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방향성

작업실 한쪽 벽에 빼곡히 붙인 작품들을 정리하고 나니 , 무엇이 작품이고, 무엇이 졸작인지 알게 되었다.

근래에 작업의 방향성이 크게 바뀌면서 다행인 것은 결국 이것이 내가 하고 싶던 작업이라는 것이다.

내 뿌리와도 같은 스케치와

20대 초반 배워왔던 빼기의(간결한) 디자인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 그리고

내재된 본능

이 모든것이 현재 내 작업물의 결과이다.

어젯밤

어두운 밤 아파서 낑낑대는 내게 정우가 조심스레 와서는 보드라운 두 볼을 요리조리 부비고 뽀뽀를 하고 간다.

나는 행여나 바이러스가 옮을새라 아이의 입술이 나의 입에 닿지 않도록 볼을 옮겨준다.

서로의 속눈썹이, 볼이, 보드라운 솜털이 서로 닿을때 행복하다.

장난감을 정리해야 하니 조금 소리가 나도 이해해달라며 속삭이듯 말하고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정리할때도 많이 행복했다.

책상과 화장대

나의 인생 첫 화장대는 신랑이 원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며칠 전 초등학생 1학년의 반을 보내고 있는 정우에게 책상을 마련해주기위해 서귀포에 위치한 가구점에 들렀다. 훨씬 어릴때에는 아이 책상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방을 잘 꾸며주고자하는 마음이 컸던 듯 하다.

아이가 7살 가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학교 근처의 마당이 아름다운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2층에는 방이 2개라 아늑하고 남향은 아니지만 볕이 잘 들어 따뜻한 집이었다. 어릴때부터 일찍이 독립한 탓에 이사와 전셋집에 지친 신랑은 이제는 정착하지 않겠나 싶었고 고심끝에 정우의 방과 어울리는 책상을 주문제작 하려 했었다. 방은 직사각형의 한변이 긴 형태라 기성 제품을 놓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주문제작이 흐지부지 되면서 결국 입학후에도 책상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우가 제법 앉아서 연필을 잡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책상을 마련해주는 일이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 싶었고 우리는 가구점으로 향한 것이다.

그곳은 따뜻한 느낌의 묵직한 원목으로 세련된 라인을 여럿 갖고 있는 프랜차이즈 가구점이다. 적당한 사이즈의 책상이 마침 하나 있었고 정우 또한 좋아했다. 그리고 계산을 하려는 찰나 신랑이 화장대를 사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안방의 한쪽 벽면에 쏘옥 들어갈 것 같은 앙증맞은 크기의 차분한 원목 화장대였다. 평소 화장을 잘 하지 않는 편이고, 화장대에 대한 로망같은건 없었는데 신랑은 “전부터 계속 사고싶었다.”고 말했다. 마음이 이상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책상과 화장대는 바로 배송이 왔다.

정우는 그날 책상 위에 오래 전 채집한 뿔이 멋진 (죽은)수컷 사슴벌레 를 가장 먼저 두었다.

나는 화장대의 작은 서랍에 신랑의 오랜 안경들과 젊은시절 착용했을 것 같은 은색의 묵직한 금속 시계 두 개를 곱게 놓아 두었다.

기분이 많이 좋았다.

나는 자연인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보 그리고 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숲이 가까운 어느 작은 컨테이너에 앉아 작업하다 누웠다 잠들었다 가만히 새소리를 들었다가 벌이도 없이 변변찮은 생을 보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 덕에 이나마 사나 싶다. 고마워!

미운놈 떡하나 더주기

어제부터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길래, 병원으로 가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

몸이 여전히 많이 아프고, 아이는 내게 미운말을 하지만, 휘말리지 않고 건강한 저녁을 차려주며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말해준다.

그러면 금새 미운 얼굴은 사라지고 예쁘게 말해주니까.

한편, 며칠전 정우를 혼내며 생선살을 발라주던 신랑이 많이 귀엽다. 결국 여느날처럼 정우로 시작해 여보와 나의 싸움으로 번지는 밤이었으나, 나는 나의 신랑 또한 정우처럼 언제까지고 사랑한다.

독서별

얼마 전 문선님과 가볍게 연락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가족 식사 자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즐겁고 다양한 이야기가 퐁퐁 솟던 밤, 그 중 하나의 이야기가 ‘독서모임’이었다.

그리하여 어제 드디어 첫 모임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지었다는 이 모임의 이름은 ‘독서별’

엊저녁 숙제는 못했고 ABCD도 전혀 모르지만,

친구들과 모여 규칙도 정하고, 인상깊었던 책 내용도 이야기해보고, 놀이터에서는 땀으로 온 몸이 적셔지듯 놀았던 이번 모임이 아이가 자라는데에 훨씬 비옥한 토양이 되리란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

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모처럼 밝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참 행운이고.

간결한 그림체
아기새와 어미새

축구 응원

지난주 금요일 저녁,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7년전 사두었던 형광빛이 강한 주황색 티셔츠를 챙겨입고, 정우가 만든 응원용 태극기도 챙겨 경기장으로 향했다. 당연히 치킨과 햄버거도 빠질 수 없지.

경기장 중앙의 좌석 보다는 골대 뒷편의 자리를 선호한다. 테이블이 있어 경기를 관람하며 먹기가 편하기 때문이고, 반대편도 생각보다 잘 보인다.

그날은 응원석 가까이에 앉게 되었는데, 우리 바로 왼쪽으로 중,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예닐곱 혹은 더 많이 모여 있었다.

학생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매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며 응원단과 교류하고 있었다. 스타일은 왜 또 다들 그리 좋은가. 그들의 기에 여름밤의 더위가 주춤할 정도였다.

신랑은 자신의 젊은 시절도 생각이 났는지, 내내 대견하고 신난 얼굴로 함께 응원했다.

정우에게, 그때 그 형아들처럼 열정넘치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래본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

토요일이면 우리 가족은 탐라도서관으로 간다.

처음엔 내 책을 빌리러 잠시 갔는데, 간김에 정우 책도 빌릴겸 어린이 도서관으로 갔다. 그런데 만화책 코너에서 정우의 학교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매주 토요일 점심즈음 우리는 도서관을 가게 되었다.

3주 전, 나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정민이 덕에 알게 된 인아책방 대표님이 추천한 책이다. 나는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라 대출기한 내에 모두 읽지 못한채 반납을 하고 말았다.

오늘 그 책을 다시 대출했다.

도서관 옆에 위치한 넓은 공원은 7월인데도 제법 시원했다. 봄이면 커다란 벚꽃이 만개하고, 소나무 숲이 가득한 아름다운 곳이다. 책을 살펴보는 사이, 정우는 이미 친구와 소나무 숲 아래로 간지 오래다. 운좋게 새똥을 피한 의자에 누워 책을 펼쳐본다. 눈이 부셔 책으로 해를 가리고 나니 불어오는 바람에 솔향이 좋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

관계와 감정

초등학생 1학년이 된 아들은 얼마전 ‘배신’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유치원을 같이 다니던 몇 친구들과 같은 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현재는 더이상 함께 놀지 않는다는 것.

반면 계속해서 함께 지내는 친구도 있어 보이고, 본인을 좋아해주는 여자 친구도 있어보인다. -본인피셜이라 확실치 않음-

긴 학창시절의 첫 해에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