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le spleen de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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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얻은 명도가 살짝 낮은 검은 색종이로 종이 접기를 하다가 조금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맞은편에 않아 있던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고, 아이는 “하-.”짧은 탄식을 한번 내뱉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곧장 다시 종이접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토록 침착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다니! 그리곤 다시 최근 마스터한 휘파람을 휘-휘- 불며 그는 가면을 완성하였다. 엄마가 본받아야겠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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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고장 영천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런가 세상의 색이 점차 사라지고 검게 물들면 나는 매일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러면 나의 머리 위에도 별이 조심히 떠올랐다. 일찍이 고향을 떠나와서는 노을 지는 바다, 별이 내려앉는 서쪽에 터를 잡고 열두 해를 꼬박 살았다. 경계가 무너진 하늘과 바다, 그 사이를 흐르는 안개를 사랑했던가. 옮겨 심은 나무처럼 곧잘 앓다가도 나와 닮은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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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집 앞 담너머 자리한 귤나무 한 그루에 덩굴이 가득하더니, 그 위로 나비가 날아든다. 날개에 제주의 푸른 바다빛을 담은 나비다. 늘 이맘때쯤 날아드는 것을 보니 녀석들은 여름을 닮은 것이 분명하다. 한 마리가 날아들어 오늘도 어김없이 나의 시선을 한참이나 빼앗는다. 어느샌가 서너 마리가 아니 네다섯 마리인가, 이리저리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오늘 아침 곽지바다 위로 쏟아진 아침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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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나는 국립제주박물관에서 <기억의 서랍-다시 이어지는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치매가족 대상의 수업을 진행했다. 제주의 문화유산을 소개해 드리고 서로의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는 내용이었다. 한 달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간 우리에게 작은 일렁임이 있었던지 마지막 수업시간에는 나와 그들의 고운 눈에 눈물마저 고였다. 특별했던 그 경험을 글로 남겨보라는 신랑의 말에 시작을 좀처럼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를 열흘. 후텁지근한 여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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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이 되던 해 날카롭고 따뜻하기를 어지러이 반복하던 날에 오후의 햇살이 푸른 하늘 저편과 나의 상념을 옅어지게 만들던 어느 날에 나는 문득 생각했다. 자화상을 남겨두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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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지 않을 작품의 영감만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 그것을 결국 그리는 일은 하지 못할 말을 머릿속에 써 내려가거나 밝은 회빛 하늘에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던 이월 이십삼일 창밖의 동박새에 자꾸만 눈이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