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곰팡이

작업실에 두던 작품들 뒷면에 곰팡이가 피었다.

이고지다 결국 이렇게 될 줄도 알았고.

아직은 괜찮은 작품들이라도 살리려 액자에서 작품을 분리했다. 지익-하고 작품을 떼어낼 때마다 내 마음도 하나 둘 도려내어졌는데 생각보다 소리가 경쾌했다.

진희언니에게 어울릴 초록의 작품 하나는 맡기고, 끝내 떼어내지 못한 작품 몇개가 내게 남았다.

버릴것이 쓸데없이 아름다웠다.

도원

과일 작업의 타이틀이 나왔다.

도원(桃源)

2024. 10. 12 이중섭 미술관 가는 길에

하얀 나비

선선한 날 문을 열어두고 작업을 하다가 보면 종종 하얀 나비가 날아든다. 늘 하얀 나비다.

과학의 발전과 예술

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나 며칠을 보내고서 나는 겨우 연필 한 자루 들고는 꽃그림을 그렸다. 한심하다.

인류에 위협이 될 정도로 급성장한 AI의 발전을 혹자는 사진기의 발명에 빗대기도, 혹자는 뒤샹의 ‘샘’과 같은 작품이 주었던 충격에서 해답을 얻기도 하였다.

과학자들과는 다르게 예술가는 대게 비관적이더라는 데에서 잠시 위안을 얻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과는 별개로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갈피

작업이 한 데로 모이는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이다.

푸른 누드와 쪽 작업 / 풍경과 패턴 / 과일 작업과 스케치

모두 좋아하는 작업인데

문제는 캔버스나 광목에 아크릴로의 작업과

옥사에 봉채로의 작업 등

각기 모양새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모든 형태를 한 데로 모을 수는 없을까,

아니면 모두 나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가.

그해 겨울

입맛이 없은지 서너 달 되었을까.

애써 비빈 밥을 욱여넣다 결국 체했다.

견딜만한 편두통과 미열을 앓다가

더러 울음이 왈칵 쏟아지던 날도 있었다.

갈피를 못 잡던 그림 때문이었는지

그림 같던 내 인생 때문이었는지

내내 듣던 쓸쓸한 음악 때문이라며

나는 고작 하는 일이

조금 덜 쓸쓸한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부족함만 조용히 채워지는 하루가 간다.

아영이가 걸어온다.

아영이네 가족이 멀리서 걸어온다.

두 팔을 벌리자 작고 밝은 아이가 스스럼없이 내게 뛰어왔다. 나는 번쩍 들어올려 빙그르르 날아주었다.

아이와는 반대로 내 마음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영이의 신랑이 내게 물었다.

“이렇게 전시하면 많이 뿌듯하시겠어요~”

걱정 가득한 마음에 가려 뿌듯함은 전혀 느끼지 못한터라 순간 스스로도 많이 놀랐다.

이튿날 부족함만 조용히 채워지는 하루가 간다.

어쩜 이리도 아직 나는.

먼길 와준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이어가야겠다.

전시기간 동안의 가족이야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시장을 지키는 동안, 신랑이 재택근무를 하며 정우를 돌봐주기로 했다. 일을 하다가도 정우의 학교 학원 픽업이 쉽지 않을텐데(가능한건가)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글로는 부족한 마음.

신랑이 수,목 출장을 가는 동안 정우가 하교후 두시간 정도 혼자 있기로 했는데, 이틀차가 되니 제법 씩씩하게 있는 것 같다. 혼자는 처음이라 엄마아빠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저녁에 오리새끼마냥 나를 졸졸 쫓아다니긴 하지만ㅋㅋ

(다 큰줄 알았는데 아직 애기다.)

그보다 정우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퇴근길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온전히 1시간동안 듣게 되어서 많이 행복하다.

네 번째 개인전 <알롱 달롱 탐라 산수>

전시 소식 알립니다.

오랜 기간 제주의 풍광에 홀린 듯 작업해 오던 저의 눈에
제주는 이제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네 번째로 진행하는 개인전 “알롱 달롱 탐라 산수”에서는
제주의 기원인 화산활동, 이로 인한 물의 흐름과 동식물을 관찰하여 디자인적 조형요소로 표현하고,
이상화된 자연을 산수<산/물/바위/나무>로 표현하였습니다.

알롱 달롱 탐라 산수 (김초희 천연색화 展)

국립제주박물관 고으니모르홀

2023. 9. 5 (화)~ 9. 24 (일) / 매주 월 휴관

오! 사과.

주제별로 하고 싶은 전시가 아직 많다.

푸른것들과

아버지의 사과 등이 그것이다.

전시명은 오! 사과.

2022.12.6

엄마의 오래된 나무 화구통

어릴 적 엄마는 종종 거실에서 이젤을 펴 들고 그림을 그렸다. 몇 없는 기억 중 하나 남은 것은 유화 특유의 냄새와 이젤 너머로 보였던 엄마의 발치다. 최근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닐 무렵 잠시 쓰기도 했던 엄마의 오래된 나무 화구통을 물려받았다.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달라고 조른 것이 맞겠다. 엄마는 큰 미련 없이 주셨으나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엄마가 다시 붓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훨씬 크다.

2021.11

붓꽃

두어달 전 앞마당에 붓꽃을 심었다.

작업을 위해 쪽을 심을 요량으로 현관문 앞의 잡초가 무성한 작은 땅을 밭갈듯 갈았는데 -제주의 땅은 정말이지 돌 반 흙 반이라 일주일 내내 너무 힘들었다. 간혹 바위도 나온다.- 쪽만 심기 아쉬워 꽃 구근을 심었더랬다.

그러나 올 봄은 이상하게도 세찬 비바람이 강했다. 약한 잎들은 결국 꺽이고 말았고, 벼를 세우듯 나는 잎들을 모아 한데 묶어 주었는데 한번 꺽인 잎이 다시 세워질 리 만무했다. 때마침 꽃봉오리를 올린 세 꽃이 다시금 비바람에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나는 조심히 꺽어와 화병에 꽂아 주었다.

애초에 붓꽃은 호주 여행 당시 추억의 꽃이었다. -시드니 플라워마켓에서 정우가 까아만 캉골 지갑을 꺼내들고 “어서 골라봐!” 하던 나의 생일 선물 꽃이다.-

화병에 툭 꽂아 식탁에 두었을 뿐인데 나는 다시 호주로 돌아간 듯 하다.

올 3월부터 받아보기 시작한 제민일보에 숨은그림찾기도 스도쿠도 있을 것만 같던 오늘 아침.

다음 여행지에서도 추억이 될 만한 꽃을 사봐야겠다.

디스커버리 퍼플과 실버리 뷰티(들여다보면 실버리 뷰티는 흰 부분이 반짝인다.)
호주 여행 당시 페트병 화병을 신랑이 만들어주었다.

미대군대

정우에게 물었다.

“정우야 미대 갈 생각 없니?”

정우가 대답했다.

“싫은데~ 군대할껀데”

굿바이 다음

서양학과를 반대하던,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인 어른들의 조언으로 가게 된 시각디자인과에서 나는 3학년을 끝마칠 무렵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 디자인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

하지만 디자인을 배움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큰 얻음이 있었으니, 바로 아름다운 사물을 분별하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다양한 서체의 아름다움부터, 그리드에 의한 정렬과 색채, 클래식의 미, 미보다 앞선 실용성, 청바지에 검은 목폴라의 잡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외에도 실로 방대한 것들이 삶의 습관을 바꿀 정도로 내안에 깊숙이 자리해 있다.

여직 존경하는 교수님께 얻은 이러한 가르침을 이대로 놓는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용기낸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사가 바로 ‘다음’이었다.

다음은 10년 전 홀로 제주에 내려온 까닭이었고,

많이 힘들었고,

그 안에서 신랑을 만나 참 많이도 행복했던 회사다.

그런 애증의 GMC가 이제 매각이 되어 추억이 사라진다니 꽤나 아쉽다.

천연색화

천연의 재료로 염색을 하는 대신

천연색의 우리 물감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천연염색화’라는 이름 대신, ‘천연색화’라 불러 보기로 했다.

붉은 봉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 쓰고 나면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장인을 찾아가 우리의 물감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하나 고민이다.

2023.1.9

삼성 홈페이지를 만들던 스무살 남짓하던 젊은 청년은 이제 제법 번듯한 자신의 방이 생겼다.

업계일을 한지 21년째 되던 해다.

생각해보면 그는 편의점 알바를 하나 하더라도 허투루 하지 않던 청년이었다.

전에는 신랑이 ‘운이 좋게도’ 처음 시작한 일이 본인과 잘 맞아서 무척이나 잘 해내었다고, 때마침 시대의 흐름도 신랑의 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을 하면 끝까지 해내야 하는 성격탓에 여기까지 온 것일테지.

카트라이더 하나를 하더라도 사내에서 1등을 해야하는 사람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게임에 문외한이라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른다.

기껏 설명을 해봐야 오구오구 정도의 반응밖에 돌아오지 않는, 칭찬을 받을줄도 할줄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조금 미안하다.

나의 일은 언제 내 편이 될지 알 수 없는데, 상한 몸을 채 돌볼 시간도 없이 출장을 떠나는 남편을 보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것, 신랑이 돌아왔을때 아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집을 잘 돌보는 것, 정우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 짜쯩내지 않는 것 정도. 쓰다보니 생각보다 많은걸? ㅋㅋ

무엇보다 여보! 방이 생긴것을 매우 축하해요!

