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며칠간 내린 폭설에 신게된 무거운 등산화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계단을 내려가는 길이 힘이 들었다. 영정 사진을 보고 난 후에도 나는 슬픈 감정이 들거나 눈물이 나지 않아 이상할 따름이었다. 사진 속 언니는 너무 밝기만 했다. 어찌할 줄 모르는 내게 꽃을 얹고 인사하는 법을 혜광님이 도와주셨다. 옆에 앉은 유림 언니에게 고심고심하여 내뱉은 말은 “언니 이게 진짜인지 잘 모르겠어요~”였다. 언니는 원래 그래~ 나도 그래~ 비슷한 말을 내뱉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에는 순간순간 어지럽고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언니의 하얗고 말랑말랑한 손은 난로만큼이나 따듯했다. 입구에는 소리없이 나오는 눈물을 고운 손수건으로 연신 닦고있는 현정언니가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괜찮다는듯 마른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또 손을 맞잡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뿐이었다. 앙상히 마른 어깨와 맞잡은 손에는 힘이 없어 핏줄이 다 튀어나와있었다. 주변에는 제주의 몇몇 동료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고 폭설에도 단숨에 내려와준 원주님과 서울분들이 신랑과 함께 일해주고 있었다 .

12월 30일 폭설이 내렸다. 8시 즈음 정우와 잘 준비를 하려는데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듣기에도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신랑은 술을 마신터라 내가 운전대를 잡고 정우와 함께 제주대학교 응급실로 향했다. 지난 차사고때처럼 언니들이 응급실에서 곧 나올 줄 알았다. 그때부터 이틀이 지나도록 나는 실감을 못했던 것이다. 신랑은 다음날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는 순간 눈물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화를 할 때 간간이 목소리가 떨렸고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 듯 했다.

오늘 1월 1일, 신랑에게 민지언니 잘 보내주고 오라고 한 말은 나에게도 작별인사와 같았다. 준비없이 맞이한 이별에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뇌이고 글을 써봐도 나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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