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녀

하얗게 샌 가늘고 긴 생머리의 증조할머니. 치렁치렁한 내 머리에 비녀 대신 붓을 꽂고 있으니, 매끈하게 묶어 작은 은비녀로 고정한 증조할머니의 뒷모습이 스쳤다. 영천가면 챙겨와야지.

수목원과 도넛

라디오에선 평일 아침 9시면 ‘김미숙의 가정음악’이 흐른다. 오늘은 부지런히 준비해준 정우덕에 오프닝을 듣게 되었다.

수목원과 도넛.

출판을 하던분은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에 결국 수목원을 만들었고, 목수는 꿈을 접고 도넛가게를 하려다 마음을 다잡고 나무로 도넛을 깍았다는 이야기.

울컥했다.

틀니

제주에 온 이후로는 가족들과 통화나 톡으로 안부를 전한다. 얼마전 아빠는 틀니를 하려고 치과를 다닌다고 했다. 어금니를 모두 뺐다고. 수화기 너머로 상추가 먹고싶어 조금 뜯어 먹어봤는데 맛을 하나도 모르겠다 말씀하셨다. 젊은시절 맛동산을 제일 좋아할만큼 이 하나는 튼튼하셨는데 어쩌다 잇몸까지 약해지셨는지. 속상한 마음 감출길 없다.

촬영

수오언니에게 공모전에 출품할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는 언니에게 촬영을 부탁하다니 염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언니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고 덕분에 언니의 작업실에 가보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실제의 향과 실제의 촉감이었다. 탐나던 책갈피도 얻었고! 헤헤

거실에서 재택근무를 하고계시던 형부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조잘조잘 옆방에서 촬영을 하는 우리때문에 일이 손에잡히지 않으셨으리라. 그래도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조언해주시고 도움을 너무나 많이 받았다. -어쩐지~ 공모전 출품 경력도 많으시다고!!!!-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없게 고마운,
한시간 한시간 꿈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작품판매

2년 가량 안고있던 작품이 다른 분에게로 가게 되었다.

‘지난 겨울의 삼나무길’ 이라는 작품으로, 제주의 비자림로가 훼손 될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이익이 연결된 사안이라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렵지만, 작품이 그려진 후부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던 작품이었다.

연락을 주신 분은 남원에 살고 계시고, -처음엔 서귀포 남원인줄 알았다-그림을 본지는 오래 되셨는데 이제사 용기내 구입을 원하신다고 하셨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일상의 이야기들 또한 공감되셨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페북이나 여기 홈페이지에 주로 올리는데 어디서 보신건지, 괜스레 부끄럽기도 하고 또 감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일들에 공감해주시고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해주시니 작가에게 이만한 행복이 어디있으랴.

그 누구에게도 작품값은 -크건 적건- 쉬운 금액은 아닐터, 나는 간만의 작품판매에 뛸듯 기쁜 마음도 잠시, 이해하지 못할 이런저런 감정들이 지나갔다.

판매된 작품값으로 그간 사고싶었던 천연염색 염재를 드디어 살 수 있겠다. 허허

육아메이트

정우가 걷지도 못하던 시절, 나는 친구 하나 없는 이 동네에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신과는 비록 못갔지만 -아직도 그때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대신 지역카페에서 가벼운 자기소개를 하며 친구를 찾는다는 글을 내보였다. 마침 댓글이 달렸고, 그때 만난 친구들이 지금은 속이야기도 거리낌없이 하는 내 육아메이트들이다. 아직은 내가 겪지 못한 인생의 씁쓸한 맛을 아는 언니가 있고, 주는것을 좋아하는 마음넓고 똑똑한 아이, 또 둘째를 더 열심히 키우고 있는 대단한 친구와 얼굴만큼이나 예쁜말도 잘하는 육지로 간 친구까지. 너네들은 정말 복덩이들이야.

bgm

신랑의 업무소리를 배경삼아 가만히 꽃잎을 찍는다.

멀리 고심끝에 뱉어진 그의 단어들이 음악이 되는 순간.

코로나

아침에 유퀴즈를 봤다.

코로나19로 최전선에서 일하는 이들을 보니

나는 이리 안녕해도 되나 싶어 눈물이 계속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