엳듯던

1학년 2학기가 되면서 정우는 받아쓰기를 하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에 시험을 치르는데, 문제는 반듯하게 코팅이 된 A4지에 10개의 문장이 1급부터 16급까지 (그러니까 총 160문장) 앞뒤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책의 내용에서 뽑아낸 문장 같아 보였고, 정우는 그 책을 학교에서 읽은 듯 보였다.

나는 그간 태도가 중요하다며, 올바르게 공부한다면 빵점을 맞아도 괜찮다고 몇번이나 말했다. 반대로 어중간한 태도로 백점을 맞는 것 또한 필요없는 일이라고 했다.

백점을 맞혀온 적도 있지만, 쉬운 부분에서 늘 두어개를 틀려오던 정우가 오늘은 어쩐일인지 모두 맞았다!

오늘 이 점수가 너무나 기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제 저녁 받아쓰기 연습을 할 때, 아래 두 부분을 틀렸는데 , 너무나 귀엽게 틀리는 것이 아닌가ㅠㅠ

오늘 시험에서 너무나 기쁘게도 모두 잘 써주었던 것이다!

나는 정우를 번쩍 안아 엉덩이를 팡팡 쳐주었다!

우리아들 너무 대견하네!

우주론

경북 영천에서 자란 나는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잘 알지 못한다. 게다가 당시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으니 뉴스를 보았어도 기억이 날리 없고, 나의 부모님도 작은 눈물과 짧은 탄식만이 존재했으리라,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어떤 거대한 우주론을 믿고 있다. 세월호에 이어 이번 이태원까지 참사까지 이 모든 일은 신이나 부처의 뜻도 아니요, 이 거대한 우주 안에 작은 행성의 자정작용이라 생각된다. 다양한 인간의 욕망과 이기, 또 무질서가 어우러져 일어난 결과라고.

엊저녁 정우가 내민 그림 한 장이 마음을 쿡 쑤신다.

차례차례 줄을 서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할아버지가 되면 이야기해주려나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보면 신랑은 가끔 예전 실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마치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해주시듯, 신랑은 그런 일들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 해준다. 나는 그럴때면 가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시공간을 이동해서 젊은 신랑의 모습을 한참이고 보고싶다.

인터스텔라나 다시 보자..

작업의 방향성

작업실 한쪽 벽에 빼곡히 붙인 작품들을 정리하고 나니 무엇이 작품이고 아닌지 알게 되었다.

근래에 작업의 방향성이 크게 바뀌면서 다행인 것은 결국 이것이 내가 하고 싶던 작업이라는 것이다.

내 뿌리와도 같은 스케치와

20대 초반 배워왔던 빼기의 디자인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 그리고 내재된 본능

이 모든것이 현재 내 작업물의 결과이다.

어젯밤

어두운 밤 아파서 낑낑대는 내게 정우가 조심스레 와서는 보드라운 두 볼을 요리조리 부비고 뽀뽀를 하고 간다.

나는 행여나 바이러스가 옮을새라 아이의 입술이 나의 입에 닿지 않도록 볼을 옮겨준다.

서로의 속눈썹이, 볼이, 보드라운 솜털이 서로 닿을때 행복하다.

장난감을 정리해야 하니 조금 소리가 나도 이해해달라며 속삭이듯 말하고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정리할때도 많이 행복했다.

책상과 화장대

나의 첫 화장대는 신랑이 원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며칠 전 초등학생 1학년의 반을 보내고 있는 정우에게 책상을 마련해주기위해 서귀포에 위치한 가구점에 들렀다. 훨씬 어릴때에는 아이 책상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방을 잘 꾸며주고자하는 마음이 컸던 듯 하다.

아이가 7살 가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학교 근처의 마당이 아름다운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2층에는 방이 2개라 아늑하고 남향은 아니지만 볕이 잘 들어 따뜻한 집이었다. 어릴때부터 일찍이 독립한 탓에 이사와 전셋집에 지친 신랑은 이제는 정착하지 않겠나 싶었고 고심끝에 정우의 방과 어울리는 책상을 주문제작 하려 했었다. 방은 직사각형의 한변이 긴 형태라 기성 제품을 놓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주문제작이 흐지부지 되면서 결국 입학후에도 책상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우가 제법 앉아서 연필을 잡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책상을 마련해주는 일이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 싶었고 우리는 가구점으로 향한 것이다.

그곳은 따뜻한 느낌의 묵직한 원목으로 세련된 라인을 여럿 갖고 있는 프랜차이즈 가구점이다. 적당한 사이즈의 책상이 마침 하나 있었고 정우 또한 좋아했다. 그리고 계산을 하려는 찰나 신랑이 화장대를 사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안방의 한쪽 벽면에 쏘옥 들어갈 것 같은 앙증맞은 크기의 차분한 원목 화장대였다. 평소 화장을 잘 하지 않는 편이고, 화장대에 대한 로망같은건 없었는데 신랑은 “전부터 계속 사고싶었다.”고 말했다. 마음이 이상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책상과 화장대는 바로 배송이 왔다.

정우는 그날 책상 위에 오래 전 채집한 뿔이 멋진 (죽은)수컷 사슴벌레 를 가장 먼저 두었다.

나는 화장대의 작은 서랍에 신랑의 오랜 안경들과 젊은시절 착용했을 것 같은 은색의 묵직한 금속 시계 두 개를 곱게 놓아 두었다.

기분이 많이 좋았다.

나는 자연인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보 그리고 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숲이 가까운 어느 작은 컨테이너에 앉아 작업하다 누웠다 잠들었다 가만히 새소리를 들었다가 벌이도 없이 변변찮은 생을 보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 덕에 이나마 사나 싶다.

형아들의 축구 응원

지난주 금요일 저녁,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7년전 사두었던 형광빛이 강한 주황색 티셔츠를 챙겨입고, 정우가 만든 응원용 태극기도 챙겨 경기장으로 향했다. 당연히 치킨과 햄버거도 빠질 수 없지.

경기장 중앙의 좌석 보다는 골대 뒷편의 자리를 선호한다. 테이블이 있어 경기를 관람하며 먹기가 편하기 때문이고, 반대편도 생각보다 잘 보인다.

그날은 응원석 가까이에 앉게 되었는데, 우리 바로 왼쪽으로 중,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예닐곱 혹은 더 많이 모여 있었다.

학생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매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며 응원단과 교류하고 있었다. 스타일은 왜 또 다들 그리 좋은가. 그들의 기에 여름밤의 더위가 주춤할 정도였다.

신랑은 자신의 젊은 시절도 생각이 났는지, 내내 대견하고 신난 얼굴로 함께 응원했다.

정우에게, 그때 그 형아들처럼 열정넘치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래본다.

관계와 감정

초등학생 1학년이 된 아들은 얼마전 ‘배신’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유치원을 같이 다니던 몇 친구들과 같은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현재는 더이상 함께 놀지 않는다는 것.

반면 계속해서 함께 지내는 친구도 있어 보이고, 본인을 좋아해주는 여자 친구도 있어보인다. -본인피셜이라 확실치 않음-

긴 학창시절의 첫 해에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길.

생각과 태도가 작품이 된다.

작품이 마음에 들어 팔로우하던 한 작가를 더이상 팔로우하지 않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은 차분한 듯 차가우며 어두운 듯 부드러웠으나, 아래 달린 글에 이내 마음이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작품 설명은 고사하고 마음을 쉬이 드러내 보이니 그사람의 예술적 깊이와 안목은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생각과 태도 또한 작품이 아니던가.

지난 밤의 대화

푸른 밤, 하얀 형광등은 꺼지고 지구본에 옅은 노오란 불이 켜지고 나면, 요즘 이야기하자 말하는 정우다.

오늘 자신은 축구를 했는데, 그동안 엄마는 무얼 했는지 또 어떤 마음이었는지.

엄마의 이야기를 하다, 최근 혼자 침대에서 잠들기를 시도하느라 분리 불안을 겪는 정우에게 엄마아빠는 언제고 너를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정우가 조금 덜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 하고 나는 물었다.

“그럼 저- 안에 있던 사랑하는 마음을 꺼내면 되.” 하고 귓속말로 말해주는 아이.

해가 갈수록 좋아지는 것 들.

이른 밤 소주잔과 맥주캔을 함께 기울이는 것,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자꾸만 얘기해주는 것,

나에게만 보여주는 춤사위와

차 안에서 들려주는 선곡들.

지쳐 소파에 누워 있을때 얼굴 근처에서 나는 냄새들.

나는 아직 용기가 없어

오늘 아침, 다리에 밴드를 붙이는 사이 아이는 약통에서 꺼낸 손톱가위로 본인의 손톱을 깍아본다.

이미 지각이지만 손톱이 제법 길어 깍고 가기로 했다.

아들은 두 번째 손가락의 손톱을 아주 조금 깍아 보고는

“엄마, 아직 나는 용기가 없어.” 라고 말했다.

아들아, 어른들은 용기가 없으면 시도치 않거나 얼버무리기 일쑤인데

너는 용기가 없다는 말도 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구나!

2022 달력

2022년도 달력이 나왔습니다!

여러 날에 걸쳐 색감 및 질감을 조절하였고, 그 결과 실제 작품과 흡사하게 나와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달력은 11월에 진행되는 전시와 연계하여 제작했으며, 주문시 ‘전시 리플릿과 명함’을 함께 동봉하여 드립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년간 작업해오던 천연염색과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작업물로 제주의 풍광을 담백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따라서 11월에 전시하게 된 작품이 이번 달력에 실리게 되면서, 지난 해 달력과 중복되는 그림이 있음을 알리오니 참고해주세요!

