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상

얼마전에 할머니 상으로 영천에 다녀왔다. 그러니까 정우한테는 증조 할머니인 셈이다. 외 증조할머니. 내 기억속 할머니는 담배를 태우시며 아궁이를 살피는 건강한 분이셨다. 그런데 결혼전인가 언젠가부터 누워계시더니 병원을 왔다갔다 하며 어빠가 간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이었다. 여느날과 다를 것 없이 우리는 인디고에 있는데 신랑이 나의 언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다음주면 영천에 한번 들를 참이었다. 어버이날에 뵙지 못해 적당한 때에 비행기표를 끊어두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일주일을 못기다리시고 눈을 감았다. 신랑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라고 얘기를 했을때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났다. 난 엄마를 고생시킨 할머니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나오는것이 왠지 이상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산랑은 잦은 출장으로 비행기표 예매 방법은 누구보다 잘했다. 마침 성수기고 연휴가 낀 주말이라 아무리해도 표가 나지 않았는데 신랑은 표를 구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영천으로 향할 수 있었다.

정우는 왠일인지 영천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잘놀고 잘먹었다.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많이 커서 그런지, 본인이 좋아하는 이불 -엄마가 결혼선물로 사준 알레르망 이불이다. 사각사각하고 시원하다- 을 가져가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잘 먹고 잘 지내주었다. 장례식장에서도 산소에서도. 다행히 개월수에 비해 말을 잘하는 정우는 처음보는 온 친척들 사이에서 귀염둥이가 되었다. 정우덕에 검고 흰 곳에 웃을일이 생겼다. 다행이었다.

정우는 금새 말도 생각도 늘었다. 일주일새 몸무게도 12키로에서 13키로가 되었다. 제주에선 그렇게 늘지 않던 몸무게였다.

돌아와서는 영천 사투리를 써서 여간 당황스러울수가 없다. 게다가 다시 미운 네살로 돌아오려고 한다. 엄마는 많이 힘들다.

어느 날 저녁

어느 날 저녁,

밥을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가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니가 꼬셨지만 내가 널 더 좋아하지.”

나는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가 대답했다.

“넌 모르지만 난 알지 “

나는 내내 그 말이 좋았다.

금능

어제같은 날엔 무조건 금능이었다.
전날부터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수영복, 여벌옷, 씻을물, 간식 등을 준비해두었다.
한편, 정우는 새학기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한다. 어제는 입구에서부터 들어가기 싫다고 울며불며 떼쓰다 결국 야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삼십분 정도 놀게되었다.
그리곤 바로 나와함께 금능으로 향했던 것이다.
바다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어제는 날이 좋아 놀이터에서도 놀고 바다에서도 엄마랑 신나게 놀았지만 오늘은 꼼짝없이 12시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잘 할 수 있을지 ..

2017.12.31

신랑은 얼마 전 새벽 세시에 출근을 했다.

새해부턴 업무가 바뀔 예정이라 신경 쓸 일이 많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많이 피곤한지 정우와 놀아주는 질과 양이 달라졌다. – 출장길에 다친 무릎때문이기도 하니 이부분은 패스하자. 빨리 낫길! –

29일 저녁이었다.

보통 아홉시 반쯤 우리는 침실로 가 한시간정도 뒹굴다 잠드는 편이다. 열시쯤 되었을까. 눈이 반이상 감긴 신랑이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야, 아빠 재워줘~”

정우는 아빠 어깨를 토닥이며 “자장~ 자장~” 해주었다.

이어 나에게 와서도 자장가를 불러주었고 나는 정우의 빵같은 왼쪽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행복하다. 여보~” 나도 모르게 뱉어진 말이었다.

그리곤 신랑은 금새 잠이 들었다.

한편,

30일 토요일엔 인디고를 다녀왔다.

나의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 인디고에서 바라언니와 우리는 토요일 11시부터 한시간동안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이 있다.

부지런한 신랑덕에 어제는 오픈전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오픈부터 손님이 많아 커피를 내어오고 여유가 생길무렵 언니는 빨간 끈으로 포장된 새하얀 선물상자를 내보였다. 직접 만든 마들렌이었다.

바라언니와 나는 감동의 물결로 하나되었다.

돌아오는 길엔 내가 어떻게 이런 좋은 사람들을 만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

우리 가족은 제주에 살면서 연말에 육지 친구들이 그립다. 친구들과 거나하게 한잔 한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행복하고 그리운 연말이 지나간다.

재주소년과 귤

chohuikim:

12월 9일이었다.

한달 전부터 예약해둔 재주소년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정우를 재우고 함께 동행하기로 한 바라언니의 작업실에 들렀다. 한참 수다를 떨다보니 벌써 공연시간이 코앞이었다. 공연은 네시인데 가려면 삼십분은 걸릴터였다. 언니는 공방문을 닫을 수 없어 나를 데려다 주기로만 했다. -언니도 정신이 없었던터라 공연이 오늘인지도 몰랐단다- 쌩 달려 도착한 공연장에선 이미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프닝을 놓친건 아쉽지만 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우선이었다.

공연은 결혼 전 보았던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후 처음이다. 재주소년의 목소리는 mp3로 듣던 그 소리와 너무 똑같아 놀랐고, 공연장이 너무 추워 -반짝반짝 지구상회는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다- 소매를 내리는데 가끔씩 보이는 그의 손목은 너무 섹시해서 반했으며, 마지막 곡의 첫 기타소리가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신랑을 불렀다. 다행히 정우는 그동안 잘 잤다고 한다.

한편,

정우가 처음으로 말한 문장은 “귤 주세요.” 다. 보사노바를 듣고 자란 ‘루시드폴’이 농사지은 귤을 한입 먹고는 “뀰 두떼요.” 라고 말했다.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뒤로하고

지난해 말부터 진행해오던 ‘천연염색 아크릴화’를 뒤로하게 되었다.

이는 그간 진행했던 작업물 중 일부 작품에서 천연염색 부분의 색이 옅어지는 사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인스타’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으며 연락이 닿는 분들에 한해서는 작품이 모두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 어느 분께서는 조금 물이 빠지기는 했으나 이삼년 지났으니 천연염색의 특성상 시간에 따른 것이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한다”는 말씀과 함께 외려 격려해주셨다.

좋은 분들께 작품이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기에 나는 천연염색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광목에 아크릴만으로 자연의 색을 담아보기로 했다.

첫 시도작은 대 성공!

별에게로 가는 길

오래전부터/ 내가 소를 잊고 살듯/ 별쯤 잊고 살아도/

밤마다 별은/ 머나먼 마음의 어둠 지고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상국의 ‘별에게로 가는 길’ 중

간질간질 간지러운 냄새

나의 팔이 그의 작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눈을 감고 얼굴을 맞대면 나의 광대가 그의 눈두덩이에 폭 잠긴다.

나는 그 느낌이 좋다.

보들보들한 살결에 작은 속눈썹이 간질간질 나를 간지럽힌다.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속눈썹이 처음 길어 나올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속눈썹으로 그의 찹쌀모찌같은 볼을 간지럽혀본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면 그의 냄새가 솔솔 난다.

로션 냄새인지 섬유 유연제 냄새인지 기저귀냄새인지 모를 이런저런 냄새들이 뒤섞여 난다.

“초희 냄새가 솔솔 나네~”

어릴적부터 엄마가 내게 자주 해주시던 말이다.

나는 이제

“정우 냄새가 솔솔 나네~”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