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le spleen de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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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고 또 결혼을 해서 함께 살아갈 때, 이상적인 형을 그리고 생각의 모양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길인가 싶다. 하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음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尊 (높을 존), 重 (귀중할 중) 바로 이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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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년시절 그림으로는 먹고살지 못한다는 말을 종종 듣고 살았다. 엄마는 그랬다. 배운 적 없던 그림솜씨가 상당했지만 그걸로는 먹고살 수 없었다. 엄마에게 그림은 아쉬움을 달래듯 그저 취미로 남았다. 그러니 우리 가족에게 그림은 사치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내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것은 부모님께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물감 살 돈이라도 아끼려 3년 내내 연필 소묘만 했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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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할머니 상으로 영천에 다녀왔다. 그러니까 정우한테는 증조할머니인 셈이다. 외 증조할머니. 내 기억 속 할머니는 담배를 태우시며 아궁이를 살피는 건강한 분이셨다. 그런데 결혼 전인가 언젠가부터 누워계시더니 병원을 오가며 아빠가 간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우리는 인디고에 있는데 신랑이 나의 언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다음 주면 영천에 한번 들를 참이었다. 어버이날에 뵙지 못해 적당한 때에 비행기표를 끊어두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일주일을 못 기다리시고 눈을 감았다. 신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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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밥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가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네가 꼬셨지만 내가 널 더 좋아하지.” 나는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가 대답했다. “넌 모르지만 난 알지 “ 나는 내내 그 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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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같은 날엔 무조건 금능이었다. 전날부터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수영복, 여벌옷, 간식 등을 준비해 두었다. 한편, 정우는 새 학기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을 싫어한다. 어제는 입구에서부터 들어가기 싫다고 울며불며 떼쓰다 결국 나와 함께 금능으로 향했던 것이다. 바다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어젠 날이 좋아 바다에서 나와 신나게 놀았지만, 오늘은 꼼짝없이 12시까지 어린이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잘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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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부터 예약해 둔 재주소년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정우를 재우고 함께 동행하기로 한 바라언니의 작업실에 들렀다.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벌써 공연시간이 코앞이었다. 공연은 네시인데 가려면 삼십 분은 걸릴터였다. 언니는 공방문을 닫을 수 없어 나를 데려다 주기로만 했다. -정신이 없었던 터라 공연이 오늘 인지도 몰랐던 언니- 쌩 달려 도착한 공연장에선 이미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프닝을 놓친 건 아쉽지만 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우선이었다. 공연은 결혼 전 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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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진행해 오던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뒤로하게 되었다. 이는 그간 진행했던 작업물 중 일부 작품에서 천연염색 부분의 색이 옅어지는 사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문을 올렸고, 다행히 연락이 닿는 분들에 한해서는 작품이 모두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 어떤 분은 조금 물이 빠지기는 했으나 이삼 년 지났으니 천연염색의 특성상 시간에 따른 것이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며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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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내가 소를 잊고 살듯/ 별쯤 잊고 살아도/ 밤마다 별은/ 머나먼 마음의 어둠 지고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상국의 ‘별에게로 가는 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