달력 구매 링크

https://forms.gle/XGGnMq2PKBLKEoRa6

섬의 풍광
김초희 천연염색화 展

북촌한옥청
서울 종로구 북촌로 12길 29-1

2021. 11. 16 (화) ~ 21 (일)

전시 포스터

개인전시회 포스터는 매회 위치 기반의 디자인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예정입니다.

세 번째 개인전

세 번째 개인전은 서울의 북촌한옥청에서 열게 되었습니다. 매우 설레입니다.

섬의 풍광
김초희 천연염색화 展

북촌한옥청
서울 종로구 북촌로 12길 29-1

2021. 11. 16 (화) ~ 21 (일)

천연염색화

작가라는 호칭을 일부러라도 부여해서 엄마 김초희와 작가 김초희를 살아보던 날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로서의 삶의 흐름이 강해 작업의식이 흐려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나는 SNS에 올리던 나의 작업물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수업 또는 일상과 분리해보았다. 그제야 나는 작가의 호칭을 떼어내고 온전히 나의 이름 김 초자 희자 석자로 작업물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5월 26일나의 작업물들을 ‘천연염색화’라 이름붙였다.

엉뚱한 곳에서의 해답.

숲을 그리는데에 어려움을 겪은 후로 붓을 들기가 싫은 며칠이 자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방향에서 해답을 찾았으니, 그것은 바로 윈드스톤에서의 일이었다.

평소 보리차처럼 커피를 연하게 즐기는 나는 며칠 전 원샷을 부탁드렸고, 새벽에 잠이 들었던 것.

잠이 안오면 그림을 그리면 되겠다며 흘려 말한 사장님의 말이 마음에 닿은 것인지, 정우가 잠든 이시각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때마침 최근 작품이 좋다며 연락이 온 지난 작품의 구매자분과 그 지인분까지 감사한 마음.

작품을 깨부술 용기가 안난다.

천연염색과 아크릴 물감의 조화가 어느정도 감이 잡히는 듯 하여, 작은 사이즈의 작업을 마치고 곱게 염색해둔 커다란 천을 조심조심 꺼냈다.

천천히 작업을 해나가는데, 배경에서 원하는 만큼의 톤이 나오지 않았다.

근데 나는 도자기처럼 깨부술 용기가 안난다.

2020.12.30

며칠간 내린 폭설에 신게된 무거운 등산화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계단을 내려가는 길이 힘이 들었다. 영정 사진을 보고 난 후에도 나는 슬픈 감정이 들거나 눈물이 나지 않아 이상할 따름이었다. 사진 속 언니는 너무 밝기만 했다. 어찌할 줄 모르는 내게 꽃을 얹고 인사하는 법을 혜광님이 도와주셨다. 옆에 앉은 유림 언니에게 고심고심하여 내뱉은 말은 “언니 이게 진짜인지 잘 모르겠어요~”였다. 언니는 원래 그래~ 나도 그래~ 비슷한 말을 내뱉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에는 순간순간 어지럽고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언니의 하얗고 말랑말랑한 손은 난로만큼이나 따듯했다. 입구에는 소리없이 나오는 눈물을 고운 손수건으로 연신 닦고있는 현정언니가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괜찮다는듯 마른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또 손을 맞잡아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뿐이었다. 앙상히 마른 어깨와 맞잡은 손에는 힘이 없어 핏줄이 다 튀어나와있었다. 주변에는 제주의 몇몇 동료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고 폭설에도 단숨에 내려와준 원주님과 서울분들이 신랑과 함께 일해주고 있었다 .

12월 30일 폭설이 내렸다. 8시 즈음 정우와 잘 준비를 하려는데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듣기에도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신랑은 술을 마신터라 내가 운전대를 잡고 정우와 함께 제주대학교 응급실로 향했다. 지난 차사고때처럼 언니들이 응급실에서 곧 나올 줄 알았다. 그때부터 이틀이 지나도록 나는 실감을 못했던 것이다. 신랑은 다음날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는 순간 눈물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화를 할 때 간간이 목소리가 떨렸고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고 있는 듯 했다.

오늘 1월 1일, 신랑에게 민지언니 잘 보내주고 오라고 한 말은 나에게도 작별인사와 같았다. 준비없이 맞이한 이별에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뇌이고 글을 써봐도 나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이다.

대나무를 닮은 당신에게

높이높이 자라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는 깊고 대는 단단하게 성장한 것이
시시때때로 느껴지는 당신에게,
매일같이 방에서 마주하던
무수한 대나무숲의 뿌리를 선물합니다.

정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되서도 그림 그리는게 꿈이야~”

“난 거대 코뿌리와 가이오가가 나오는게 꿈이야. 그런데 꿈이 잘 안나와~ (시무룩)”

다행

문득 다행인것은 그가 그의 힘듦을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일지라도 언제고 내가 알 수 있도록 덤덤히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좀 더 예쁘게 얘기하지 못하고 종종 듣지 못하는 나의 귀와 습관들이 속상할 뿐.

출장 간사이

신랑은 매주 수목금 출장을 간다. 최근에는 CTO로 승진되면서 -2020. 9. 30- 주말에도 틈만나면 거실에 놓아 둔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한다. 매우 축하해야 마땅할 일인데, 고된 일이 늘어나 마음의 짐이 무겁다. 그런 여보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출장 간사이 ‘정우의 칭찬할 일’을 모아본다. 혹여나 잊어버릴까 매일 한개씩 적어두고는 신랑이 돌아오는 날 비행기를 탈 때 즈음 문자를 보내주었다. 제주로 돌아오는 피로한 몸이 한결 가볍기를 바라며.

1.설거지를 도와주었어요 (옆에서 헹구기를 해줌)
2.차에서 휴대폰을 보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켰어요
(등원길에 보조석에서 유튜브로 동요를 듣던 중, 광고를 ‘건너뛰기’ 해준 후 영상을 보지 않고 뒤집어서 제자리에 놓음)
3.반찬을 골고루 먹었어요 (멸치볶음, 연근)
4.저녁으로 떡볶이를 먹는데 한입 먹자마자 “아빠껏도 남겨놘?”이라고 말했어요 (출장가면 아빠이야기를 많이 하는 정우)

집으로 돌아오는길, 한껏 칭찬해주는데 으쓱하며 이마트로 가자는 정우. 그는 결국 메가리자몽Y를 손에 넣었다.

신기한 용돈

신랑의 30년지기 친구부부가 놀러와 횟집에서 회를 먹던 중이었다. 갑자기 옆 테이블 부부가 정우와 신랑친구부부의 초등생 아들에게 오천원씩 용돈을 건넸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화들짝 놀람과 동시에 쑥쓰럽기도 하고 또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이들이 둘이나 있어 바로 옆 테이블에 앉기 싫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예상과는 달리 떠들썩하지 않게 잘 있어주고, 잘 먹어주고, 기다리는동안 책을 보는 등 너무 예뻐서 용돈을 주신거란다.

이렇게 가치있는 용돈은 처음인 듯 싶다.

주신 마음 감사히 받아 아이들은 건너편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아들아, 이름처럼 곧게 자라 남을 도울만큼 마음이 큰 사람이 되거라.

동사같은 삶

지난해 첫 아크릴화 수업의 첫 수강생분이 올린 글,

그분은 고3 수험생들의 담임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질건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봤다고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들이 얘기한 동사같은 삶.

그 중 나의 눈에 띈 글 하나를 옮겨 적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미술 분야의 직업’

끄덕끄덕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최근 열어보는 수업으로 좋아하는 일과 먹고사는 일의 경계에 있는 나는 꽤 행복한데, 친구의 꿈을 매우 응원한다.

수목원과 도넛

라디오에서 들었던 수목원과 도넛 이야기.

출판을 하던분은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에 결국 수목원을 만들었고, 목수는 꿈을 접고 도넛가게를 하려다 마음을 다잡고 나무로 도넛을 깍았다는 이야기.

틀니

제주에 온 이후로는 가족들과 통화나 톡으로 안부를 전한다. 얼마전 아빠는 틀니를 하려고 치과를 다닌다고 했다. 어금니를 모두 뺐다고. 수화기 너머로 상추가 먹고싶어 조금 뜯어 먹어봤는데 맛을 하나도 모르겠다 말씀하셨다. 젊은시절 맛동산을 제일 좋아할만큼 이 하나는 튼튼하셨는데 어쩌다 잇몸까지 약해지셨는지. 속상한 마음 감출길 없다.

촬영

수오언니에게 공모전에 출품할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는 언니에게 촬영을 부탁하다니 염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언니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고 덕분에 언니의 작업실에 가보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실제의 향과 실제의 촉감이었다. 탐나던 책갈피도 얻었고! 헤헤

거실에서 재택근무를 하고계시던 형부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조잘조잘 옆방에서 촬영을 하는 우리때문에 일이 손에잡히지 않으셨으리라. 그래도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조언해주시고 도움을 너무나 많이 받았다. -어쩐지~ 공모전 출품 경력도 많으시다고!!!!-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없게 고마운,
한시간 한시간 꿈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작품판매

2년 가량 안고있던 작품이 다른 분에게로 가게 되었다.

‘지난 겨울의 삼나무길’ 이라는 작품으로, 제주의 비자림로가 훼손 될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이익이 연결된 사안이라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렵지만, 작품이 그려진 후부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던 작품이었다.

