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a piece of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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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롱나무 꽃피는 9월, 국립제주박물관 고으니모르홀에서 전시를 했다. 고으니모르란 고운 동산이란 뜻으로 말 그대로 둥근 공간의 통창 너머로 박물관의 야외정원이 시원히 펼쳐지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공간이다. 전시 나흘때 되던 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날 전시를 관람하러 오신 제주의 어머님께 고으니 모르 동산이 실제 오현고 앞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첫 날엔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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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는 종종 거실에서 이젤을 펴두고 그림을 그렸다. 몇 없는 기억 중 하나 남은 것은 유화 특유의 냄새와 이젤 너머로 보였던 엄마의 발치다. 최근 나는 엄마의 오래된 나무 화구통을 물려받았다.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닐 무렵 잠시 쓰기도 했던 것으로 밝고 노란끼가 도는 원목 화구통이다. 실은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달라고 조른 것이 맞겠다. 엄마는 큰 미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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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학과를 반대하던, 먹고사는 일이 걱정인 어른들의 조언으로 가게 된 시각디자인과에서 나는 3학년을 끝마칠 무렵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 디자인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 하지만 디자인을 배움으로써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큰 얻음이 있었으니, 바로 아름다운 사물을 분별하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다양한 서체의 아름다움부터, 그리드에 의한 정렬과 색채, 클래식의 미, 미보다 앞선 실용성, 청바지에 검은 목폴라의 잡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외에도 실로 방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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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의 재료로 염색을 하는 대신 천연색의 우리 물감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천연염색화’라는 이름 대신, ‘천연색화’라 불러 보기로 했다. 붉은 봉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 쓰고 나면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장인을 찾아가 우리의 물감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하나 고민이다. 20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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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홈페이지를 만들던 스무살 남짓하던 젊은 청년은 이제 제법 번듯한 자신의 방이 생겼다. 업계일을 한지 21년째 되던 해다. 생각해보면 그는 편의점 알바를 하나 하더라도 허투루 하지 않던 청년이었다. 전에는 신랑이 ‘운이 좋게도’ 처음 시작한 일이 본인과 잘 맞아서 무척이나 잘 해내었다고, 때마침 시대의 흐름도 그의 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을 하면 끝까지 해내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