번, 언제인지 집에서 짜파게티를 먹으려고 하는데 한젓가락을 먹고는 그냥 헛구역질을 해버린 그때 또 한 번.
다행인듯 특별히 먹고싶은것도 없어서 신랑과 나는 굉장히 무난한 임신 초기를 보내고 있다.
아마 삼시세끼 잘 챙겨 먹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찌개를 끓이면 꽤 맛이 있어서 자신감 상승중이라 훗훗,
며칠전에는 갑자기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잎 부분엔 빛을 못 받아서 노란 얼룩이 있는-
한손에 들고 크~게 한입 베어먹고 싶었는데 요샌 사과철이 아니라고 맛이 없단다.
아마도 어릴때 부터 사과는 일년내내 먹고 자란 탓이리라.
아, 우리 아빠는 영천에서 크게 사과농사를 지으셨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작아져서 남의 밭도 일구시지만.
아무튼 사과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은데 저 그림속의 사과은 아닐테고 -저건 프랑스 사과일테니-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그 사과, 청송사과같은, 청송은 영천 근처니까, 예전엔 영천 포도였는데, 아무튼
지금 못 먹는다니 괜히 먹고싶어졌다.
여보가 이 글을 겨울에 봐야할텐데 ㅋㅋㅋ

오렌지쥬스

현석님이 보내주신 ‘퍼펙트 베이비’ 책을 보고있는데 오렌지 주스에 엽산이 많다고 한다.
똘똘이-이른바 우리 아이의 태명이자, 음 그러니까 대충 지은것은 아니지만 크게 신경썼다고도 할 수 없다- 이녀석 똘똘한가보다.

임신이 확인되기 며칠전부터 오렌지주스가 그렇게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평소 오렌지주스는 입에도 안대던 나로써는 신기한 일이었다. 그저 설탕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 생과일쥬스는 제외다.

거슬러 올라가보면,대부분이 설마 또는 확신하는 그러한 이유로 우리 또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때가 그러니까 4월 30일쯤이었다.
검색과 지인의 추천하에 괜찮다는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심장 소리가 들렸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엄청나게 기쁘다기 보다는 신기함과 두려움이 함께 오는, 지금까지 느껴본적 없던 이상한 감정이었다.
이건 아빠도 비슷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때 그 표정을 생각해 보면,

간혹 라면 등이 땡기는데 입맛은 아빠를 닮은 듯 하다.

벚꽃 스케치

봄바람 휘날리던 날.
그대가 꽃을 주었다.
책상위에 시크하게 두고는
해마다 주겠다고 선언했다.
꽃 좋아하는 아내를 만나
낭만적인 그대가 되었구려.

study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
랭부르(Limbourg) 형제

sketch

101014

해변 앞에서 책을 읽던 중년의 부부

france, nice, Promenade des Anglais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