연락을 주신 분은 남원에 살고 계시고, -처음엔 서귀포 남원인줄 알았다-그림을 본지는 오래 되셨는데 이제사 용기내 구입을 원하신다고 하셨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일상의 이야기들 또한 공감되셨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페북이나 여기 홈페이지에 주로 올리는데 어디서 보신건지, 괜스레 부끄럽기도 하고 또 감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일들에 공감해주시고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해주시니 작가에게 이만한 행복이 어디있으랴.

그 누구에게도 작품값은 -크건 적건- 쉬운 금액은 아닐터, 나는 간만의 작품판매에 뛸듯 기쁜 마음도 잠시, 이해하지 못할 이런저런 감정들이 지나갔다.

판매된 작품값으로 그간 사고싶었던 천연염색 염재를 드디어 살 수 있겠다. 허허

토토로

토토로를 처음 접하게 된건 여고시절이다.

수능이 끝난 직후 일어 선생님께서 ‘이웃집 토토로’를 보여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난 불어전공인데 어째서…-

이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돼지’ 등을 연속해서 본 것 같다.

당시에는 시간때우기용 애니였으나 ‘스튜디오지브리’사의 어마어마한 작품이었단 사실은 대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며칠전, 넷플릭스에 ‘이웃집 토토로’가 올라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 포켓몬만 보지말고-포켓몬의 스토리도 매우 좋아하고 인정하는 바입니다.- 정우에게 보여줬더니, 보는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나 역시 스토리를 까먹은터라 한시간 반이 15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고양이 버스는 다시봐도 충격적이다. ㅋ-

함께 볼 수 있는 좋아하는 영화가 생겨서 기분이 묘하다.

육수

오늘 저녁에 육수를 내고 만둣국을 해먹었는데 엄마 떡국맛이 났다.

제주 전통 참숯만들기

좋은 기회가 생겨 참숯만들기 체험을 했다.

체험이라기 보다는 고생에 가까웠고 그걸 왜 돈주고 하냐는 신랑 지인의 이야기도 있었건만, 싫은 소리 없이 열심히 임해준 신랑에게 고맙고 또 모두 끝나고 보니 꽤나 좋은 경험이었다.

때마침 나는 그 후 아트제주에서 만났던 ‘이배’작가님의 작품이 숯으로 작업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자, 이제 이 귀한 숯으로 무얼할지 고민이다.

http://chohui.com/wp-content/uploads/2019/12/img_4229.movplaceholder://

결혼기념일

2019. 11. 29 결혼기념일 5주년

좋고 감사한 일들로 가득해 남겨둔다.

1. 오전 학부모 워크샵에 참가해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예쁜 파우치를 뜨고 -색실을 잘 선택한 것 같다-

2. 너무나 맛있는 점심데이트에 -사장님의 손놀림이 매우 조화롭습니다-

3. 사랑하는 인디고 언니의 케익으로 초를 불어 축하한 일. -날이 갈수록 케익이 맛있어져ㅠ-

4. 날이 좋아 아들이 유치원에서 하원한 후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 수 있었던 것. -최근 추워서 바깥놀이를 못했답니다-

5. 그리고 때마침 가장 좋아하는 노을색깔과 -감동-

6. 아들이 처음으로 수영할 때 물안경을 쓰고 잠수한 일. -수영은 엄마가 가르쳐준거다-

7. 신랑이 예약한 호텔 로비에 때마침 걸려있던 박서보 선생님의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 -한국 추상미술의 길을 잘 닦아주셔서 감사하고 또 매우 감동적입니다.-

8. 하루의 끝에는 애정하는 드라마 한편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가 좋아하는 술과 마른안주로 하루를 마감하며 사랑한다 이야기 한

오늘의 하루나 너무나 감사하고 벅차올랐습니다.

사랑해 여보.

http://chohui.com/wp-content/uploads/2019/11/img_4375.mov

2020 달력

2020년 달력이 나왔습니다🙂

올해는 미뤄왔던 천연염색 작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자연의 색에 다가선 것 같고 또 아크릴과의 접목도 서서히 자리잡히는 것 같습니다.
내년도 달력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의 초기작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고, 한달 한달 꾸밈없이 작업하였습니다.
육지든 제주든, 또다른 나라의 하늘아래에서도 ‘그래, 그날은 풍경이 이랬지. 이런 색깔이었지!’ 하고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달력은 작년에 만든 방식 그대로 나무받침에 끼워두는 형태입니다. 다만 작년에 구매한 분들은 나무받침을 또 안사셔도 되게끔 제거한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가격

받침있는 달력 22,000원/ 받침없는 달력 15,000원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구매페이지에서 입력하시거나 개인적으로 연락주세요🙂

https://forms.gle/yuPDxEN38prD24Bn6

여보세요

나는 업무 전화를 받는 신랑이 너무 좋다.

처음 볼때부터 업무 전화를 받는 “여보세요~” 소리를 좋아했었다. 2013년 당시 우린 같은 사무실 공간을 사용했는데, 신랑은 저 너머 창가자리 옆팀의 팀장님이었다. 창이 커서 햇살이 많이 너머와 종종 눈이 부시기도 했고, 컴퓨터만 쳐다보는 일이다 보니 눈의 피로를 핑계삼아 창가를 보며 저 너머 신랑이 있던 자리를 슬며시 보기도 했다. 꼬불꼬불한 윗 머리카락만 보이는 그의 “여보세요~”소리는 늘 내 귀를 간질거리게 했다. 경상도 여자인 내게 서울말로 “여보세요~”라고 하는것이 어쩜 그렇게 멋있던지.

지금까지도 종종 운전을 할때나 밖에서 업무전화를 받으면 그렇게 멋있다. 특히나 후광이 비치는 날에는 더더욱!

다섯개열개

정우는 요즘 큰 의미를 나타낼 때 ‘다섯개 열개보다 더’라는 말을 한다.

물이 “다섯개 열개보다 더 차가워”

귀여운 내새꾸❤️

이해 안해도 되

주말이고 미세먼지가 많다고 했지만 바다에 다녀왔다.

신나게 놀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도 들러 정우가 좋아하는 마트 안 빵집도넛도 사들고 왔다.

한편 신랑은 최근 식단조절을 하고 있는데, 3일 후에 있을 건강검진과 겹쳐 먹을 수 있는 것이 두부와 달걀 뿐이었다. 다행히도 두부요리 전문 체인점이 있어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정우는 당장 먹고싶어 찡찡댔다.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훔~ 도넛 먹고싶은데 훔~ ” 이럴땐 엄마도 지금 도넛 먹고싶다며 옆에서 정우처럼 똑같이 찡찡대면 해결이 된다.ㅋㅋ

저녁을 잘 먹고 정우는 약속대로 도넛을 먹었다.

아빠는 돌아가는 길에 세상 맛있게 도넛을 먹는 정우에게

“이럴꺼면 밥을 다 먹지 그랬어”

나는

“괜찮아 정우, 엄마는 그 마음 이해해. ㅋㅋㅋ”

이 말을 듣자마자 창밖을 보며 시크하게 정우가 하는 말.

“이해 안해도 되.”

OMG

결국 도넛 두개나 클리어.

작가 김중혁

작가 김중혁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며칠 전 대화의 희열 ‘김영하작가’편에서 그가 했던 말이 끊임없이 나의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Who am i and if so how many?

나는 누구이며 또 몇명인가

내 안에는 다양한 중혁이가 있는데 그 중 글쓰는 중혁이는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는 말.

다른 중혁이가 예술가 중혁이를 먹여살린다는 이야기.

다시 천연염색

2016년 말, 나는 우연히 천연염색 작업을 하게되었다. 작품은 거듭할수록 서서히 정리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일년 후 몇몇 작품에서 색이 옅어지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후 천연염색은 포기하고 일년간 아크릴화로만 작업을 진행하였다. 한해동안의 작업물을 정리하고 전시준비를 하던 중 나는 이전에 작업했던 천연염색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그 색이 물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아름다웠다. 물감으로는 자연 그대로의 컬러를 나타낼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리하여 2019년 5월, 나는 다시 천연염색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공간사랑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액자 칠 작업을 하시던 ‘공간사랑’ 사장님!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장화

새벽부터 비가 많이 오는 날이다.

트렌치코트 모양의 베이지색 우비와 공룡들이 그려진 장화를 신고 유치원에 보낸다.

정우는 쪼리를 신은 내 발을 만지작 거리더니

“넌 장화 없지?”

“너 작아지몀~ 이거(본인의 공룡 장화) 줄께~” 라고 한다.

~하면 이 아닌 하몀 으로 발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언제까지고 그렇게 얘기해 주었으몀 좋겠다. ㅋㅋ

또 정우는 옷이며 장난감들을 형아에게 많이 물려받아 입히는데 그때문에 나에게도 장화를 주고싶은 모양이다.

엄마발은 정우보다 크지만 고마워

처세술

아들이 샤워헤드로 장난을 치다 천장이며 거울까지 물이 닿았다. 잔소리를 하자 아들은 작게 속삭였다.

“엄마 예뻐.”

엄마는 1초도 안되어 녹다운.

나는 바람을 그릴래

최근 티비 보는것을 줄이기로 했더니 짧은 아침시간에도 새로운 놀이가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정우는 매일 아침 달걀 후라이 두개를 먹는다. 그리고 오늘아침에는 달걀 껍질에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흰 펜을 고른 후 정우는 말했다. “나는 바람을 그릴래!”

개인전

지난 몇 년간 저의 마음을 건드린

제주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김초희 두번째 개인전

2018년 11월 17(토)~26(월)

윈드스톤 갤러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성로 272

“귤 주세요.”

