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전화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술 한잔 하셨는데 우리 며느님 생각이 난다며 전화를 하셨단다. 나의 시어머님은 문득문득 또 자주 내게 존댓말을 쓰시는데 그것이 7년 내내 어색하기도 또 감사하기도 하다. 늘상 고맙다 고맙다 하시는데 그 마음 짐작만 할 뿐 다 헤아릴 길이 없다.

오늘 저녁은 우리가족이 좋아하는 ‘장전반점’-정우의 유치원 같은 반이었던 승우네가 운영한다- 에서 짜장면 한 그릇 하며 맥주를 한캔 마셨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어머님과 통화를 하는데 함께 맥주한잔 한 듯 취기가 올라왔다.

감사한 여름의 노을을 여보와 정우와 다 함께 하니 이렇게 행복할수가.

스승

이틀정도 쉬게 되면서 드라마 ‘로스쿨’을 봤다.

극중 양크라테스(김명민)을 보니 임쌤 생각이 많이 나면서, 내 인생에 이런 교수님이 계셨던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욕심을 내자면 오랜만에 명강의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연말에는 좋은 소식으로 교수님 한번 찾아뵈면 여한이 없겠네.

천연염색화

작가라는 호칭을 일부러라도 부여해서, 엄마 김초희와 작가 김초희를 살아보던 날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로서의 삶의 흐름이 강해 작업의식이 흐려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나는 SNS에 올리던 나의 작업물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수업 또는 일상과 분리해보았다.

비로소 나는 작가의 호칭을 떼어내고 온전히 나의 이름 김 초자 희자 석자로 작업물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5월 26일

나의 작업물들을 ‘천연염색화’라 이름붙인다.

보슬보슬 잡초의 쓰임

마당에 보슬보슬 안개처럼 피어나는 잡초가 있어, 뽑지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잎이 예쁘거나 꽃이 필 것 같이 생긴 것들은 뽑지 않았더니, 7살 된 아들도 똑-같이 따라한다.

5월이 지나기 전에 나는 선생님께 무어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 정우와 함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서툰 글씨로 이름 석 자와 선생님 이라는 글씨, 두 분이니 딱 12자를 또박또박 쓰는데 한참이 걸렸지만, 매우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아끼는 번쩍번쩍 색종이에 쓰다니!

나는 좋은 기회로 받게된 예쁜 두어송이 꽃에 마당에 피어난 보슬보슬한 풀을 꺽어다 서툰 솜씨로 둘둘 포장했다.

감사한 마음 에이포 용지에 가득 써 내려 가니 이제사 마음 한켠이 뿌듯해진다.

마지막 글귀는 이러하다.

-언제나 선생님들을 믿고 의지하는 정우엄마가-

줍줍

언니 나는 집근처 골목길에서 혼자 줍줍활동을 했어요. 늦봄이 되면 그 골목길에 산딸기가 열리거든요. 깨끗한 산딸기를 정우에게 주고 싶었어요. 또 제가 종종 운동하는 길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많이 나와서 이틀동안 50리터 종량제봉투를 세개나 쓰게 되었어요. 너무 무거웠어요. 그런데 줍다보니 언니 생각이 많이 났지뭐예요. 언니 참 그리고 방에 있던 물건들을 몇개 정리해서 가져왔는데 신랑은 늙어도 제가 자수는 안할 것 같대요. 저도 그래요 ㅋㅋ 그래도 잘 갖고 있을께요. 아 그리고 최근에 현정언니랑 성원님이랑 같이 밥 먹었는데 다들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어요. 걱정말아요.

길가의 쓰레기가 쓰레기 봉투에 담겨져있음

엉뚱한 곳에서의 해답.

숲을 그리는데에 어려움을 겪은 후로 붓을 들기가 싫은 며칠이 자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방향에서 해답을 찾았으니, 그것은 바로 윈드스톤에서의 일이었다.

평소 보리차처럼 커피를 연하게 즐기는 나는 며칠 전 원샷을 부탁드렸고, 새벽에 잠이 들었던 것.

그럼 그림을 그리면 되겠다며 흘려 말한 사장님의 말이 마음에 닿았나보다.

그리고 정우가 잠든 이시각,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때마침 최근 작품이 좋다며 연락이 온 지난 작품의 구매자분과 그 지인분까지.

작품을 깨부술 용기가 안난다.

천연염색과 아크릴 물감의 조화가 어느정도 감이 잡히는 듯 하여, 작은 사이즈의 작업을 마치고 곱게 염색해둔 커다란 천을 조심조심 꺼냈다.

천천히 작업을 해나가는데, 배경에서 원하는 만큼의 톤이 나오지 않았다.

근데 나는 도자기처럼 깨부술 용기가 안난다.

아쉬움만 남은 시간들

사흘이 지나 언니의 사진을 정리하고 나서야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그리 만났는데, 어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했을까 우리는.

2020.12.30

며칠간 내린 폭설에 신게된 무거운 등산화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계단을 내려가는 길이 힘이 들었다. 영정 사진을 보고 난 후에도 나는 슬픈 감정이 들거나 눈물이 나지 않아 이상할 따름이었다. 사진 속 언니는 너무 밝기만 했다. 어찌할 줄 모르는 내게 꽃을 얹고 인사하는 법을 혜광님이 도와주셨다. 옆에 앉은 유림 언니에게 고심고심하여 내뱉은 말은 “언니 이게 진짜인지 잘 모르겠어요~”였다. 언니는 원래 그래~ 나도 그래~ 비슷한 말을 내뱉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에는 순간순간 어지럽고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언니의 하얗고 말랑말랑한 손은 난로만큼이나 따듯했다. 입구에는 소리없이 나오는 눈물을 고운 손수건으로 연신 닦고있는 현정언니가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괜찮다는듯 마른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또 손을 맞잡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뿐이었다. 앙상히 마른 어깨와 맞잡은 손에는 힘이 없어 핏줄이 다 튀어나와있었다. 주변에는 제주의 몇몇 동료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고 폭설에도 단숨에 내려와준 원주님과 서울분들이 신랑과 함께 일해주고 있었다 .

12월 30일 폭설이 내렸다. 8시 즈음 정우와 잘 준비를 하려는데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듣기에도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신랑은 술을 마신터라 내가 운전대를 잡고 정우와 함께 제주대학교 응급실로 향했다. 지난 차사고때처럼 언니들이 응급실에서 곧 나올 줄 알았다. 그때부터 이틀이 지나도록 나는 실감을 못했던 것이다. 신랑은 다음날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는 순간 눈물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화를 할 때 간간이 목소리가 떨렸고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 듯 했다.

오늘 1월 1일, 신랑에게 민지언니 잘 보내주고 오라고 한 말은 나에게도 작별인사와 같았다. 준비없이 맞이한 이별에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뇌이고 글을 써봐도 나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이다.

주식

2020 수능일을 기준으로 주식을 샀다.

앱을 깔고 주식을 샀다.

주식이나 펀드는 잘 모르고 공부할 생각도 없어, 무엇이든 잘 하는 여보의 도움을 받아 튼튼한 통에 작은 계란을 두개 넣어두었다.

그리고 앱을 삭제했다.

이것은 정우가 수능을 칠 때 꺼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