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le spleen de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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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의 재료로 염색을 하는 대신 천연색의 우리 물감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천연염색화’라는 이름 대신, ‘천연색화’라 불러 보기로 했다. 붉은 봉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 쓰고 나면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장인을 찾아가 우리의 물감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하나 고민이다. 20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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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홈페이지를 만들던 스무살 남짓하던 젊은 청년은 이제 제법 번듯한 자신의 방이 생겼다. 업계일을 한지 21년째 되던 해다. 생각해보면 그는 편의점 알바를 하나 하더라도 허투루 하지 않던 청년이었다. 전에는 신랑이 ‘운이 좋게도’ 처음 시작한 일이 본인과 잘 맞아서 무척이나 잘 해내었다고, 때마침 시대의 흐름도 그의 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을 하면 끝까지 해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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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잘 알지 못한다. 경북 영천에서 자란데다 당시 초등학생 저학년이었으니 당시 뉴스가 기억이 날리 없고, 나의 부모님도 작은 눈물과 짧은 탄식만이 존재했으리라,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어떤 거대한 우주론을 믿고 있다. 세월호에 이어 이번 이태원 참사까지, 이 모든 일은 신이나 부처의 뜻도 아니요 이 거대한 우주 안에 작은 행성의 자정작용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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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그는 가끔 예전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마치 할아버지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해주시듯, 그런 일들쯤은 별일 아니라는 듯 툭툭. 나는 그럴 때면 가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시공간을 이동해서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을 한참이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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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한쪽 벽에 빼곡히 붙인 작품들을 정리하고 나니 무엇이 작품이고 아닌지 알게 되었다. 근래에 작업의 방향성이 변화하면서 불안 중 다행인 것은 결국 이것이 내가 하고 싶던 작업이라는 것이다. 내 뿌리와도 같은 스케치와, 20대 초반 배워왔던 빼기의 디자인, 그리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색과 본능. 이것이 결국 내가 가야 할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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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아파서 낑낑대는 내게 정우가 조심스레 와서는 보드라운 두 볼을 요리조리 비비고 뽀뽀를 하고 간다. 나는 행여나 감기 바이러스가 옮을세라 아이의 입술이 나의 입에 닿지 않도록 볼을 옮겨준다. 서로의 속눈썹이, 볼이, 보드라운 솜털이 닿을 때 행복하다. 장난감을 정리해야 하니 조금 소리가 나도 이해해 달라며 속삭이듯 말하고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정리할 때도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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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초등학생 1학년의 반을 보내고 있는 정우에게 책상을 마련해 주기 위해 서귀포에 위치한 가구점에 들렀다. 훨씬 어릴 때에는 아이 책상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방을 잘 꾸며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듯하다. 아이가 7살 가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학교 근처의 마당이 아름다운 2층의 붉은 벽돌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2층에는 방이 2개라 아늑하고 남향은 아니지만 볕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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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숲이 가까운 어느 작은 컨테이너에 앉아 작업하다 누웠다 잠들었다 가만히 새소리를 듣기를 반복하며 벌이도 없이 변변찮은 생을 보냈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