일년 전 아들의 작은 입에서 뱉어진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냐는 식으로 눈을 반짝이며, 몇번이고 “귤 주세요”를 외치던 아들은 이제 못하는 말이 없다. 습자지처럼 나의 말과 행동을 흡수하는 아들을 보며 내내 반성한다.

-‘슬기로운 깜빵생활’에 나왔던 ‘정경호’처럼 예쁘게 말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속상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귤철은 돌아왔고 주렁주렁 너무 많이 달려 나뭇가지가 휘어질 지경이다.

아들의 나무에 속 상한 열매는 떨어지고 예쁜것만 익어가길 바래본다.

아빠네 가족여행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는 나의 결혼 후 만 4년만에 제주에 오셨다. 고모네와 함께.

큰고모부는 일흔이 훌쩍 넘으셨고 기억속에 날카로웠던 둘째 고모부는 너무 웃긴 분이셨다. 머리숱을 뽐내며 굵은 파마를 한 곱디고운 큰고모와 작은고모가 계셨고, 막내고모는 말하길 할머니 소리는 정우에게 처음 들어보셨다고 ㅋㅋ 그도 그런것이 큰고모와 10살넘게 차이가 나니 아빠가 업어키웠다 하셨다. 아, 아빠 가족은 6남매이다.

나도 매번 까먹어 여기 적어둔다.

2018년 기준

큰고모(69세)-아빠(66)-둘째고모(64)-삼촌(63)-막내삼촌(59)-막내고모(58)

막내삼촌과 막내 고모가 헷갈린다; (추후수정예정)

아빠는 내년 이맘때쯤 삼촌네들과 같이 오시면 좋겠다 하셨다. -미세먼지만 아니면 봄에 오셔도 이쁜데 – 아무래도 함께 못온것이 내내 마음쓰인 것이리라.

부모님들 덕분에 서먹했던 사촌들과도 조금은 친해진 듯 하고 먼길 함께 여행와주셔서 고맙다.

또 고생해준 여보에게 무한한 감사를

김초희 두번째 개인전

작업을 위해 사진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몇년 전 사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지만 앙상한 나무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알고보니 신랑이 제주에 내려 온 그해 겨울에 찍은 사진이었다. 뒤로는 한라산이 보이고 회사 앞에서 찍었다는 것으로 보아 나무는 벚나무로 추측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한라산 앞으로 큰 건물을 짓고있어 더이상 그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림을 완성하고 꽤 지난 후에 언젠가 신랑이 내게 말했다.

사실 그 사진은 되게 차갑고 외로운 느낌을 나타낸건데 니 그림은 왜이렇게 따뜻하냐고

다시 사진을 보니 그랬다. 차가웠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릴 당시에 나는 한라산이 내뿜던 노란 기운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그 본질이 품던 의도와는 별개로 그간 내 마음을 건드린 제주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을 소개하려한다.

김초희 두번째 개인전

2018년 11월 17(토)~26(월)

윈드스톤 갤러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성로 272

높고 귀중한 마음

누군가를 만나고 또 결혼을 해서 함께 살아갈 때,

이상적인 형을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길인가 싶다. 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음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尊 (높을 존), 重 (귀중할 중)

바로 이런 마음이다.

어느 여름날

주방 수도꼭지 위로 그대의 손이 나의 것을 감싸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처음 만날때처럼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아들은 네살이나 먹었고, 결혼한지 4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그림

나는 유년시절 그림으로는 먹고살지 못한다는 말을 종종 듣고 살았다. 엄마는 그랬다. 배운적 없는 그림솜씨가 어마어마 했지만 그걸로는 먹고 살 수 없었다. 엄마에게 그림은 아쉬움을 달래듯 그저 취미로 남았다. 그러니 우리 가족에게 그림은 사치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내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것은 부모님께 적지않은 부담이었다. 물감 살 돈이라도 아끼고자 3년 내내 연필 소묘만 했다. 결국 그림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며 디자인과를 선택하여 20대를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디자인은 나와 맞지 않다고, 이 길을 가지 않겠다 생각하며 졸업했다. 그리곤 결국 그림이라며 되돌아오던 지난날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자 그림은 더욱 그리기 힘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듯 태교삼아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했다. 아기가 잠들면 새벽에 겨우 그린 그림을 갖고 프리마켓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림은 다시 저 멀리 달아났다. 안개속에 있는 바다와 같았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꿈같은 것이었다. 신랑과 나 그리고 아기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다행히 최근 아이가 어린이집을 오후까지 다니기 시작하면서 모든것이 변했다.
아이과 떨어져 있는 여유시간동안 나는 온전한 나의 삶과 마주했다.

그것은 그림이었다.

할머니 상

얼마전에 할머니 상으로 영천에 다녀왔다. 그러니까 정우한테는 증조 할머니인 셈이다. 외 증조할머니. 내 기억속 할머니는 담배를 태우시며 아궁이를 살피는 건강한 분이셨다. 그런데 결혼전인가 언젠가부터 누워계시더니 병원을 왔다갔다 하며 어빠가 간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이었다. 여느날과 다를 것 없이 우리는 인디고에 있는데 신랑이 나의 언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다음주면 영천에 한번 들를 참이었다. 어버이날에 뵙지 못해 적당한 때에 비행기표를 끊어두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일주일을 못기다리시고 눈을 감았다. 신랑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라고 얘기를 했을때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났다. 난 엄마를 고생시킨 할머니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나오는것이 왠지 이상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산랑은 잦은 출장으로 비행기표 예매 방법은 누구보다 잘했다. 마침 성수기고 연휴가 낀 주말이라 아무리해도 표가 나지 않았는데 신랑은 표를 구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영천으로 향할 수 있었다.

정우는 왠일인지 영천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잘놀고 잘먹었다.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많이 커서 그런지, 본인이 좋아하는 이불 -엄마가 결혼선물로 사준 알레르망 이불이다. 사각사각하고 시원하다- 을 가져가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잘 먹고 잘 지내주었다. 장례식장에서도 산소에서도. 다행히 개월수에 비해 말을 잘하는 정우는 처음보는 온 친척들 사이에서 귀염둥이가 되었다. 정우덕에 검고 흰 곳에 웃을일이 생겼다. 다행이었다.

정우는 금새 말도 생각도 늘었다. 일주일새 몸무게도 12키로에서 13키로가 되었다. 제주에선 그렇게 늘지 않던 몸무게였다.

돌아와서는 영천 사투리를 써서 여간 당황스러울수가 없다. 게다가 다시 미운 네살로 돌아오려고 한다. 엄마는 많이 힘들다.

어느 날 저녁

어느 날 저녁,

밥을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가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니가 꼬셨지만 내가 널 더 좋아하지.”

나는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가 대답했다.

“넌 모르지만 난 알지 “

나는 내내 그 말이 좋았다.

금능

어제같은 날엔 무조건 금능이었다.
전날부터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수영복, 여벌옷, 씻을물, 간식 등을 준비해두었다.
한편, 정우는 새학기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한다. 어제는 입구에서부터 들어가기 싫다고 울며불며 떼쓰다 결국 야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삼십분 정도 놀게되었다.
그리곤 바로 나와함께 금능으로 향했던 것이다.
바다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어제는 날이 좋아 놀이터에서도 놀고 바다에서도 엄마랑 신나게 놀았지만 오늘은 꼼짝없이 12시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잘 할 수 있을지 ..

2017.12.31

신랑은 얼마 전 새벽 세시에 출근을 했다.

새해부턴 업무가 바뀔 예정이라 신경 쓸 일이 많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많이 피곤한지 정우와 놀아주는 질과 양이 달라졌다. – 출장길에 다친 무릎때문이기도 하니 이부분은 패스하자. 빨리 낫길! –

29일 저녁이었다.

보통 아홉시 반쯤 우리는 침실로 가 한시간정도 뒹굴다 잠드는 편이다. 열시쯤 되었을까. 눈이 반이상 감긴 신랑이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야, 아빠 재워줘~”

정우는 아빠 어깨를 토닥이며 “자장~ 자장~” 해주었다.

이어 나에게 와서도 자장가를 불러주었고 나는 정우의 빵같은 왼쪽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행복하다. 여보~” 나도 모르게 뱉어진 말이었다.

그리곤 신랑은 금새 잠이 들었다.

한편,

30일 토요일엔 인디고를 다녀왔다.

나의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 인디고에서 바라언니와 우리는 토요일 11시부터 한시간동안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이 있다.

부지런한 신랑덕에 어제는 오픈전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오픈부터 손님이 많아 커피를 내어오고 여유가 생길무렵 언니는 빨간 끈으로 포장된 새하얀 선물상자를 내보였다. 직접 만든 마들렌이었다.

바라언니와 나는 감동의 물결로 하나되었다.

돌아오는 길엔 내가 어떻게 이런 좋은 사람들을 만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

우리 가족은 제주에 살면서 연말에 육지 친구들이 그립다. 친구들과 거나하게 한잔 한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행복하고 그리운 연말이 지나간다.

재주소년과 귤

chohuikim:

12월 9일이었다.

한달 전부터 예약해둔 재주소년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정우를 재우고 함께 동행하기로 한 바라언니의 작업실에 들렀다. 한참 수다를 떨다보니 벌써 공연시간이 코앞이었다. 공연은 네시인데 가려면 삼십분은 걸릴터였다. 언니는 공방문을 닫을 수 없어 나를 데려다 주기로만 했다. -언니도 정신이 없었던터라 공연이 오늘인지도 몰랐단다- 쌩 달려 도착한 공연장에선 이미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프닝을 놓친건 아쉽지만 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우선이었다.

