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는 종종 거실에서 이젤을 펴두고 그림을 그렸다. 몇 없는 기억 중 하나 남은 것은 유화 특유의 냄새와 이젤 너머로 보였던 엄마의 발치다. 최근 나는 엄마의 오래된 나무 화구통을 물려받았다. 여고시절 내가 미술학원에 다닐 무렵 잠시 쓰기도 했던 것으로 밝고 노란끼가 도는 원목 화구통이다. 실은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달라고 조른 것이 맞겠다. 엄마는 큰 미련 없이 주셨으나 나의 오랜 마음 한구석 어딘가 엄마가 다시 붓을 들었으면 했다.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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