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a piece of writing

  • 나의 우주론

    나는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잘 알지 못한다. 경북 영천에서 자란데다 당시 초등학생 저학년이었으니 당시 뉴스가 기억이 날리 없고, 나의 부모님도 작은 눈물과 짧은 탄식만이 존재했으리라,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어떤 거대한 우주론을 믿고 있다. 세월호에 이어 이번 이태원 참사까지, 이 모든 일은 신이나 부처의 뜻도 아니요 이 거대한 우주 안에 작은 행성의 자정작용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그는 가끔 예전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마치 할아버지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해주시듯, 그런 일들쯤은 별일 아니라는 듯 툭툭. 나는 그럴 때면 가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시공간을 이동해서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을 한참이고 보고 싶다.


  • 작업실 한쪽 벽에 빼곡히 붙인 작품들을 정리하고 나니 무엇이 작품이고 아닌지 알게 되었다. 근래에 작업의 방향성이 변화하면서 불안 중 다행인 것은 결국 이것이 내가 하고 싶던 작업이라는 것이다. 내 뿌리와도 같은 스케치와, 20대 초반 배워왔던 빼기의 디자인, 그리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과 본능. 이것이 결국 내가 가야 할 길 아닐까.


  • 어두운 밤 아파서 낑낑대는 내게 정우가 조심스레 와서는 보드라운 두 볼을 요리조리 비비고 뽀뽀를 하고 간다. 나는 행여나 감기 바이러스가 옮을세라 아이의 입술이 나의 입에 닿지 않도록 볼을 옮겨준다. 서로의 속눈썹이, 볼이, 보드라운 솜털이 닿을 때 행복하다. 장난감을 정리해야 하니 조금 소리가 나도 이해해 달라며 속삭이듯 말하고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정리할 때도 참 행복했다.


  • 며칠 전 초등학생 1학년의 반을 보내고 있는 정우에게 책상을 마련해 주기 위해 서귀포에 위치한 가구점에 들렀다. 훨씬 어릴 때에는 아이 책상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방을 잘 꾸며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듯하다. 아이가 7살 가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학교 근처의 마당이 아름다운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2층에는 방이 2개라 아늑하고 남향은 아니지만 볕이 잘…


  • 변변찮은

    그와 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숲이 가까운 어느 작은 컨테이너에 앉아 작업하다 누웠다 잠들었다 가만히 새소리를 듣기를 반복하며 벌이도 없이 변변찮은 생을 보냈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 지난 금요일 저녁,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7년 전 사두었던 형광빛이 강한 주황색 티셔츠를 챙겨 입고, 정우가 만든 응원용 태극기도 챙겨 경기장으로 향했다. 당연히 치킨과 햄버거도 빠질 수 없지. 경기장 중앙의 좌석보다는 골대 뒤편의 자리를 선호한다. 테이블이 있어 경기를 관람하며 먹기가 편하기 때문이고, 반대편도 생각보다 잘 보인다. 그날은 응원석 가까이에 앉게…


  • 작품이 마음에 들어 팔로우하던 한 작가를 더 이상 팔로우하지 않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은 차분한 듯 차가우며 어두운 듯 부드러웠으나, 아래 달린 글에 이내 마음이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작품 설명은 고사하고 마음을 쉬이 드러내 보이니 그 사람의 예술적 깊이와 안목은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생각과 태도 또한 작품이 아니던가.


  • 푸른 밤, 하얀 형광등은 꺼지고 지구본에 옅은 노오란 불이 켜지고 나면, 요즘 이야기하자 말하는 정우다. 오늘 자신은 축구를 했는데, 그동안 엄마는 무얼 했는지 또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 엄마아빠는 언제고 너를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정우가 조금 덜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 하고 나는 물었다. “그럼 저- 안에 있던 사랑하는 마음을…


  • 이른 밤 소주잔과 맥주캔을 함께 기울이는 것,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자꾸만 얘기해 주는 것, 나에게만 보여주는 춤사위와 차 안에서 들려주는 선곡들. 지쳐 소파에 누워 있을 때 얼굴 근처에서 나는 냄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