공연은 결혼 전 보았던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후 처음이다. 재주소년의 목소리는 mp3로 듣던 그 소리와 너무 똑같아 놀랐고, 공연장이 너무 추워 -반짝반짝 지구상회는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다- 소매를 내리는데 가끔씩 보이는 그의 손목은 너무 섹시해서 반했으며, 마지막 곡의 첫 기타소리가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신랑을 불렀다. 다행히 정우는 그동안 잘 잤다고 한다.

한편,

정우가 처음으로 말한 문장은 “귤 주세요.” 다. 보사노바를 듣고 자란 ‘루시드폴’이 농사지은 귤을 한입 먹고는 “뀰 두떼요.” 라고 말했다.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뒤로하고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오던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뒤로하게 되었다.

이는 그간 진행했던 작업물 중 일부 작품에서 천연염색 부분의 색이 옅어지는 사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인스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으며 연락이 닿는 분들에 한해서는 작품이 모두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 어느 분께서는 조금 물이 빠지기는 했으나 이삼년 지났으니 천연염색의 특성상 시간에 따른 것이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한다”는 말씀과 함께 외려 격려해주셨다.

좋은 분들께 작품이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기에 나는 천연염색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광목에 아크릴만으로 자연의 색을 담아보기로 했다.

첫 시도작은 대 성공!

별에게로 가는 길

오래전부터/ 내가 소를 잊고 살듯/ 별쯤 잊고 살아도/

밤마다 별은/ 머나먼 마음의 어둠 지고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상국의 ‘별에게로 가는 길’ 중

간질간질 간지러운 냄새

나의 팔이 그의 작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눈을 감고 얼굴을 맞대면 나의 광대가 그의 눈두덩이에 폭 잠긴다.

나는 그 느낌이 좋다.

보들보들한 살결에 작은 속눈썹이 간질간질 나를 간지럽힌다.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속눈썹이 처음 길어 나올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속눈썹으로 그의 찹쌀모찌같은 볼을 간지럽혀본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면 그의 냄새가 솔솔 난다.

로션 냄새인지 섬유 유연제 냄새인지 기저귀냄새인지 모를 이런저런 냄새들이 뒤섞여 난다.

“초희 냄새가 솔솔 나네~”

어릴적부터 엄마가 내게 자주 해주시던 말이다.

나는 이제

“정우 냄새가 솔솔 나네~” 라고 말한다.

가족계획

우리는 얼마전 가족계획을 마무리하였다.

이로써 정우는 5대 독자가 되었음을 알린다.

감물염색

얼마전 감물로 염색한 천이 이제야 색이 나왔다.
감물은 살균효과가 뛰어나 천에 염색하면 벌레들이 비켜간다고 한다.
나는 고이 보관하던 정우의 배냇저고리와 돌한복을 꺼내
기다란 감물염색천으로 감쌌다.
정우가 클때까지 벌레들이 비켜가길 바라면서.

놀아줘

내가 정우를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정우가 나랑 놀아주는 것이라 생각해보자.
“정우야 엄마 심심해~”

Oui

Oui.
정우가 내 기분을 풀어줄 때 하는 말이다.
긍정의 대답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 oui [우이]와 억양또한 흡사하다.
내가 짜증이 났거나 화가 난 듯 보이면 내곁에 다가와 우이 우이 하는데 너무 귀엽다!

인디고와 바라언니

하늘이 맑은 무척이나 좋은 날이었다.
신랑의 지인이 -이제 나의 지인이기도 하다- 제주로 여행을 왔다.
우리는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왼쪽에는 처음보는 카페가 있었다.
그것이 인디고와의 첫 만남이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나의 첫번째 전시인 태교전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생각해보면 무턱대고 연락해 내 그림을 전시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너무 좋다고 말씀해주신 사장님도 참 신기하다.
지금도 위안이 필요할 땐 어김없이 인디고를 찾는데 어느순간 나의 집에 온것같은 느낌이 들던때가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인지 여사장님의 예쁜 미소때문인지 그윽한 커피향과 맛있는 케익 때문인지 모를일이다.
어쩌면 운이 좋아 갓 구운 스콘을 바로 먹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일지도..
바라언니와의 인연 또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카페 중앙에 자리한 테이블에는 각종 서적과 꽃 등이 자리해있는데 그 곳에 고운 그릇이 있었다.
그렇다.
바라언니는 그릇을 만든다.
언제고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니 토요일 오전 한가로운 주말 아침에 다같이 볼 기회가 있었다.
여리여리하지만 강단있는 손 끝이 그녀의 그릇과 닮았다 생각했다.

어제는 그간 작업해오던 천연염색 아크릴화의 문제점을 눈으로 확인한 날이었다.
제주 동쪽 샵에 납품한 그림이 너무 멀어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관리가 잘 안되어 철수를 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는데 두 점의 그림에 색이 많이 날아갔다.
안타까움은 오래 남았다.
천연염색은 빛에 약해 색 보존이 어렵고 변색이나 이염이 잘된다. 그것이 천연염색의 매력이자 취약점이었다.

그렇기에 어제는 왜인지 바라언니가 무척이나 보고싶었다.
이런저런 작업의 고충을 얘기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여러가지 조언도 함께 얻었다.
바라언니에게는 마음의 평안과 함께 시원시원한 그녀의 성격과 닮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인디고에서 셋이 함께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들날을 기약한다.

빨래

빨래를 개어 넣고있는데
정우가 따라와서는 아빠 양말을 두는 곳에 행주를 넣어주었다.
고마워 정우야

벨롱장

오늘 벨롱,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열립니다.
잔디밭이 넓어 정우가 놀기 너무 좋아요!!!!

엄마랑 떨어진 첫 날

정우는 이제 17개월에 접어들었다.
그간 아빠의 출근과 출장에는 익숙해진 터,
-익숙하긴 해도 출근하는 아빠와 떨어지기 싫은 정우다-
꼬박 24시간이 넘는 나와의 이별은 첫 시도다.

나와 정우의 이별 이유는 바로 나의 육지여행 때문이다.
여행 계획은 아래와 같다.
1. 아영이의 신혼 집들이, 세종이다.
2. 언니의 이직으로 인한 이사, 청주 공항에서 15분 거리다.
때마침 두 사람의 집은 꽤 가까운 거리였고 이동역시 민지가 차를 몰고 온다니 안갈 이유가 없다.
다만 정우가 걱정일뿐.

하지만 쿨한 여보덕에 그리 고민하지 않고 비행기 표를 끊게 되었다.

집에서 나오는 길에 정우는 아빠가 또 가는 줄 안 모양이다.
아빠곁을 떠날 생각이 없는 정우는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정우야 오늘은 엄마가 간단다 ..

정우가 옆에 없으니 편했다.
비행기 탈때도 편했고,
커피를 마실수도 있었고,
밥을 먹을때도 온전히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언니를 만나 잠깐이었지만 알찬 시간을 보냈고
아영이와 민지도 만나 신나게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런데 나는 종일 뭔가 허전했다.
페이스타임을 했다.
정우는 나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어댔다.
흐어어어엉
나도 눈물이 났다.
내가 욕심부려 정우의 마음에 큰 상처를 냈나 싶었다.

오늘저녁 잘 보내고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수건

샤워가 거의 끝나갈 무렵
거실에 있던 정우가 수건을 건네준다.

정확히는 의자에 걸려있던 수건을 아래로 당겨 -키가 모자라기 때문- 가져다 주려다 의자가 넘어졌다.
정우는 깜짝놀라 울었다.

옆에있던 아빠가
“우리정우 엄마한테 수건주려고 했어?”
라고 해주어서 상황 파악이 되었다.

이제껏 성악설을 믿던 나였다.

드디어 정우의 울음에 익숙해진 듯 싶다

외출로 오전에 한시간가량 낮잠을 잔 후
다섯시반이 되어서야 다시 잠든 정우였다.
-낮잠은 보통 12시쯤부터 두시간 쭉 잔다-
여섯시 반,
정우는 정확히 한시간을 더 잤다.
그때 난 정우의 산모수첩을 정리하며 출장간 신랑과 통화중이었다. 찡찡 소리가 나길래 봤더니 벌떡 일어나 걸어오려고 했다.
얼른 안아 토닥였지만 정우의 컨디션이 좋지않아 얼른 같이 저녁밥을 먹기로 한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기 식탁의자에 앉혀놨다.
정우는 주방에 둔 귤 두개를 보고 당장 달라며 세상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줄 순 없었다.
맛있는 저녁을 위해서.

엉엉 눈물콧물 흘렸지만 오구오구 엄마가 빨리 저녁 줄께~ 대답만 해줄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귤을 까주었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을 냈거나 안아줬거나 했을텐데 아니었다.
그저 이해해주고 가끔 못본척도 하며 저녁먹고 귤 먹자~ 대답해줄 뿐이었다.

저녁은 유부초밥이었다. 난 카레 ㅋㅋ
-보통 출장전엔 가벼운 식사꺼리나 반찬을 쟁여둔다. 혼자 밥해먹이기 힘들까봐. 매번 눈물난다. 그런데 이번엔 출장이 길다. 무려 4일이다. 크흡ㅠㅠ-
암튼 그 유부초밥을 정우는 맛있게 엄청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었는데 내려올 생각이 없다.
뒤에있는 귤을 돌아보며 까주길 기다렸다.
ㅋㅋㅋㅋㅋ
짱귀엽다.
먹는동안 설거지를 얼른 끝내니 정우가 또 돌아봤다.
아 귤 두개였지…
똑똑한데…
정우는 귤을 두개나 먹고 나서야 만족한 응가를 뽀직 싸보였다.

