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정우의 울음에 익숙해진 듯 싶다

외출로 오전에 한시간가량 낮잠을 잔 후
다섯시반이 되어서야 다시 잠든 정우였다.
-낮잠은 보통 12시쯤부터 두시간 쭉 잔다-
여섯시 반,
정우는 정확히 한시간을 더 잤다.
그때 난 정우의 산모수첩을 정리하며 출장간 신랑과 통화중이었다. 찡찡 소리가 나길래 봤더니 벌떡 일어나 걸어오려고 했다.
얼른 안아 토닥였지만 정우의 컨디션이 좋지않아 얼른 같이 저녁밥을 먹기로 한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기 식탁의자에 앉혀놨다.
정우는 주방에 둔 귤 두개를 보고 당장 달라며 세상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줄 순 없었다.
맛있는 저녁을 위해서.

엉엉 눈물콧물 흘렸지만 오구오구 엄마가 빨리 저녁 줄께~ 대답만 해줄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귤을 까주었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을 냈거나 안아줬거나 했을텐데 아니었다.
그저 이해해주고 가끔 못본척도 하며 저녁먹고 귤 먹자~ 대답해줄 뿐이었다.

저녁은 유부초밥이었다. 난 카레 ㅋㅋ
-보통 출장전엔 가벼운 식사꺼리나 반찬을 쟁여둔다. 혼자 밥해먹이기 힘들까봐. 매번 눈물난다. 그런데 이번엔 출장이 길다. 무려 4일이다. 크흡ㅠㅠ-
암튼 그 유부초밥을 정우는 맛있게 엄청 맛있게 먹었다.
밥을 다 먹었는데 내려올 생각이 없다.
뒤에있는 귤을 돌아보며 까주길 기다렸다.
ㅋㅋㅋㅋㅋ
짱귀엽다.
먹는동안 설거지를 얼른 끝내니 정우가 또 돌아봤다.
아 귤 두개였지…
똑똑한데…
정우는 귤을 두개나 먹고 나서야 만족한 응가를 뽀직 싸보였다.

나는 부족하고 염색은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부족하고 염색은 어려운 것이었다.
-오방색으로 하는 천연염색, 정옥기-

나는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작업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예전 작품이 물이 빠진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집에서 몇달째 보관한 염색한 천은 색이 바래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내 손을 벗어난 작품은 공기 산화와 햇빛 노출 등으로 인해 결국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도 그런것이 염색을 확실히 배우지 못한 나의 부족함도 있었겠고, 30여년 염색을 해오신 정옥기님도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졌다 하신다.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어렵지 않게 작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나의 큰 실수이자 오만이었다.
하지만 곧 나는 가슴에 무언가 두근거림이 생겼다. 무궁무진한 답이없는 이 천연염색의 세계가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간 후루룩 그리던 펜화를 좋아하던 내가 이 고생스러운 작업에 빠지다니.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이리날아 오너라~
정우가 좋아하는 노래다.

노랑나비가 나오는 책이 있다.
음메~ 젖소옆에 노랑나비가 함께 있는 책이다.
늘 그책을 읽을때면 나비를 가리키며
나비야 나비야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오늘 나에게 안겨 찡찡대는 정우에게 나비야를 불러주었더니 곧 내품을 벗어났다.
그런데 또 꺅- 소리를 지르기에 정우를 보았더니그 책을, 나비가 있는 페이지를 어느샌가 펼치고서는 나에게 보여주는것이 아닌가.
맙소사.

이쁜짓

정우는 최근 “이쁜짓” 이라고 하면 손가락을 볼이 아닌 귀에 갖다대며 머쓱하게 웃는데 귀여워서 미칠것 같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는 아니었으면 한다.

행복을 강요당했다.
아가를 키우는 지금이 가장 좋을때라며 나는 엄마에게 행복을 강요당했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짧은 삼십인생 겪은 바로는,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다는 논리는 내겐 틀렸다.
도대체 지나고 보니 고교시절이 좋았다는 말은 누가 뱉은 것인가.
각각의 시에 불행이, 행복이, 슬픔이, 기쁨이 뒤엉켜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좋고 나빠 흑백논리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느니 같은 소리는 내겐 드라마에나 나오는 시간여행같은 소리일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이 가장 좋을때는 아니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남은 일생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충분히 오늘을 살아 앞으로의 날들이 계속해서 보다 더 좋은 날이길 바란다.
오늘도 내가 끊임없이 정우를 사랑하고 또 싫어하였듯이.

수선화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663

물에 사는 신선, 수선화를 만나고 왔다.

사실 수선화를 알게 된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새 수선화에 빠져들게 된 나는 당장이라도 만나러 가야했다.
여러분도 위의 저 브런치 글을 읽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신랑의 반차 찬스를 이용한 우리 가족은 수선화가 만발했다는 대정향교로 향했다.
서귀포는 햇살이 좋았고, 하늘이 맑았고, 유채꽃이 벌써 만발했고, 바람은 찼다.

넓은 마늘밭을 지나 우뚝솟은 오름 아래 향교가 고즈넉히 자리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수선화가 내게 왔다.
정우에게도 향을 맡게 해주니 사르륵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밖에서도 곧잘 걸어다니는 정우는 귀여움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감기로 몸이 좋지 않은 신랑은 코가 막혀 아쉽게도 향기를 맡지 못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주 예전에는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있었을 것인데 이젠 가로수 아래 심겨진 수선화만 볼 수 있어 많이 안타까웠다. 시골 구석구석으로 가게되면 만나려나. 나같은 노형커에겐 힘든 일이기에 더욱 아쉽다.

이대로 돌아가긴 아쉬워 길가에 수선화 한떨기를 집까지 모셔왔다.
-신랑은 작은 꽃 하나도 꺽기 싫어하지만 나의 욕망을 꺽을 순 없었다-

식탁위 그 향기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