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작업실 앞에서 주워다준
구슬같은 잣밤을 그리다
붓 끝이 다 닳도록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신랑이 작업실 앞에서 주워다준
구슬같은 잣밤을 그리다
붓 끝이 다 닳도록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영이가 걸어온다.
아영이네 가족이 멀리서 걸어온다.
두 팔을 벌리자 작고 밝은 아이가 스스럼없이 내게 뛰어왔다. 나는 번쩍 들어올려 빙그르르 날아주었다.
아이와는 반대로 내 마음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영이의 신랑이 내게 물었다.
“이렇게 전시하면 많이 뿌듯하시겠어요~”
걱정 가득한 마음에 가려 뿌듯함은 전혀 느끼지 못한터라 순간 스스로도 많이 놀랐다.
이튿날 부족함만 조용히 채워지는 하루가 간다.
어쩜 이리도 아직 나는.
먼길 와준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이어가야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시장을 지키는 동안, 신랑이 재택근무를 하며 정우를 돌봐주기로 했다. 일을 하다가도 정우의 학교 학원 픽업이 쉽지 않을텐데(가능한건가)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글로는 부족한 마음.
신랑이 수,목 출장을 가는 동안 정우가 하교후 두시간 정도 혼자 있기로 했는데, 이틀차가 되니 제법 씩씩하게 있는 것 같다. 혼자는 처음이라 엄마아빠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저녁에 오리새끼마냥 나를 졸졸 쫓아다니긴 하지만ㅋㅋ
(다 큰줄 알았는데 아직 애기다.)
그보다 정우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퇴근길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온전히 1시간동안 듣게 되어서 많이 행복하다.
전시 소식 알립니다.
오랜 기간 제주의 풍광에 홀린 듯 작업해 오던 저의 눈에
제주는 이제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네 번째로 진행하는 개인전 “알롱 달롱 탐라 산수”에서는
제주의 기원인 화산활동, 이로 인한 물의 흐름과 동식물을 관찰하여 디자인적 조형요소로 표현하고,
이상화된 자연을 산수<산/물/바위/나무>로 표현하였습니다.
알롱 달롱 탐라 산수 (김초희 천연색화 展)
국립제주박물관 고으니모르홀
2023. 9. 5 (화)~ 9. 24 (일) / 매주 월 휴관
주제별로 하고 싶은 전시가 아직 많다.
푸른것들과
아버지의 사과 등이 그것이다.
전시명은 오! 사과.
2022.12.6
어릴 적 엄마는 종종 거실에서 이젤을 펴 들고 그림을 그렸다. 몇 없는 기억 중 하나 남은 것은 유화 특유의 냄새와 이젤 너머로 보였던 엄마의 발치다. 최근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닐 무렵 잠시 쓰기도 했던 엄마의 오래된 나무 화구통을 물려받았다.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달라고 조른 것이 맞겠다. 엄마는 큰 미련 없이 주셨으나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엄마가 다시 붓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훨씬 크다.
2021.11
두어달 전 앞마당에 붓꽃을 심었다.
작업을 위해 쪽을 심을 요량으로 현관문 앞의 잡초가 무성한 작은 땅을 밭갈듯 갈았는데 -제주의 땅은 정말이지 돌 반 흙 반이라 일주일 내내 너무 힘들었다. 간혹 바위도 나온다.- 쪽만 심기 아쉬워 꽃 구근을 심었더랬다.
그러나 올 봄은 이상하게도 세찬 비바람이 강했다. 약한 잎들은 결국 꺽이고 말았고, 벼를 세우듯 나는 잎들을 모아 한데 묶어 주었는데 한번 꺽인 잎이 다시 세워질 리 만무했다. 때마침 꽃봉오리를 올린 세 꽃이 다시금 비바람에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나는 조심히 꺽어와 화병에 꽂아 주었다.
애초에 붓꽃은 호주 여행 당시 추억의 꽃이었다. -시드니 플라워마켓에서 정우가 까아만 캉골 지갑을 꺼내들고 “어서 골라봐!” 하던 나의 생일 선물 꽃이다.-
화병에 툭 꽂아 식탁에 두었을 뿐인데 나는 다시 호주로 돌아간 듯 하다.
올 3월부터 받아보기 시작한 제민일보에 숨은그림찾기도 스도쿠도 있을 것만 같던 오늘 아침.
다음 여행지에서도 추억이 될 만한 꽃을 사봐야겠다.
며칠 전 옆집 마마롱 사장님과의 대화 속에
삼키지 못한 디자인이라는 말이 자꾸만 머리위로 떠오른다.
정우에게 물었다.
“정우야 미대 갈 생각 없니?”
정우가 대답했다.
“싫은데~ 군대할껀데”
서양학과를 반대하던,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인 어른들의 조언으로 가게 된 시각디자인과에서 나는 3학년을 끝마칠 무렵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 디자인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
하지만 디자인을 배움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큰 얻음이 있었으니, 바로 아름다운 사물을 분별하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다양한 서체의 아름다움부터, 그리드에 의한 정렬과 색채, 클래식의 미, 미보다 앞선 실용성, 청바지에 검은 목폴라의 잡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외에도 실로 방대한 것들이 삶의 습관을 바꿀 정도로 내안에 깊숙이 자리해 있다.
여직 존경하는 교수님께 얻은 이러한 가르침을 이대로 놓는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용기낸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회사가 바로 ‘다음’이었다.
다음은 10년 전 홀로 제주에 내려온 까닭이었고,
많이 힘들었고,
그 안에서 신랑을 만나 참 많이도 행복했던 회사다.
그런 애증의 GMC가 이제 매각이 되어 추억이 사라진다니 꽤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