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iece of writing

  • 도원

    과일 작업의 타이틀이 나왔다. 도원(桃源) 2024. 10. 12 이중섭 미술관 가는 길에


  • 하얀 나비

    선선한 날 문을 열어두고 작업을 하다가 보면 종종 하얀 나비가 날아든다. 늘 하얀 나비다.


  • 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나 며칠을 보낸 뒤 나는 겨우 연필 한 자루 들고선 아름답고 한심한 꽃그림을 그린다. 인류에 위협이 될 정도로 급성장한 AI의 발전을 혹자는 사진기의 발명에 빗대기도, 또 다른 이는 뒤샹의 ‘샘’과 같은 작품이 주었던 충격에서 해답을 얻기도 하였다. 발전을 거듭해온 과학자들과는 다르게 예술가는 대게 비관적이더라는 데에서…


  • 작업이 한 데로 모이는 것 같지 않아서 걱정이다. ‘푸른 누드와 쪽 작업 / 풍경과 패턴 / 과일 작업과 스케치’ 모두 좋아하는 작업인데, 문제는 각기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모양새를 한 데로 모을 수는 없을까, 아니면 모두 나의 작업이라 할 수 있는가.


  • 발치

    푸른 아이의 발치를 그리다 살갗처럼 붉어지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이나 발목 같은 것들을 다듬어 그리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아쉽게도 나의 작업은 봄날의 가벼운 기쁨보다는 찬 겨울에 겨우 내비친 햇살 같은 것이라 생각되지만요.


  • 그 길

    옆으로 땅으로 눈이 내리던 날, 맑은 침이 꼴깍 나오도록 뛰던 그 길을 다시 찾았다. 지붕이 하얗던 집은 덩굴이 머리까지 자라 이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금세 알 수 있었다. 중앙에 뿌리내린 나무 덕분이었다. 뛰던 어제의 말들이 오늘은 하얀 눈 사이사이 초록의 풀을 뜯었다. 좋아하는 바다색이 너머에 있었다. 2023. 12. 17-18


  • 갈피

    입맛이 없은지 서너 달 되었을까. 애써 비빈 밥을 욱여넣다 결국 체했다. 견딜만한 편두통과 미열을 앓다가 더러 울음이 왈칵 쏟아지던 날도 있었다. 갈피를 못 잡던 그림 때문이었는지 그림 같던 내 인생 때문이었는지 내내 듣던 쓸쓸한 음악 때문이라며 나는 고작 하는 일이 조금 덜 쓸쓸한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 그가 작업실 앞에서 주워다 준 구슬 같은 잣밤을 그리다 붓 끝이 다 닳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다 생각했다.


  • 베롱나무 꽃피는 9월, 국립제주박물관 고으니모르홀에서 전시를 했다. 고으니모르란 고운 동산이란 뜻으로 말 그대로 둥근 공간의 통창 너머로 박물관의 야외정원이 시원히 펼쳐지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공간이다. 전시 나흘때 되던 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날 전시를 관람하러 오신 제주의 어머님께 고으니 모르 동산이 실제 오현고 앞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첫 날엔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상태에서…


  • 어릴 적 엄마는 종종 거실에서 이젤을 펴두고 그림을 그렸다. 몇 없는 기억 중 하나 남은 것은 유화 특유의 냄새와 이젤 너머로 보였던 엄마의 발치다. 최근 나는 엄마의 오래된 나무 화구통을 물려받았다.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닐 무렵 잠시 쓰기도 했던 것으로 밝고 노란끼가 도는 원목 화구통이다. 실은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달라고 조른 것이 맞겠다. 엄마는 큰 미련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