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짓

정우는 최근 “이쁜짓” 이라고 하면 손가락을 볼이 아닌 귀에 갖다대며 머쓱하게 웃는데 귀여워서 미칠것 같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는 아니었으면 한다.

행복을 강요당했다.
아가를 키우는 지금이 가장 좋을때라며 나는 엄마에게 행복을 강요당했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짧은 삼십인생 겪은 바로는,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다는 논리는 내겐 틀렸다.
도대체 지나고 보니 고교시절이 좋았다는 말은 누가 뱉은 것인가.
각각의 시에 불행이, 행복이, 슬픔이, 기쁨이 뒤엉켜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좋고 나빠 흑백논리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느니 같은 소리는 내겐 드라마에나 나오는 시간여행같은 소리일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이 가장 좋을때는 아니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남은 일생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충분히 오늘을 살아 앞으로의 날들이 계속해서 보다 더 좋은 날이길 바란다.
오늘도 내가 끊임없이 정우를 사랑하고 또 싫어하였듯이.

수선화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663

물에 사는 신선, 수선화를 만나고 왔다.

사실 수선화를 알게 된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새 수선화에 빠져들게 된 나는 당장이라도 만나러 가야했다.
여러분도 위의 저 브런치 글을 읽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신랑의 반차 찬스를 이용한 우리 가족은 수선화가 만발했다는 대정향교로 향했다.
서귀포는 햇살이 좋았고, 하늘이 맑았고, 유채꽃이 벌써 만발했고, 바람은 찼다.

넓은 마늘밭을 지나 우뚝솟은 오름 아래 향교가 고즈넉히 자리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수선화가 내게 왔다.
정우에게도 향을 맡게 해주니 사르륵 웃어보였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밖에서도 곧잘 걸어다니는 정우는 귀여움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감기로 몸이 좋지 않은 신랑은 코가 막혀 아쉽게도 향기를 맡지 못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주 예전에는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있었을 것인데 이젠 가로수 아래 심겨진 수선화만 볼 수 있어 많이 안타까웠다. 시골 구석구석으로 가게되면 만나려나. 나같은 노형커에겐 힘든 일이기에 더욱 아쉽다.

이대로 돌아가긴 아쉬워 길가에 수선화 한떨기를 집까지 모셔왔다.
-신랑은 작은 꽃 하나도 꺽기 싫어하지만 나의 욕망을 꺽을 순 없었다-

식탁위 그 향기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오키나와 여행

벌써 두번째 맞는 결혼기념일 겸 스트레스 해소겸 우리 가족은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비행시간이 가장 짧기도 했고 -돌도 안된 아가와 함께하는 여행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난 여행지보다는 휴양지를 선호하는 편이고 게다가 일본은 어쩐일인지 한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 다녀온 여행지는 프랑스와 상해 정도로 여행의 폭과 깊이가 짧고 얕은 나로써는 참으로 적당한 여행지가 아닐 수 없었다. ㅋㅋ
오키나와 힐튼 차탄 리조트로 오는길은 참으로 힘들었으나 굳이 글로 담고싶지 않으니 그냥 ‘쉽지는 않았다’ 정도로 요약한다.
호텔로 가는 리무진 창밖 풍경으로 영화에서나 보던 교복입은 아이들이 나타났다. 꽤 신선했다.
힘들게 도착해 마음껏 기어다닐 수 있는 크고 하얀 침대를 보자 방방 뛰며 웃던 정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모든 일정은 정우의 컨디션에 맞춰주었고 위 사진은 실내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수영을 하고는 그대로 꿀잠을 자는 정우의 모습이다.
올해는 제주 앞바다에서 수영한번 못하고 이렇게 지나가나 했더니 오키나와에서 한을 풀고 간다.
여행내내 정우를 안아주고 신경써주며
여러모로 무리해준 여보에게 무한한 감사를…

한발짝

어제였다.
7시쯤 이었다.
그간 종종 5초 10초정도 서있다 팍 쓰러지던 정우가 언젠가부터 천천히 앉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어제 한걸음 내디뎠다.
맙소사

근래들어 맘마를 끊으려고 많이 주지 않았는데 그날 오후 충분히 주어서 컨디션이 좋았던 것일까, 그냥 때가 되어서일까.

이유야 어찌되었건

걸었다.
정우가 걸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정우는 드디어 낮에도 밤에도 맘마를 하지않고 잘 수 있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신랑이 저녁에 말하길 “오늘부터 내가 정우를 데리고 잘테니 넌 따로 자라 제발! ”
-‘제발’은 몇번 그리 말했으나 내가 여보의 말을 듣지 않고 같이 자다 계속 새벽수유를 하게 된 사건에서 비롯함-
결국 나는 신랑방으로, 신랑과 정우는 안방에서 같이 잠을 청했다.

늘 맘마를 하며 잠이들던 정우에게 아빠와 함께 잠드는것은 너무 가혹했을까.
정우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어댔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어느순간 문 너머로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날 나는 오랜 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아침 7시였다.
정우의 눈엔 눈물이 아빠의 눈엔 핏대가 지난 밤 사투를 그리게 하였다.
나는 부랴부랴 정우에게 젖을 먹였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우도 좋은지 금새 베시시 웃어보였다.

이제 정우는 낮에도 안방 문을 닫고 커튼을 치면 왼쪽 품에 안겨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오늘 밤에는 울지않고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못하는게 없는 우리 여보야는
육아마저 나보다 잘한다. 이러한 정우의 수면 패턴을 만들어 주고는 불금을 보내러 가셨다.
오늘은 새벽에 들어와도 용서가 되는 밤이다.
사랑해요 우리여보.

패턴은 이러하다.

8시 샤워
샤워 후 조용한 놀이
8시 50분 안방으로 들어감
9시 반짝반짝 자장가 부르기
9시 5분 불끄고 자장가 부르기
9시 10분 잠들면 20분동안 안은채로 토닥토닥
이후엔 내려놓아도 됨