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le spleen de Jeju

  • “귤 주세요.” 일년 전 아들의 작은 입에서 뱉어진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냐는 식으로 눈을 반짝이며, 몇번이고 “귤 주세요”를 외치던 아들은 이제 못하는 말이 없다. 습자지처럼 나의 말과 행동을 흡수하는 아들을 보며 내내 반성한다. -‘슬기로운 깜빵생활’에 나왔던 ‘정경호’처럼 예쁘게 말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속상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귤철은 돌아왔고…


  •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는 나의 결혼 후 만 4년만에 제주에 오셨다. 고모네와 함께. 큰고모부는 일흔이 훌쩍 넘으셨고 기억속에 날카로웠던 둘째 고모부는 너무 웃긴 분이셨다. 머리숱을 뽐내며 굵은 파마를 한 곱디고운 큰고모와 작은고모가 계셨고, 막내고모는 말하길 할머니 소리는 정우에게 처음 들어보셨다고 ㅋㅋ 그도 그런것이 큰고모와 10살넘게 차이가 나니 아빠가 업어키웠다 하셨다. 아, 아빠 가족은 6남매이다. 나도 매번…


  • 작업을 위해 사진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몇년 전 사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지만 앙상한 나무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알고보니 신랑이 제주에 내려 온 그해 겨울에 찍은 사진이었다. 뒤로는 한라산이 보이고 회사 앞에서 찍었다는 것으로 보아 나무는 벚나무로 추측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한라산 앞으로 큰 건물을 짓고있어 더이상 그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림을 완성하고 꽤 지난…


  • 누군가를 만나고 또 결혼을 해서 함께 살아갈 때, 이상적인 형을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길인가 싶다. 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음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 尊 (높을 존), 重 (귀중할 중) 바로 이런…


  • 어느 여름날

    주방 수도꼭지 위로 그대의 손이 나의 것을 감싸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처음 만날때처럼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아들은 네살이나 먹었고, 결혼한지 4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 나는 유년시절 그림으로는 먹고살지 못한다는 말을 종종 듣고 살았다. 엄마는 그랬다. 배운적 없는 그림솜씨가 어마어마 했지만 그걸로는 먹고 살 수 없었다. 엄마에게 그림은 아쉬움을 달래듯 그저 취미로 남았다. 그러니 우리 가족에게 그림은 사치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내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것은 부모님께 적지않은 부담이었다. 물감 살 돈이라도 아끼고자 3년 내내 연필…


  • 내일은 없다

    아들은 내일은 없는 것처럼 논다. 본받아야 된다.


  • 아이스크림

    으앙 애기처럼 우는데 너무 귀여워서 그만 크게 웃어버렸다.


  • 할머니 상

    얼마전에 할머니 상으로 영천에 다녀왔다. 그러니까 정우한테는 증조 할머니인 셈이다. 외 증조할머니. 내 기억속 할머니는 담배를 태우시며 아궁이를 살피는 건강한 분이셨다. 그런데 결혼전인가 언젠가부터 누워계시더니 병원을 왔다갔다 하며 어빠가 간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이었다. 여느날과 다를 것 없이 우리는 인디고에 있는데 신랑이 나의 언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다음주면 영천에 한번 들를 참이었다. 어버이날에 뵙지 못해 적당한…


  • 어느 날 저녁

    어느 날 저녁, 밥을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가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니가 꼬셨지만 내가 널 더 좋아하지.” 나는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가 대답했다. “넌 모르지만 난 알지 “ 나는 내내 그 말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