나는 부족하고 염색은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부족하고 염색은 어려운 것이었다.
-오방색으로 하는 천연염색, 정옥기-

나는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작업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예전 작품이 물이 빠진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집에서 몇달째 보관한 염색한 천은 색이 바래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내 손을 벗어난 작품은 공기 산화와 햇빛 노출 등으로 인해 결국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도 그런것이 염색을 확실히 배우지 못한 나의 부족함도 있었겠고, 30여년 염색을 해오신 정옥기님도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졌다 하신다.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어렵지 않게 작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나의 큰 실수이자 오만이었다.
하지만 곧 나는 가슴에 무언가 두근거림이 생겼다. 무궁무진한 답이없는 이 천연염색의 세계가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간 후루룩 그리던 펜화를 좋아하던 내가 이 고생스러운 작업에 빠지다니.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이리날아 오너라~
정우가 좋아하는 노래다.

노랑나비가 나오는 책이 있다.
음메~ 젖소옆에 노랑나비가 함께 있는 책이다.
늘 그책을 읽을때면 나비를 가리키며
나비야 나비야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오늘 나에게 안겨 찡찡대는 정우에게 나비야를 불러주었더니 곧 내품을 벗어났다.
그런데 또 꺅- 소리를 지르기에 정우를 보았더니그 책을, 나비가 있는 페이지를 어느샌가 펼치고서는 나에게 보여주는것이 아닌가.
맙소사.

이쁜짓

정우는 최근 “이쁜짓” 이라고 하면 손가락을 볼이 아닌 귀에 갖다대며 머쓱하게 웃는데 귀여워서 미칠것 같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는 아니었으면 한다.

행복을 강요당했다.
아가를 키우는 지금이 가장 좋을때라며 나는 엄마에게 행복을 강요당했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짧은 삼십인생 겪은 바로는,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다는 논리는 내겐 틀렸다.
도대체 지나고 보니 고교시절이 좋았다는 말은 누가 뱉은 것인가.
각각의 시에 불행이, 행복이, 슬픔이, 기쁨이 뒤엉켜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좋고 나빠 흑백논리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느니 같은 소리는 내겐 드라마에나 나오는 시간여행같은 소리일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이 가장 좋을때는 아니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남은 일생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충분히 오늘을 살아 앞으로의 날들이 계속해서 보다 더 좋은 날이길 바란다.
오늘도 내가 끊임없이 정우를 사랑하고 또 싫어하였듯이.

수선화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663

물에 사는 신선, 수선화를 만나고 왔다.

사실 수선화를 알게 된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새 수선화에 빠져들게 된 나는 당장이라도 만나러 가야했다.
여러분도 위의 저 브런치 글을 읽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신랑의 반차 찬스를 이용한 우리 가족은 수선화가 만발했다는 대정향교로 향했다.
서귀포는 햇살이 좋았고, 하늘이 맑았고, 유채꽃이 벌써 만발했고, 바람은 찼다.

넓은 마늘밭을 지나 우뚝솟은 오름 아래 향교가 고즈넉히 자리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수선화가 내게 왔다.
정우에게도 향을 맡게 해주니 사르륵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밖에서도 곧잘 걸어다니는 정우는 귀여움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감기로 몸이 좋지 않은 신랑은 코가 막혀 아쉽게도 향기를 맡지 못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주 예전에는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있었을 것인데 이젠 가로수 아래 심겨진 수선화만 볼 수 있어 많이 안타까웠다. 시골 구석구석으로 가게되면 만나려나. 나같은 노형커에겐 힘든 일이기에 더욱 아쉽다.

이대로 돌아가긴 아쉬워 길가에 수선화 한떨기를 집까지 모셔왔다.
-신랑은 작은 꽃 하나도 꺽기 싫어하지만 나의 욕망을 꺽을 순 없었다-

식탁위 그 향기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오키나와 여행

벌써 두번째 맞는 결혼기념일 겸 스트레스 해소겸 우리 가족은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비행시간이 가장 짧기도 했고 -돌도 안된 아가와 함께하는 여행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난 여행지보다는 휴양지를 선호하는 편이고 게다가 일본은 어쩐일인지 한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 다녀온 여행지는 프랑스와 상해 정도로 여행의 폭과 깊이가 짧고 얕은 나로써는 참으로 적당한 여행지가 아닐 수 없었다. ㅋㅋ
오키나와 힐튼 차탄 리조트로 오는길은 참으로 힘들었으나 굳이 글로 담고싶지 않으니 그냥 ‘쉽지는 않았다’ 정도로 요약한다.
호텔로 가는 리무진 창밖 풍경으로 영화에서나 보던 교복입은 아이들이 나타났다. 꽤 신선했다.
힘들게 도착해 마음껏 기어다닐 수 있는 크고 하얀 침대를 보자 방방 뛰며 웃던 정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모든 일정은 정우의 컨디션에 맞춰주었고 위 사진은 실내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수영을 하고는 그대로 꿀잠을 자는 정우의 모습이다.
올해는 제주 앞바다에서 수영한번 못하고 이렇게 지나가나 했더니 오키나와에서 한을 풀고 간다.
여행내내 정우를 안아주고 신경써주며
여러모로 무리해준 여보에게 무한한 감사를…

한발짝

어제였다.
7시쯤 이었다.
그간 종종 5초 10초정도 서있다 팍 쓰러지던 정우가 언젠가부터 천천히 앉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어제 한걸음 내디뎠다.
맙소사

근래들어 맘마를 끊으려고 많이 주지 않았는데 그날 오후 충분히 주어서 컨디션이 좋았던 것일까, 그냥 때가 되어서일까.

이유야 어찌되었건

걸었다.
정우가 걸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정우는 드디어 낮에도 밤에도 맘마를 하지않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신랑이 저녁에 말하길 “오늘부터 내가 정우를 데리고 잘테니 넌 따로 자라 제발! ”
-‘제발’은 몇번 그리 말했으나 내가 여보의 말을 듣지 않고 같이 자다 계속 새벽수유를 하게 된 사건에서 비롯함-
결국 나는 신랑방으로, 신랑과 정우는 안방에서 같이 잠을 청했다.

늘 맘마를 하며 잠이들던 정우에게 아빠와 함께 잠드는것은 너무 가혹했을까.
정우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어댔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어느순간 문 너머로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날 나는 오랜 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아침 7시였다.
정우의 눈엔 눈물이 아빠의 눈엔 핏대가 지난 밤 사투를 그리게 하였다.
나는 부랴부랴 정우에게 젖을 먹였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우도 좋은지 금새 베시시 웃어보였다.

이제 정우는 낮에도 안방 문을 닫고 커튼을 치면 왼쪽 품에 안겨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오늘 밤에는 울지않고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못하는게 없는 우리 여보야는
육아마저 나보다 잘한다. 이러한 정우의 수면 패턴을 만들어 주고는 불금을 보내러 가셨다.
오늘은 새벽에 들어와도 용서가 되는 밤이다.
사랑해요 우리여보.

패턴은 이러하다.

8시 샤워
샤워 후 조용한 놀이
8시 50분 안방으로 들어감
9시 반짝반짝 자장가 부르기
9시 5분 불끄고 자장가 부르기
9시 10분 잠들면 20분동안 안은채로 토닥토닥
이후엔 내려놓아도 됨

이상할 노릇이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언제인지 울며불며 신랑에게 일주일에 두시간만 내 시간을 달라 이야기 하던때가 있었다.
아가와 떨어져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아가에게도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신랑이 말했다.
가서 영화를 보든 그림을 그리든 미술관을 가든 아님 카페를 가던지 하라고,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다시 울음이 났다.
꺼이꺼이 울며 말했다.
“으허오어엉 가고싶은데가 없우오어엉.
혼자 하고시푼게 업스으어엉.”
나 혼자서는 가고싶은 곳도 하고싶은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여보와 정우와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었다.

점점 이뻐지고 있다.

신랑은 정우가 점점 더 이뻐진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정우는 점점 이뻐지고 있다.

정우는 이제 엄마, 맘마, 아빠를 종종 하고있다.
최근 꽤 정확한 발음으로 아빱빠빠 하면 내가 아빠? 하고 놀라 웃으며 보는데, 그럼 뭐 이런걸로 놀라냐는 식으로 정우는 시크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또 두어달 전인가 배에 부우- 하고 바람을 불어 방귀소리를 냈는데 어느새 따라 우리의 배에 다리에 팔에 똑같이 따라 부우- 한다. 꽤 오래되었는데도 이게 제일 재밌는지 심심할때면 계속한다. 장난꾸러기다.

엊저녁엔 개그맨처럼 웃겨주었더니 목을 뒤로 젖히면서 깔깔깔 숨넘어가듯 웃어보였다.
민지는 이제 웃음소리도 안정화되어간다고 했다.

이제 물건을 짚고 일어설 수도 있는데 서서 몸통을 잡아주면 한발짝 내딛는다. 불안한 발걸음이 달에 간것보다 기쁘다.

이유식도 어제 오후에 첨으로 반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단호박 옥수수 이유식이었다.
-감동-

방금은 자면서 배에 힘을 살짝 주더니 방귀를 뽀옹 뀌었다. -아 귀여워 ㅋㅋㅋ 아 지금은 내가 자다 깨버려서 새벽 한시다- 정우가 데굴데굴 굴러 내 옆까지 와서 나는 구석에 쪼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지만 행복하다.

