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le spleen de Jeju

  • 올해 마흔이 된 신랑에게 저 오랜 나무처럼 항상 우뚝 서 있길 생각보다 일찍 만난 수선화처럼 늘 설레이길


  • 귤 주세요

    한 달 전부터 예약해 둔 재주소년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정우를 재우고 함께 동행하기로 한 바라언니의 작업실에 들렀다.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벌써 공연시간이 코앞이었다. 공연은 네시인데 가려면 삼십 분은 걸릴터였다. 언니는 공방문을 닫을 수 없어 나를 데려다 주기로만 했다. -정신이 없었던 터라 공연이 오늘 인지도 몰랐던 언니- 쌩 달려 도착한 공연장에선 이미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프닝을 놓친 건 아쉽지만 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우선이었다. 공연은 결혼 전 보았던…


  •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 오던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뒤로하게 되었다. 이는 그간 진행했던 작업물 중 일부 작품에서 천연염색 부분의 색이 옅어지는 사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문을 올렸고, 다행히 연락이 닿는 분들에 한해서는 작품이 모두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 어떤 분은 조금 물이 빠지기는 했으나 이삼 년 지났으니 천연염색의 특성상 시간에 따른 것이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며 “앞으로도…


  • 오래전부터/ 내가 소를 잊고 살듯/ 별쯤 잊고 살아도/ 밤마다 별은/ 머나먼 마음의 어둠 지고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상국의 ‘별에게로 가는 길’ 중


  • 나의 팔이 아이의 작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눈을 감고 얼굴을 맞대면 나의 광대가 아이의 눈두덩이에 폭 잠긴다. 나는 그 느낌이 좋다. 보들보들한 살결에 작은 속눈썹이 간질간질 나를 간지럽힌다.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속눈썹이 처음 길어 나올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속눈썹으로 아이의 찹쌀떡 같은 볼을 간지럽혀본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면 그의 냄새가 솔솔 난다.…


  • 감물염색

    얼마 전 감물로 염색한 천이 이제야 색이 나왔다.감물은 살균효과가 뛰어나 천에 염색하면 벌레들이 비켜간다고 한다.나는 고이 보관하던 정우의 배냇저고리와 돌한복을 꺼내 기다란 감물염색천으로 감쌌다.정우가 클 때까지 벌레들이 비켜가길 바라면서.


  • Oui

    Oui. 정우가 내 기분을 풀어줄 때 하는 말이다. 긍정의 대답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 oui [우이]와 억양또한 흡사하다. 내가 짜증이 났거나 화가 난 듯 보이면 내곁에 다가와 우이 우이 하는데 너무 귀엽다!


  • 정우는 이제 17개월에 접어들었다.그간 아빠의 출근과 출장에는 익숙해진 터, 익숙하긴 해도 아빠와 떨어지기 싫은 정우다. 꼬박 24시간이 넘는 나와의 이별은 이번이 첫 시도. 육지 여행 계획은 아래와 같다.1. 아영의 세종 신혼 집들이.2. 언니의 이직으로 인한 이사, 청주 공항에서 15분 거리다.때마침 두 사람의 집은 꽤 가까운 거리였고, 이동 역시 민지가 운전을 해주기로 했다. 집에서 나오는 길, …


  • 수건

    샤워가 거의 끝나갈 무렵,아직 키가 작던 정우가 의자에 걸려있던 수건을 아래로 당겨 꺼내려다 의자가 넘어졌다.정우는 깜짝 놀라 울었다.옆에 있던 아빠가 “우리 정우~ 엄마한테 수건 주려고 했어?” 라고 말한다.이제껏 성악설을 믿던 나였다.


  •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정우가 좋아하는 동요다. 내게는 노랑나비가 나오는 그림책이 있다.얼룩무늬 젖소 옆에 노랑나비가 나오는, 디자인이 참으로 간결하고 내용 또한 아름다운 책이다. 늘 그 책을 읽을 때면 나는 나비를 가리키며 “나비야~ 나비야~” 노래했다. 오늘 내게 안겨 찡찡대는 정우에게 그 동요를 불러 주었는데,아이는 곧 내 품을 벗어나더니 그 그림책을 가져와서는 나비가 있는 페이지를 펼쳐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