하고싶은 이쁜 이야기가 끝없이 술술 이어진다.
다 담을수가 없어 아쉽다.

사실이다.
정우는 점점 이뻐지고 있다.

이가 쏘옥 올라왔다

정우의 이가 쏘옥 올라왔다.
귀엽다.
어째서 매번 아빠가 출장가있을때에 크는것인지.
새벽에 종종 깨서 돌아다니더니 이가 나려고 그랬니.
고생했어 사랑해

앉았다 눕는 방법

정우는 이제 잠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뒤집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뒤로 떨어졌더니 지난번에 엄청 아팠어.
옆으로 떨어지는 건가
음 앞으로 내려가자
아 다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라고 생각하는것 같다.
귀엽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

아가를 키우는 동안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다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에는 신랑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이야기 할 정도였으니까.

정우 낮잠을 재워놓고 집안일을 끝마치니 시간이 조금 남았다.
이책 저책 살펴보다 정우가 언제 깨어나도 덮기 좋은 산문집 한 권을 집어들었다.

몇장 읽다 문득 든 생각.

나는 아가를 키우는 동안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다 생각했는데 정우가 성장통으로 새벽내 울때면 나도 같이 울며 성장통을 겪고 있었고, 정우 배냇머리가 빠질때면 나도 같이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었다.

같은 하루가 어디 있겠는가.
어제와 오늘의 햇볕이, 기분이 또 바람이 다르듯 정우도 다르고 나도 또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인데.

응애응애

정우가 자다 뒤집기와 되집기를 반복하며 데굴데굴 구르는데 벽에 부딪혀 그만 더이상 갈 수 없게 되자 응애응애 울었다.
그런 정우가 난 너무 웃겨 안아 달래며 웃었다.
조금 미안했다. ㅋㅋㅋ

제일 이쁠 때

우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을 올려본다.
어젯밤 잠들기 전 우리는 지금 이때가 제일 이쁜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막 옹알이를 시작할 무렵, 눈이 똘망똘망 해져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싶어 하는지, 우릴 보며 살짝 웃어줄때, 그 때.
정우가 좀 더 커서 논리적으로 얘기하면 안이쁘다고 한다.

+

4년후 드는 생각,

6살에 논리적으로 얘기 하려고 노력하니 더 귀엽다.

신랑의 반찬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신랑의 출장이 잡혔다. 피할수는 없었다.
신랑은 할 수 있는 모든것을 해주고 다녀오겠다 다짐한듯 보였다.
혼자 있을때 가장 큰 난관은 밥을 먹는 일이었는데, 밑반찬을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도록 그릇에 담아두었다. 한겹 한겹 쌓인 치즈와 김이 들어간 달걀말이도 준비해 주었다. -정말정말 맛있었다-
그 어떤 허세 가득한 음식 사진보다 나는 이 사진 한 장이 그리 아름답다.

흰 머리가 늘어난 당신에게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우는 벌써 태어난지 5주가 되었고, 그새 키도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
최근엔 밤새 눈이 말똥말똥한 녀석 덕분에 새벽내 라디오와 함께하고 있다.
내 온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고 몸은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젖을 먹고 품에서 잠든 얼굴을 보면 정말 천사가 내려온 것이 아닐까하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날 보며 따라 웃기까지 했다.
여보가 그걸 봤어야했는데
일하랴, 집안일하랴, 아가보랴, 내 짜증 받아주랴, 이 모든것을 버텨내고 있는 여보에게 말할 수 없이 고맙다.
흰머리가 너무 많이 늘어버려 마음이 아프다.

다시 없을 크리스마스 선물

죽을 것 같던 10시간이 지난 후 결국 우리는 수술을 택했다. 긴 시간이 허망하게도 10분만에 아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저 작은것과 마취에 취해 있던 나를 보며 신랑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미약한 정신을 붙들고 있던 내게 아가를 보여주던 것이 생각난다.
장시간의 수면부족과 산통 후로 온몸의 기력과 수분이 빠진 나는 억억 소리만 낼 뿐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아가에게 젖은 물려야한다며 아픈 몸을 겨우 옆으로 뉘었다.
아가가 품에 왔다.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엄마가 되었고, 신랑은 아빠가 되었다.

다행히 회복이 빨라 다음날부터는 걸어다녔다.
신랑을 안으니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보니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

우리에게 다시 없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목소리만 귓가에 남았다.

며칠 전부터 태교삼아 아영이 알려준 ebs 낭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듣고있다. -상당히 좋으니 추천한다.- http://goo.gl/YNcskn 아침마다 눈뜨기 힘들때 반수면 상태로 듣고 있으니
오늘 아침엔 신랑이 책을 한 권 가져오더니 자기가 읽어주겠단다.
출장땜에 잠잘 시간도 부족할텐데 그 새벽에 짬을내어 읽어주었다.
신랑은 목소리가 좋았다.
목소리가 많이 좋았다.
품에 쏘옥 안겨 눈을 감고 들었더니 책 내용은 점점 희미해지고 목소리만 귓가에 남았다.
신랑은 다음에 읽을 책을 소파위에 꺼내두곤 서둘러 샤워하러 갔다. 밤이 길다.

출장

남편이 출장을 갔다.
오늘 아침 여덟시 반 비행기였다.
마침 장마라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어제 피곤한데 늦게 잔 탓인지 일찍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데,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 요리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남편도 피곤할텐데 일찍 깨서 내 아침을 준비해주고 있었다. 씻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오늘따라 보송보송하니 이뻤다. 잠에서 덜깬 탓일까?
오늘 아침은 칼칼한 콩나물 국이다. -먹는입덧 탓인지 아침에 국을 먹어야 속이 쓰리지 않아서- 별거 안넣은것 같은데 남편이 하는 요리는 다 맛있다. 엄청 맛있다.
일곱시가 넘어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어머님께 드릴 엽서와 브로치 -지난 벨롱장, 윤영님한테서 샀다- 그리고 노트북을 챙겨
남편과 함께 문을 나섰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기분으로 택시를 태워 보냈는데, 돌아와 집에 혼자 앉아 아침을 먹으며 jtbc 뉴스를 보고 있자니 쓸쓸함이 밀려왔다.
-메르스가 잠잠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서울은 여전히 불안하다-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테이블에서 화장을 하고 잠깐 사이에 동선이 모두 뒤틀렸다.
아 뽀뽀나 한번 더 하고 보낼껄..

141008

그는 입술이 예뻤다.
조금은 매서운 눈매와 안경이 그리고 살이 붙어 동글한 얼굴에 도톰한 입술이 예뻤다. 그는 왼손으로 폰을 자주 본다.
그래서 왼편으로 기운 몸 때문에 오른쪽 얼굴을 많이 보게 되는데 머리카락부터 귓볼 턱 입술 코 눈까지 찬찬히 한참을 바라 보았다. 그의 섹시함과 귀여움은 입술에서 나오는가 싶다.
어제밤엔 일때문에 새벽 네시가 다되어 잠을 잔듯하다. 일찍자는 나를 재워주려 그가 옆에 누웠다. 심장이 뛰었다.

입덧

입덧을 전혀 안한다. 임신 8주차인데.
유전이라길래 엄마한테 물어보니 본인도 잘 안하셨다고 한다. 3개월 부터 한다나 3개월까지 한다나 잘 모르겠다며 이젠 기억이 잘 안나신다고.
하지만 나도 두어번 정도 입덧을 한것도 같다.
어느 날 아침 공복에 한 번, 언제인지 집에서 짜파게티를 먹으려고 하는데 한젓가락을 먹고는 그냥 헛구역질을 해버린 그때 또 한 번.
다행인듯 특별히 먹고싶은것도 없어서 신랑과 나는 굉장히 무난한 임신 초기를 보내고 있다.
아마 삼시세끼 잘 챙겨 먹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찌개를 끓이면 꽤 맛이 있어서 자신감 상승중이라!
며칠전에는 갑자기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잎 부분엔 빛을 못 받아서 노란 얼룩이 있는-
한손에 들고 크~게 한입 베어먹고 싶었는데 요샌 사과철이 아니라고 맛이 없단다.
아마도 어릴때 부터 사과는 일년내내 먹고 자란 탓이리라.
아, 우리 아빠는 영천에서 크게 사과농사를 지으셨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작아져서 남의 밭도 일구시지만.
아무튼 지금 못 먹는다니 괜히 먹고싶어졌다.
여보가 이 글을 겨울에 봐야할텐데 ㅋㅋㅋ

오렌지쥬스

나는 임신이 확인되기 며칠전부터 오렌지주스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평소 오렌지주스는 입에도 안대던 나로써는 신기한 일이었다.

현석님이 보내주신 ‘퍼펙트 베이비’ 책을 보고있는데 오렌지 주스에 엽산이 많다고 한다.

때는 4월 30일쯤이었다.
검색과 지인의 추천하에 괜찮다는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 검진을 받았다. 심장 소리가 들렸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엄청나게 기쁘다기 보다는 신기함과 두려움이 함께 오는, 지금까지 느껴본적 없던 이상한 감정이었다. 아마 아빠도 비슷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때 그 표정을 생각해 보면.

간혹 라면 등이 땡기는데 입맛은 아빠를 닮은 듯 하다.

벚꽃

봄바람 휘날리던 날.
그대가 꽃을 주었다.
책상위에 시크하게 두고는
해마다 주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